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일을 행한다면 국민을 대의할 자격이 없다"

회동하는 여야 지도부ⓒ뉴시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의 최대 최소 인구 편차가 3 대 1에 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공직선거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31일까지를 개정시한으로 정해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2대 1 이하로 바꾸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48일이 지난 2월 17일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못해 선거구 공백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고 위헌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금년 1월 1일부터 246 곳의 모든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는 무효가 되었다. 국회의원은 존재하는데 선거구는 없어지게 된 것이다. 1995년 12월에도 인구 편차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1996년 1월 25일 선거법이 개정될 때까지 선거구 공백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예비후보자 등록제도가 도입된 이후 선거구 공백 상황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제도는 매우 불리한 여건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정치신인을 다소나마 배려하기 위해 17대 총선 당시 처음 도입돼 지방선거로까지 확대시켰다. 현역의원의 경우 선거 90일 전까지 의정활동보고회를 열 수 있는 반면, 정치신인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비후보자 등록의 법적 근거가 되는 지역 선거구의 공백상태로 인해 중앙선관위가 예비후보 등록을 받으면 당연히 위법이 된다. 그러나 현역의원들은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사실상 선거운동으로 악용하는 의정보고회를 금년 1월 13일까지 할 수 있게 되므로 중앙선관위는 고육지책으로 ‘편법’인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예비후보 등록을 허용하고 있다.

새해가 밝으면서 선거구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정치신인들은 총선 준비에 차질을 겪자 전국에서 고소 및 고발을 잇달아 제기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19대 국회의원 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예비후보, 현역의원을 상대로 ‘의정보고서 발송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예비후보, 예비후보자 홍보물 발송금지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예비후보 등등에 대하여 사실 국회와 중앙선관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정치신인을 위해 허용한 ‘예비후보 등록제도’가 버젓이 현역의원에게까지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17일 현재 161명 현역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전체 293명 중 55%의 등록률을 보이고 있다. 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은 157명 중 86명이 등록해 54.8%가 등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08명 중 65명이 등록해 무려 60.2%의 등록률이다. 군소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35.3%(17명 중 6명)와 60%(5명중 3명)의 등록률이며 무소속 1명 등이다.

한편 더욱 심각한 것은 직전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의 가증스러운 예비후보 등록이다. 이병석(포항 북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여야 각각 10명씩 동수로 구성된 정치개혁특위는 바로 이 선거구 획정을 임무로 맡았다. 정치개혁특위는 지난해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11월에 시한이 종료됐으나 한 달간 연장했다. 하지만 12월 15일 끝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빈 털털이 보고서만 남겼다.

여당 간사는 이학재(인천 서강화갑) 의원, 야당 간사는 김태년(성남수정) 의원이었다. 이들은 뻔뻔하게도 각각 1월 26일과 2월 5일 예비후보로 등록,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새누리당에서는 김명연(안산 단원갑, 1월 27일),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2월 11일), 여상규(사천남해하동, 2월 5일), 박대동(울산 북구, 2월 3일), 김상훈(대구 서구, 1월 25일), 민현주(인천 연수, 12월 31일) 의원이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백재현(광명갑, 2월 11일), 김상희(부천소사, 1월 21일), 신정훈(나주화순, 1월 29일), 박범계(대전 서을, 2월 2일) 등 4인이다. 161명 국회의원도 문제지만 최소한 정치개혁특위에 참여한 이들은 선거구 획정이 완료될 때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 아닌가?

국민을 대의한다면서 冒沒廉恥(모몰염치)할 수는 없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일을 행한다면 그는 결코 국민을 대의할 자격이 없다.

다행히 유인태(서울도봉을), 박영선(서울구로을) 의원 등 야당 중진들과 비교섭단체 몫으로 참여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그리고 초선이지만 새누리당 경대수(증평진천괴산음성)·더불어민주당 김기식(비례대표) 의원 정도가 그래도 염치는 있어서 아직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다.

1988년 13대 총선은 기존의 2인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 바꾸면서 50일 전에야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2년 14대 총선 때는 106일 전으로 비교적 앞당겨졌고 1996년 15대에도 75일 전으로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IMF 환란극복에 정치권도 동참하는 의미에서 의원정수 26석을 감축한다며 선거구 획정을 다시 했는데 결국 표결까지 갔고 65일 전에야 마무리됐다. 2004년 17대 총선은 비례대표 제도가 도입되고 의원정수가 환원되면서 여야 간 줄다리기로 불과 37일 전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 18대는 47일 전, 19대는 44일 전으로 이제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선거구를 제대로 모르는 캄캄히 선거가 일상화된 듯하다. 정치 후진국이 아니고서는 결코 이럴 수는 없다.

흔히 전가의 보도로 얘기하는 정치선진국 독일은 하원의원 선거구획정위가 중앙선관위 산하 독립기구로 돼 있다. 제발 보고 배울 것부터 배우자!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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