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주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열린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주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열린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기자] “학술적 연구에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두고 법률적 시각으로 바라본 결과가 무죄라니 당혹스럽다”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전문가 중 한명이 직접 이야기한 대목이다. 학자로서 피력했던 의견이 법률적 판단에서는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나오자 당혹감에 결국 그는 기자회견마저 자청하게 됐다.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거나 판매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의 임직원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물실험·역학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 속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1심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반박하면서 사법부에 대해 정면 비판에 나섰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를 향해 맹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이 기자회견에서 주목된 부분은 1심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학자들이 “법원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종현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 소장,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등이 참석해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사용한 유해물질 CMIT·MIT의 피해자 11명에 대해 재판부가 각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을 강력 비판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과학자들은 학술적으로 입증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이건 반증이 된다 또는 몇퍼센트 확실하다고 하지 입증이 됐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에서는) 학술집단과 법원에서 서로 이해를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재판에서 물타기 방식으로 처리된 것 같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동욱 방통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판결은 피해자들을 뭉뚱그려 '기저질환이 있다'는 식으로 가습기살균제의 (폐질환) 인과관계를 무시했다. CMIT·MIT 단독 사용자 중 특이한 폐손상을 나타낸 피해자가 11명, 이 중 70%가 아이들"이라며 “서너살 아이들이 나이가 있어야 걸리는 폐질환을 얻은 이유를 따로 설명할 수 없으나 개인 인과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직접 조사했던 사람으로서 개인의 인과를 완전히 무시한 한계점이었으며, 사실 왜곡 판결”이라며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게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과정인데, 이게 악용되면 물타기로 이용될 수 있다. 이미 CMIT·MIT는 국내에서 가습기살균제 출시 전에도 미국에서 화장품 등에 쓰지 못하도록 하는 유해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현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 소장도 "판결문은 CMIT·MIT 성분 자체에 유해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위해성이 인정돼 판매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CMIT·MIT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한 위해성평가 결과는 2편의 논문과 1편의 보고서로 나왔고, 당연히 재판의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박사도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연구를 거듭하면서 CMIT·MIT 물질과 사람의 피해 질환 간 인과관계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으나 재판부가 내 발언을 취지와 다르게 인용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피해자들과 판결에 참여했던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이번 판결에 분통을 터트릴 정도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민 10명 중 7명 이상이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사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앞으로 진행될 2심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4.6%가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들 중 69.3%는 1심에서의 검찰 구형량인 '금고 5년'보다 무거운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다만 국민법감정이 뜨겁다고 해서 법감정대로만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1심 판결에 대한 반발이 워낙 거센 상황에서 항소심(2심) 재판에 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런 부담 탓에 1심을 담당했던 재판부도 선고 판결 당시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은 어디까지나 법리에 맞춰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피해자 뿐만 아니라 재판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마저도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모으고 있다.

결국 법원의 판결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판결이라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법원의 판결로 사망자는 나왔지만 CMIT·MIT가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를 써도 된다는 이야기냐는 주장마저 나올 정도다.

앞으로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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