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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개혁 27년, 삼성 초고속 성장 원동력으로
이건희 개혁 27년, 삼성 초고속 성장 원동력으로
  • 신용수 기자 (press@straightnews.co.kr)
  • 승인 2020.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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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 추격자서 선도자로 도약
반도체·애니콜·갤럭시 출시 등 과감 결정
취임서 밝힌 '초일류 삼성' 달성시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키며 삼성을 선도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 제공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키며 삼성을 선도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 제공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키며 삼성을 선도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당시 삼성은 국내에선 최고 기업이라는 평가였으나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은 미미했다. 당시 삼성은 일본의 소니 등을 벤치마킹하며 추격자로서 고군분투하는 후발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소니에서 '삼성으로부터 배우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인이 회장 취임식에서 밝힌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라는 비전을 달성시켰다.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삼성 제공

삼성이 세계무대에서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반도체 사업이 성공하면서부터다.

1969년 1월 설립된 삼성전자는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사업으로 성장기반을 마련한 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삼성 계열사 이사였던 고인은 한국반도체가 부도 직전의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느냐'며 진출에 회의적이지만 이 회장은 첨단기술 산업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이 삼성의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1차 오일쇼크' 여파로 페어차일드, 인텔, 내쇼널 등 세계적 업체들이 구조조정과 감산에 나서는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삼성은 1975년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 칩을 개발한 데 이어 이듬해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했고, 당시 최첨단이던 3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설비도 부천공장에 갖췄다.

1982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며 성과를 냈고 10년 뒤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다.

D램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휴대용 기기에 많이 쓰이는 플래시메모리, 시스템메모리 분야에서도 투자와 개발을 계속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4M D램을 개발할 때 스택 방식을 결정한 것이나 16M D램 양산을 위해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를 도입한 것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결단으로 전해진다.

특히 8인치 웨이퍼를 도입할 당시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어느 기업도 선뜻 이 방식을 선택하지 못했고 실패하면 1조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 회장의 판단으로 8인치 도입이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이어 휴대전화 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삼성이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할 무렵이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의 모토로라가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삼성은 1994년 첫 휴대전화를 출시했지만, 불량률이 11.8%에 달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진행하며 삼성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품질 개선 노력이 결실을 거둬 그해 8월 애니콜은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은 당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모토로라가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시장으로 남았다.

이런 제품력을 바탕으로 애니콜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뻗어 나갔다.

반도체 제조 공장을 찾은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반도체 제조 공장을 찾은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이 회장은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일선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 시장을 장악하며 스마트폰 열풍이 부는 때였다.

'애니콜 신화'에 젖어 있던 삼성은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대응하며 한때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아이폰의 국내 시판을 앞둔 2009년 8월 기존의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한 '옴니아2'를 내놨다. 그러나 '모양만 스마트폰 아니냐'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갤럭시S'를 선보였고 갤럭시탭, 갤럭시S2, 갤럭시S3를 잇달아 출시하며 애플을 추격했다.

2011년 4월에 출시된 갤럭시S2는 성능이 개선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4000만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갤럭시S2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인 2011년 3분기 삼성은 마침내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탈환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2012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밖에 회사의 사업 근간인 TV·가전 역시 10년 넘게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2006년 선보인 보르도 액정표시장치(LCD) TV는 소니를 제치고 삼성전자가 세계 TV시장 1위를 달성하는 디딤돌이 됐다.

삼성전자 창립 40주년인 2009년에는 LCD에서 진화한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선보였고, 2017년에는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를 출시했다.

최근에 삼성전자는 'QLED 8K TV'와 초대형 TV에 집중하고 있으며, 8K 이후에는 마이크로 LED로의 '투트랙' 전략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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