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가장 잘 그려나갔을 때, 정치가 보다 성숙될 것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등과 같은 SNS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정치에 미친 영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 아닐까 한다.

정치의 개인화는 이념, 가치, 조직을 중심으로 한 정당 정치가 개별 정치인의 역량과 개성, 지지기반을 중심으로 한 정치로 바뀌는 현상이다.

오늘날 개개 정치인들에게는 정당의 틀을 벗어나 SNS와 개인 미디어를 이용해서 다양한 시민과 유권자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 되었다.

오바마는 트위터가 만든 최초의 대통령이라 할 정도로 SNS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2009년 3월 트위터를 통해 ‘e-타운홀 미팅’을 실시하여 국민들과 직접 소통했으며, 2009년 10월에는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해 로비가 강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이 이 개혁안이 통과되도록 의회에 호소해 달라’고 트위터를 통해 국민들에게 요청하면서 큰 정치적 동력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컨버전스 정치 사회에서 비제도적이고, 자발적이며, 유동적이고 예측불가한 SNS상에서의 개별적 정치활동을 어떻게 조직하고 동원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 생명을 좌우할 정도의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이 SNS를 통한 사적 영역에서의 정치 행위가 활발해 짐에 따라서 부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과거 정치인들은 공인으로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신문을 통해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가지고 정치적 의사 표현들을 해왔다. 따라서 정치인의 언어는 대부분 공적이거나 공식적인 범위 안에서 특정세력, 의견, 조직을 대의(代議)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도구와 미디어 환경이 변화되면서 정치인들의 언어와 표현법들이 대중 미디어 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적이고 형식적인 언어를 던져 버리고 개인의 사적 감정과 표현법들이 정제되지 않고 표출되고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러한 사적 표현들은 탈 권위와 탈 제도화를 보여주고 시민과의 친밀성과 친화성을 형성하는데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이따금 무분별한 표현들로 인해 정치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갈등과 분열을 표면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치인들이 던지는 말들이 정치권을 뒤흔들면서 정치 판세를 바꾸거나 지지도를 좌우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한 흑인 유학생에게 ‘연탄색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다’는 말을 한 뒤 SNS 상에서 시민들의 지탄을 받고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하였다. 문재인 의원은 트위터에 정동영 전의원의 국민의당 합류에 대해 “자욱했던 먼지가 걷히고 나니 누가 적통이고 중심인지도 분명해졌다”고 비판하였고, 정 전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문 대표가 삼고초려해서 모셔온 김종인 당 대표와 108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제1야당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라. 노무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며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또 김종인 대표에 대해서도 “민주 야당의 얼굴이자 대표가 될 수 있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종인 대표는 기자들에게 “심심하니까 글 한번 쓰는 것이겠죠 뭐”라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무소속 박지원 의원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민주에 대해 “새누리당 2중대의 정체성으로는 승리하지 못한다”라고 양당을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이 정치적 소통 창구로서 깊숙이 자리 잡고 정제되지 않는 사적 표현이 정치 담론을 주도하면서 오히려 정책이나 정치적 비전, 가치를 이야기하는 언어들은 이제 낮선 부언(附言)들이 되었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사이에 오가는 정치인들의 언어는 말 그대로 ‘말을 위한 말’로써 담론 투쟁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L.)의 말을 빌자면 ‘언어게임’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니다. 언어 게임에 사용하는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당사자들과 관련해서만이 의미가 있을 뿐 그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사실을 가리키지 않고도 사용되며, 오히려 언어 구조가 현실 세계에 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고, 생각의 대상과 방법을 규정한다는 점을 직시한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벌이는 언어게임은 당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용어들로서 일반 시민들의 삶의 현장이나 사회 현실을 반영하거나 지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직 자신들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여의도 정치 룰에 갇힌 담론투쟁으로 나타난다. 언어는 소통을 전제한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가 뒷머리의 불쾌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 이는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그가 ‘아 뒷골 당기네 !’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그는 누군가와 자신의 고통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타인과 소통을 전제하는 공적 활동이다. 따라서 한 정치인이 페이스북에 욕을 하는 순간 그것은 공적 활동이자 공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언어 게임이 신문이나 방송 혹은 SNS에 의해 생산과 재생산을 반복하면서 정치 현실을 재구성하고 조작하고 있다. 선거기간이 다가올수록 현실을 조작하는 정치 담론들이 미디어를 통해 더욱 활개를 치고 있고, 그럴 수록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더욱 왜곡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민과 유권자들이 바른 정치의식을 가지고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 전제해야할 것은 정치인과 선거 출마자들이 바른 언어를 쓰는 것이다. 정치적 규범과 금도를 지키고, 품위 있는 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첫 걸음은 대표성을 가진 정치인으로써 정치인다운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트겐슈타인이 초기 언어 이론에서 강조했듯이 정치인의 언어가 현실을 가장 잘 그려나갔을 때, 정치가 보다 성숙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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