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와 민주주의는 영원히 물 건너 갈 것

박근혜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라고 쉴 새 없이 야당을 겁박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드디어 오늘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새누리당 역시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국회의원 선거구 개정을 자신들이 고집한대로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를 늘리는데 야당이 합의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과 동시에 통과해야 한다면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질질 끌어 왔었다.

거기에 국정원은 북한의 정찰총국 등 공작기관들이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테러 공격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등 마치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테러가 금방이라도 발생할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여 왔다.

그렇다면 정말 테러방지법이 없는 우리나라는 테러 무방비국가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테러에 대비한 제도와 기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대테러정책 최고결정기구인 국가테러대책회의다.

국무총리·외교부 장관·국방부 장관·국정원장·국가안보실장 등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최고수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서 대테러정책을 논의하고, 사건별 테러대책본부를 지휘하고, 군과 경찰이 항시 운용하고 있는 대테러특공대에 출동명령을 내린다.

또한, 국가테러대책회의는 그 밑에 실무를 논의하는 테러대책상임위원회와 테러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인 테러정보통합센터를 거느리고 있으며, 365일 24시간 물샐틈없는 테러대비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작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지도 몰라 국회에서 질타를 당했다. 테러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총리된 지 8개월 동안 한 번도 회의를 안했다는 증거다.

테러야 당연히 막아야 한다. 근데 문제는 지금 있는 장치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대응을 못 한 것이 아니라, 버젓이 제도와 기능이 존재하는 데도 활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시민단체와 야당은 정부가 그토록 통과시지지 못해 안달인 테러방지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통과시키려는 테러방지법이 오직 국정원을 위한 국정원날개법 즉 국정원에 날개 달아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정원의 권한이 막강해지면 이를 토대로 지난 대선 때처럼 재집권, 재재집권을 도모할 것이라 믿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테러 대응을 핑계로 국정원의 권한을 키우고, 국정원장 밑에 테러통합대응센터를 둬서 기존의 정부 대책기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권한을 주게 된다.

테러를 막는 거면 좋은 거 아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는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국민은 정보가 없어 국정원이 그냥 테러라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테러 의심자로 딱 찍으면 감청도 되고, 통장도 뒤지고, 인터넷이나 SNS 게시물들을 삭제해버릴 수도 있다.

국정원이 의심하면 누구라도 그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요즘의 언론환경에서 언론의 감시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설마 국정원이 그렇게까지 하겠냐 하겠지만 그건 국정원이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일이다.

댓글부대를 동원해서 박근혜 정권 출범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정권 초기 간첩사건이었던 유우성 사건도 조작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지난주엔 국정원과 검찰이 '보위사 직파 간첩 사건'이라고 떠들어 댄 홍강철 씨 사건도 서울고법에서 무죄판결이 났지만 국정원은 일언반구 책임진다는 말이 없다.

또한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은 누구인가. 바로 국정원장 출신으로 1997년 안기부 총풍조작사건 당시 안기부 차장이었고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국정원은 지금도 책임은 지지 않고 어마어마한 권한만 휘둘러대고 있다. 그런데 국정원의 힘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세지면 그때보다 더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민주시민사회에서는 국정원이 테러 막으라고 준 권력을 유신독재시절처럼 야당이나 시민단체들, 노조 이런 데를 감시하고 탄압하는 데 남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팽배하고 있다.

테러방지법 통과는 재앙이다. 야당이 만약 북풍이 무서워 정부여당의 뜻대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줄 양이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며 정권교체와 민주주의는 영원히 물 건너 갈 것임을 경고한다. 하지만 현재의 야당이 약골인 것이 심히 걱정되면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눈치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