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492년, 신대륙 이름 모를 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 땅이 종교와 인종 차별없는 영원한 자유민주주의 지상낙원이 될지어다"라고 외쳤다...라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금에 눈이 먼 이 탐욕스런 탐험가는 '기독교 전파'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스페인 여왕의 재가를 받고 기세좋게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서쪽으로 키를 돌렸고, 그렇게 인도(라고 착각한) 땅에서 잔혹한 살육이 시작됐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의 팔과 다리를 잘라가며 캐낸 금을 빼돌린 게 미안했던지 고향에서 가져온 이것을 듬뿍 선사했으니 바로 천연두라는 역병이다.

콜럼버스를 필두로 몰려든 유럽 약탈자들에 의해 1억명이 넘는 원주민이 사라졌다. 약탈자들은 부려먹을 노예가 줄어들자 곧 아프리카에서 조달한 흑인으로 대처했다. 

600여년이 흐른 21세기, 신대륙에서 성장한 국가는 용광로에 버무린 다민족, 다인종 국가를 이뤄 어느덧 지구촌의 패왕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 깃발을 든 거대 제국의 무릎 밑에는 오늘도 어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목을 짓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어느 유대인 학자는 인류사를 집대성한(기실 다른 석학의 책을 짜깁기해 양념을 뿌린) 그의 책에서 산업혁명의 주역인 유럽  제국주의로 인해 3세계 민족이 질병과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거시적 관점으로 봤을 때 제국주의 덕분에 피지배 민족이 '진보'의 과정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식민지 민족이 겪은 고통을 외면하고 인류애에 대한 고찰이 빠진 그의 논리는 마치 일본의 식민지배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과도 닮았다. 학자는 제국주의 옹호자라는 이러한 일각의 비판에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인류사에서 주기적으로 제국주의가 명멸하게 된다는 주장을 결과론에 천착해 강조할 뿐이다. 

논란을 '유발'해도 충분할 정도로 의문이 가득한 그의 책은 희한하게도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서점가 인문학 코너의 가운뎃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빠진 지식인들은 여전히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포럼이나 세미나 기획자들은 그를 모시지 못해 안달이다.

서양 헤게모니에 '그루밍' 당한 쇼비스트들은 오늘도 티비 라디오 프로에 패널로 기어나와 피지배 국가라는 자의식을 상실한 채 제국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부패로 떨려난 전직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정작 자국에서도 관심 없는 아메리카 국기를 흔들어대는 광화문 거리 풍경은 차라리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이 박빙의 승부를 겨루고 있다. 누가 되든 우리는 곧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동북아전략 방향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주한미군이 금싸라기 같은 땅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주둔비 인상을 요구한 것은 부당하니, 거꾸로 우리가 한국에 임대료를 내겠다"고 발표할 일은 없어 보인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애꿎은 피난민들을 폭격하고 기관총을 난사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 아메리카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우방으로써 최선을 다하겠다" 정도나 될까. 미국의 입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도 파도에 흔들리는 조각배 신세. 

우리 정부는 비굴한 저자세도, 공연한 허세도 아닌 철저한 국익과 수지타산을 따져 외교에 임할 일이다. 판문점에서의 '빅 이벤트'를 넘는 또 다른 남북관계 개선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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