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으로 내몰린 일본의 노인...'방배동 모자' 연상
'메이와쿠(민폐)' 꺼리는 국민성, 일본 공동체주의 그늘
취약층 외면하는 한국 기득권의 습성...일본의 그것과 닮아

ⓒ고경일

지난 11월 16일 새벽 4시경,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渋谷)구의 한 버스 정류장 22cm 간이 의자 위에 여성 노숙인이 숨져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뒷머리를 강하게 맞은듯, 충격받은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이 여성의 사인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뛰어난 정보력을 자랑하는 일본 경찰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인권보호 차원(?)인지 알 수 없으나, 제대로 디지털화를 못한 탓에 몇 날 며칠을 동네 사람 붙잡고 탐방하고 가가호호 물어물어 조사한 끝에 피해 여성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오오바야시 미사코(大林美佐子,64세). 올해 2월말까지 시부야의 한 슈퍼마켓에서 시식코너를 담당한 판매원으로 일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자 슈퍼마켓도 한산해 지면서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시식 판매대가 제일 먼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속수무책, 오오바야시씨의 호구지책도 매정한 구조조정의 칼날에 단번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판매대에서 한달 꼬박 일 해봐야 150만원도 안되는 돈이었지만 그 돈이라도 손에 쥐면 애도 남편도 없는 여성 혼자의 한달 생활은 빠듯하게 버텨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진짜? 도쿄에서 가능할까?)

그러나 저축도 연금도 사라진 비정규직 노년의 퇴사조치는 이 여성을 하루아침에 차디찬 길거리로 내 몰았고, 올해 4월부터 폭 22cm인 정류장 간이의자에서 노숙을 하는 신세가 됐다. 일본 특유의 국민성인 ‘메이와쿠 (迷惑: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이 착하디 착한 ‘자조인간(스가총리는 지난 9월 이후 일본국민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조(自助)’를 강조해왔다)’은 어디에도 하소연도, 도움요청도, 폐도 안끼치고 살기로 결심한 모양새였다.

'자조'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새벽 2시에 '22Cm의 벼랑'에 걸터 누웠다가 5시면 자리를 비켜 줬다. 출근하는 첫차 시간에 맞춰 여러사람에게 메이와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메이와쿠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조인간으로 노력해온 오오바야시를 구타해 죽음으로 몰아 넣은 범인이 자수했다. 요시다 카즈토 (吉田和人,46세)였다.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로 동네를 깨끗이 청소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그로서는 매일 한 밤중에 자기 나와바리(縄張り: 세력권)을 침범하는 여성노숙인이 마땅치 않았다.

카즈토는 오오바야시에게 범행 하루 전에도 돈을 줄테니 버스정류장에서 나가라고 회유했으나 말을 듣지않아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아프게하면(구타) 사라질거라고 생각했다는 진술에 모두들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는 개인과 가장의 문제라며 히키코모리 성향을 보이는 성인들을 방치하고 있지만, 이들의 반사회적이고 반인간적인 공격성향은 수십건의 '묻지마 살인'과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이상 증상으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제 99대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회상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조'(自助), 그것이 안 되면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해결하는 '공조'(共助), 그것도 부족하면 국가나 지방공공단체가 나서는 '공조'(公助)라며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참고 희생한후에 미흡하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여성들은 충분히 자조해 왔다. 전쟁 전에는 천황제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에서 나를 버리고 일왕의 신민으로 공장의 정신대나  공창의 윤락녀로 전락했고, 패전이후에는 미군의 놀이개로 다시 남성중심사회의 밑바닥 인생으로 일본사회를 지지해 왔다.

이제는 일본 여성들도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목소리 를 내야 한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일본 남성들이 소리쳐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의 기본이라고 외쳐야한다.

일본은 ‘민폐 끼치지 말라(迷惑かけるな)’는 문장을 일본의 여성들에게 일본의 하층민들에게만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 일본의 엘리트라는 정치인들이 이미 일본땅에서 충분히 민폐를 끼치고 살아 왔고, 이제는 동아시아와 세계를 상대로 민폐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정치인들 역시 이 작은 나비의 파동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22cm의 벼랑은 일본에만 있는게 아니다. 대한민국 휴전선 넘어 북쪽에도 22cm는 있다. 서울의 망원동에도, 대구 동성로에도, 부산 남포동에도, 광주의 송정동에도 있다.

정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방배동 모자'는 어떠한가. 발달장애 아들과 거주하던 이 60대 여성은 정부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제대로 된 생계·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과 하직했다. 그녀가 떠난 후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무려 반년이나 걸렸다. 

이 와중에 이렇다할 대안도 없이 마타도어와 가짜뉴스로 선동질에 급급한 저 수구세력과 거기에 빌붙은 언론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사회 취약층에는 눈꼽만큼의 애정도 없으면서 그럴싸한 말잔치만 펼치는 그들의 위선은 일본의 엘리트 정치인들과 꼭 닮아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고경일

풍자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학과 교수

전 세이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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