경제개혁연대 "회장은 승계되는 것이라는 재벌의 악습 반복돼"
"정당성 얻기 위해 과거와 결별하고 지배구조 문제 바로 잡아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

 

14일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명예회장에서 물러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것과 관련, 정의선 신임 회장이 그간 제기됐던 그룹 지배구조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회사와 일반주주의 이익보다는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해온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하고, 이사회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지배주주 일가가 사실상 그룹 전반의 지배권을 행사해온 폐단을 청산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대는 정의선 회장이 법적인 실체가 없으면서도 그룹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그룹 회장’이라는 지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3세 경영체제를 공식화한 것은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정의선 회장이 등기임원인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이사회를 통해 선임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사회 결의는 다분히 형식적으로만 진행되고, 사실상 거수기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는 게 연대 측의 판단이다.

연대는 정의선 회장으로의 지배권 승계 작업은 불법, 편법으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기회 유용과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인 현대글로비스의 설립과 성장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은 사익편취행위의 수혜자가 정의선 회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2001년 글로비스의 설립과 이후 그룹의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수조원대의 현대차그룹의 자산이 총수일가에게 이전됐지만, 당시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 사건은 2011년 상법 개정으로 회사기회유용 규정이 신설되고,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규정(사익편취규제)이 신설되는 계기가 됐지만, 정작 정몽구⋅정의선 부자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렇듯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라는 지위만으로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손쉽게 마련하고, 일정기간 경영수업을 받은 후 ‘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대는 이를 우리나라 재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런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이에 연대는 정의선 회장 체제는 과거 현대차그룹의 잘못을 시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대차그룹의 문제는 순환출자를 통한 그룹 지배와 내부거래 비중이 약 70%에 달하는(연결재무제표 기준) 현대글로비스(물류), 이노션(광고) 등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대표되는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대기업집단 가운데 사실상 총수 지배력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는 유일한 사례이지만, 현대차그룹은 2018년 이른바 ‘지배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무산된 이후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순환출자 해소를 압박했던 공정거래위원회마저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제안하면서 기존 순환출자는 예외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만큼, 현대차그룹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연대는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더 이상 구습에 안주하지 말고 지배구조 재편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조속히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연대는 정의선 회장이 사업기회 유용 및 일감몰아주기로 얻은 부당한 이익을 자신이 책임지고 현대차그룹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현대차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이 보류되면서, 당초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겠다는 계획도 무산된 바 있다.

연대는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얻은 막대한 이득과 현재도 보유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정몽구 지분 포함) 29.99%를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일감몰아주기 사례인 이노션도 현대글로비스와 같이 총수일가가 취득한 이득을 환원하고 지분(정의선 2%, 정성이 17.69%, 현대차정몽구재단 9.0%) 28.69%를 계열사에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15일 5조 이상 기업집단과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의 명단을 확정, 발표한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가운데), 구광모 LG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내의 낡은 관행과 재벌의 악습을 폐기하는 것도 정의선 회장의 몫이라는 분석이다.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라는 사실이 회장을 맡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성그룹도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물려받았고, LG그룹은 장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구광모 회장이 그룹을 지휘하고 있다.

다만 국정농단 뇌물죄 사건으로 파기환송심이 진행중인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4세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고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도 전에 승계를 언급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긴 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이런 진단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정의선 회장은 지배권 세습보다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재벌 총수일가는 주요 계열사의 임원을 겸직하면서 계열사 각각으로부터 과도한 보수를 받고 퇴직금 지급배수를 일반 직원들과 달리 4배, 과도한 경우 6배까지 책정하여 받음으로써, 총수일가라는 지위를 악용해 회사의 자금을 빼돌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과도한 퇴직금 지급이 논란이 되지 않았으나, 정몽구 명예회장이 복수의 계열사에서 고정급 성격의 급여를 높게 받아 보수 최상위권을 차지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제기돼왔다. 최근 이런 문제점이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총수일가 임원이 계열사 별로 보수를 받을 경우 기여도에 따라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는지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퇴직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총수일가 임원에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연대는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의 대표이사 회장(등기),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 회장(등기) 및 기아차의 회장(미등기) 등 3개 핵심 계열사에 재직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 한 곳에서만 보수를 수령함으로써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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