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맡기고 보관료 내던 옛날로 돌아가는 금융정책

「한국의 금융경제상황, 과연 낙관적인가?」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통화량 증대, 리플레이션 정책」

「지급준비금의 비밀, 보관료에서 이자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출 부진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에 관해, 취임 초기부터 3% 정도는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고,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는다는 등 낙관론을 펼쳤다.

그랬던 그가 지난 19일 열린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했다.

“가장 큰 경기 하방 요인이었던 G2(미국과 중국) 리스크가 이제 일본과 유럽을 포함한 G4(주요 4개국) 리스크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기조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금융협의회에서 “금융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한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한 ‘장기 저성장 기조’는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이 상품 거래량보다 상대적으로 적어서 물가가 떨어지고, 생산량 감소, 실업 증가 등으로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 즉 디플레이션deflation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금융경제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부문은 수출과 환율. 수출은 1970년 이후 최장기인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며, 원ㆍ달러 환율은 이미 1,230원을 돌파, 5년 7개월여 만에 최고점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 원달러환율이 5년8개월만에 최고치인 1,234.40원을 기록한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환율에 대해, 유일호 장관은 “외환보유액이 세계 7위 수준이고, 질적 구조도 예전보다 낫다”는 말로 애써 낙관적인 시각을 이어가고 있지만,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올해 환율 최고치를 1,300원까지 전망하고 있으며, 경제계 쪽에서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약정, 외환단기차입을 조절하기 위한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 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와 같은 거시경제 3종 세트의 탄력적 운용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원ㆍ달러 환율에 대한 그의 낙관론도 언제 뒤집어질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예사롭지 않다.

양적완화

D(디플레이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다. D가 진행되면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국민 소득도 감소한다. 그 결과 소비 감소, 생산 감소, 고용 감소가 이어지며 불경기가 찾아온다.

▲ 일본의 20년 장기 저성장 기조 ⓒtutor2u.net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성장의 두 축인 내수와 수출을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진작시켜야 한다. 그러나 국내경기가 좋지 않아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수는 늘지 않는다. 또한 세계경기가 좋지 않아 상품을 수입해 줄 나라가 없다면 수출 역시 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통화량 부족’이 있다. 그리고 거래당사국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환율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타개책은 통화량을 늘리고 환율을 낮추는 것이다.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 중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정책금리 인하다. 정책금리 인하를 통해 통화량을 늘리면 -다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까지 늘려야 함- 물가가 인상되면서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유통과 소비가 살아난다. 이런 경기촉진책을 ‘리플레이션reflation’이라 부르는데,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시행했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youtube.com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 전통적인 방법이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대치되었다. 비전통적인 방법이란,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오른 벤 버냉키의 ‘양적 완화QE, 量的緩和’ 정책을 의미한다.

정책금리 인하가 한계에 부딪히자, 그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장기물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시중에 직접 통화를 공급했다. 통화약세나 외국인 투자 위축 등 여러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중은행은 대출을 확대할 수 있고, 결국 시장에 돈, 즉 유동성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의 통화정책을 경제용어로 설명하면 ‘중앙은행이 장기물 국채 구매를 통해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했다’가 된다. 하지만 달러를 찍어서 말 그대로 시장 상공에서 뿌렸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책금리가 제로에 근접해 쓸 수 있는 카드가 극히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전통’은 ‘전통’이 되어갔다.

▲ 벤 버냉키 의장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garvensmortgagegroup.com/financialsense.com

지급준비금

몇 차례에 걸친 그의 양적완화 정책은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는가 싶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정책금리가 이미 제로에 근접한 상태에서 돈을 마구 찍어내고 헬기를 동원해 뿌렸음에도,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가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이유로 진공청소기처럼 원자재를 빨아먹었던 중국의 고도성장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정점에 이르자, 세계는 또 다른 ‘비전통적인’ 통화량 팽창정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지노선인 7%를 뚫고 내려간 지금, 세계가 발견한 ‘또 다른 비전통적인 방법’이 유동성 부족을 해결할 대안으로 떠올랐다. 바로 ‘마이너스 금리’다.

▲ 금리의 회귀 ⓒgeoexpat.com

마이너스 금리를 이해하려면 자기자본BIS비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급준비금reserve requirements, 支給準備金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700년대 이전, 네덜란드와 영국의 은행들은 전당포 또는 창고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금화는 휴대가 불편했기 때문에 은행들은 고객으로부터 일정액의 보관 수수료를 받고 금화 보관증을 발행했다. 지금이야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지만, 당시에는 고객이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골드스미스Goldsmith 은행가라 불렀다.

▲ 금화를 맡기고 보관료를 지불하는 고객 ⓒarmstrongeconomics.com/

당시 금화를 맡긴 고객들은 거래를 할 때마다 은행에 가서 금화를 찾는 대신, 금화 보관증을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골드스미스 은행가들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금화를 찾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금화 보관증만 유통되는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실제 보관하고 있는 금보다 더 많은 보관증을 발행하도록 했고, 은행가들은 그렇게 발행된 가짜 보관증을 은밀히 대출해주고 이자를 챙겼다.

이후 국가는 금화 보관증을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골드스미스 은행가들의 수익은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은행가들의 탐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짜 보관증이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마당이니, 더 많은 금화를 유치해 더 많은 가짜 보관증을 발행하기에 나섰고, 언젠가부터 금화 보관료를 제로로 낮추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맡기는 금화에 이자까지 얹어줬던 것이다.

▲ 16세기에 발행된 금화 보관증 ⓒgaukartifact.com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은행에 금화를 맡긴 고객들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찾아들었다. 금화 보관증을 제시하며 금화를 달라는 고객들의 요구는 매우 합당했지만, 은행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만한 금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가짜 보관증을 너무 많이 발행한 탓이었다.

그날 이후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금화 보관증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은행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태를 이르는 말이 바로 ‘뱅크런Bankrun’이다.

ⓒactivistpost.com

이후, 국가와 은행은 골드스미스 은행가들의 책임을 묻는 대신, 가짜 보관증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 결과 ‘지급준비금’이라는 제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제도를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다.

“가짜 보관증을 발행하되 너무 많이 발행하지는 말고, 고객이 찾아왔을 때 금화를 최소한으로 지급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발행하라. 그리고 그 정도의 금화를 중앙은행에 예치하라.”

오늘날 그 금화 보관증을 부르는 일반적인 용어가 있다.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 신사임당이 그려져 있는 것, 바로 ‘지폐’다. 그리고 금태환제가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을 집어삼키며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가짜 보관증인 지폐는 황금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김태현

팽창을 거듭하다 ‘통화량’에서 막힌 세계경제는 이제 ‘이자’에서 ‘보관료’로 방향을 선회하는 길, 과거로 회귀하는 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마이너스 금리는 그런 길로 접어드는 가장 확실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전통’에서 ‘비전통’으로, 다시 ‘또 다른 비전통’으로 이어져왔던 금리정책, 그 끝에 골드스미스 은행가들의 전통이 손짓을 하고 있다.

 

다음 글에는 ‘마이너스 금리’와 ‘세계금융의 맥’이 이어집니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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