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이에 무어라 답하는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대구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해 생각에 잠겨 있다. 2016.03.19.ⓒ뉴시스

헌법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3월 23일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말미에 유 의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1조 2항을 언급했다. 유 의원은 작년 ‘국회법 파동’ 당시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라는 해석들을 내놓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엊그제 ‘공천이란 이름으로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을 뭉개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새누리당 공천은 악랄한 사천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총선을 둘러싸고 '비박 살생부', '윤상현 막말 파문', '옥새 파동' 등. 여당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막장 정치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야당은 어떤가? 더민주당은 곳곳에서 경선여론조사의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고,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의원 간의 밀약설, 바지사장론 그리고 셀프공천 및 자기사람 심기를 둘러싼 친노와의 암투 등. 어느 하나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한 투명한 당 운영과 공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당 또한 안철수 의원의 독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서로의 이권으로 창당 주역들이 갈등하면서 자중지란에 빠져 급기야 김한길 의원이 당직을 사퇴하고 불출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작금의 정치상황을 보면 이 조항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권력은 자신들끼리의 세 싸움이나 나눠먹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선거는 자신들의 권력을 나눠먹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고, 투표는 자리를 보장 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의 총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공공의식이 없는 정치는 살상무기

권력에 대한 편집증만 보이는 정치 현실, 오직 당선만을 생각하는 출마자에게서는 어떠한 공공의식을 찾아볼 수 가 없다. 남발하고 있는 공약과 정책은 목적이 되지 못하고, 권력을 위한 일회성 도구가 되어 버렸다. 주객이 전도된 정치 현실이다. 공공의식은 정치인이 갖춰야할 필수적 인성이고 자세다.

다산 정약용은 정치적 도덕률의 최고 심급으로 이타성(仁)을 강조하였으며, 이것의 실천 덕목으로서 관용(恕, tolerance)을 중시했다. 정치인이 갖춰야 할 이타성이 오늘날로 하면 공공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정치인들이 관용의 인격을 상실하였고, 이로 인해 산술적 계산과 정치공학에 빠져 자신들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해버렸다. 이기적 욕망 덩어리들에게 권력이라는 칼을 쥐어주면 이 칼날은 어디로 향할까? 이 칼날은 국민을 향해 휘둘러질 것이고 급기야는 국민을 살상할 것이다.

 

정치인이 갖춰야할 공적 자세,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다산은 원목(原牧)에서 “백성들은 곡식(穀食)과 피륙을 내어 목(牧)을 섬기고, 백성들은 수레와 말을 내어 추종(追從)하면서 목(牧)을 송영(送迎)하며, 백성들은 고혈(膏血)과 진수(津髓)를 모두 짜내어 목(牧)을 살찌게 하니, 백성들이 목(牧)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목(牧)이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탕론(湯論)에서는 권력의 기원이 아래로 부터의 합의에 있기 때문에 이 합의가 결렬되면 추대 이유가 사라져 책임자는 물러나거나 끌어내려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뉴시스

다산의 기준에 따르면 오늘날 대다수 정치인들이 끌어내려져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공공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기본으로서 다산이 강조하는 ‘율기(律己: 자신을 다스림)’, 봉공(奉公: 공적 사명을 받듦), ‘애민(愛民: 백성을 사랑함)’ 중 어느 것 하나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

책임과 대의명분은 없고, 오직 공천 받기 위해, 오직 당선되기 위해, 오직 이기기 위해 그리고 오직 대권 후보만 되기 위해 계략과 쟁투만 일삼는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 절망스럽다. 얼마 전 ‘여의도를 삽으로 떠서 바다에 던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한 지인의 자조 섞인 말을 들었다. 자기들만의 게임을 위해 국민은 투표용지에 도장이나 찍는 들러리로 생각하는 정치 현실에서 헌법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믿을 국민은 몇이나 될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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