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쟁서 LG측 완승 거둬
합의 가능한 골든타임 60일 남아
배상액 두고 LG '3조', SK '5000억'

LG와 SK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LG측의 완승으로 귀결됐다. 사진은 11일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연합뉴스
LG와 SK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LG측의 완승으로 귀결됐다. 사진은 11일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기자] LG와 SK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LG측의 완승으로 귀결됐다. 양사가 최종 합의를 60일 가까이 앞둔 가운데 합의 여부와 합의금 책정에 대해서도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2년 가까이 이어진 배터리 기술 유출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LG화학의 배터리 부분)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와 관련 부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ITC는 지난해 2월 예비 결정에서 별도의 수입금지 기간을 공지하지 않았는데, 최종 결정에서 10년 수입금지가 나온 것은 분쟁을 제기한 LG측도 놀랄 정도의 중징계였다.

이는 ITC가 배터리 팩과 셀, 모듈, 부품, 소재 등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LG가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를 모두 인정한 결과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번 판결로 SK이노베이션은 다급한 상황이 됐다. 미국 내에 건설하는 조지아주 1, 2공장을 계속 가동하려면 서둘러 수입금지 조치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ITC는 SK측에 10년 수입금지를 내리면서 이 조치로 당장 타격을 받게 된 폭스바겐(북미 MEB 플랫폼 전체)과 포드(F-150 픽업트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각각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1공장과 2공장에서 배터리를 공급받을 예정인 두 회사는 조지아주 공장의 제품 시운전(1공장)과 건설·시운전 기간(2공장)을 고려할 때 폭스바겐은 내년부터 1년, 포드는 내후년부터 2년 정도만 SK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있다.

SK측은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LG와 합의해 수입금지 규제를 푸는 수밖에 없다.

SK가 장기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서둘러 합의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영업비밀 침해 기업이라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신규 수주에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의 완성차 고객사들도 서둘러 합의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포드의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인 두 회사의 합의는 궁극적으로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와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면서 합의를 촉구했다.

폭스바겐도 "한국의 두 배터리 공급업체의 분쟁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봤다"며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최소 4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12일 요구했다.

미국 기업인 포드에 비해 유예기간이 절반밖에 안 되는 데 불만을 표출한 것이지만, 배터리 납품사인 SK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SK측이 수입금지 조치를 풀 수 있는 또 다른 희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0일간의 리뷰 기간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SK측은 ITC 최종 결정 이후 "대통령의 검토 등 남은 절차에서 SK 배터리의 안정성과 미국 조지아주 공장의 공익성을 집중적으로 전달하겠다"며 거부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 ITC가 포드와 폭스바겐 등이 미국내 공장에서 공급하는 경우에 한 해 '공익(Public)'을 들어 유예기간을 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공익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기 애매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평소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조해왔고 특허 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다.

다만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과 여론은 변수가 될 수 있다.

SK의 공장이 들어서는 미국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12일 성명을 내고 "ITC 결정 때문에 조지아에서 진행되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조기 합의를 위해 넘어야 관문은 양측의 배상금 격차다.

LG는 최근까지 2조5000억∼3조원 가량을 요구해왔다. SK측은 자회사(SKIET)의 상장 지분 일부 제공을 포함해 적게는 1000억원대, 많게는 5000억∼6000억원대를 제시했다는 소문이 나온다.

격차가 2조원 이상인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는 ITC 최종 결정 이후 보고서에서 "합의금이 5조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이며 합의가 안되면 LG가 유럽에서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최종 배상금을 결정할 델라웨어 지방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 금액으로 보인다.

업계는 대통령 리뷰가 이어지는 60일이 조기 합의의 '골든 타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서는 정세균 총리까지 나서 LG와 SK의 합의를 종용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양쪽 모두 이 기간 내에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을 앞둔 SK 최태원 회장이 다음달 회장 취임 전에 이번 사안을 해결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다만 합의금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한다면 대통령 리뷰 기간이 끝난 뒤 SK가 항소할 가능성이 있고, 합의도 지연될 수 있다.

그동안 양사는 물밑 협상을 수차례 진행해왔으나 합의금에 대한 의견이 워낙 차이가 났고, ITC결정에 따라 합의과정에서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어 합의 자체를 기다려 왔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한편 LG와 SK는 ITC의 결정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여러 건의 민사 소송건도 남아 있다.

영업비밀 침해 건과 별개로 모듈, 파우치, 분리막, 양극재 등에 대한 특허침해 건이 미ITC에 2건이 남아있다. 여기에 LG가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영업비밀 침해, 특허쟁송 합의 위반 등으로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

연이어 재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LG와 SK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소모적인 분쟁도 줄어들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LG와 SK가 물밑 협상을 꾸준히 벌여왔지만 ITC 결정을 기다려온 점이 없지 않다”면서 “ITC의 결정적인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양사가 합의금 금액을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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