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낳은 독사,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감각으로 아는 지식에 집단적으로 몰입하는 독사들」
「독사가 득시글거리는 한반도 정치판, 국민의 분노만 높아져」
「국민의 삽자루에 머리 찍히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정치해야」

새정치민주연합이 와해 조짐을 보인 이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무소속 출마에 나선 지금까지, 제19대 국회가 가장 많이 보여준 것은 변칙과 반칙, 그리고 밥그릇 싸움이다. 국회의원 소환제도조차 없는 지금, 오늘 이 칼럼으로나마 밥값을 하지 못했던 제19대 의원들을 탄핵하고자 한다.

독사의 탄생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독사’들이 국회로 들어가기 위해 한반도의 아스팔트를 돌아다니고 있다. 공천시스템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던 약속은 황금빛 배지를 향한 집단적 탐욕에 폐기처분되었고, 때마다 반복되는 기득권 지키기 행태에 국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지겨워 죽겠다는 듯, 별무반응이다. 혐오를 넘어선 정치 경멸의 역설적 폭격이다.

느닷없이 무슨 독사 얘긴가 싶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독사는 독을 주입하는 한국의 살모사가 아니라 ‘억측臆測’, ‘억견臆見’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의 ‘독사DOXA’다. 이 독사는 주관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제멋대로, 맘 가는대로 하는 게 장기다.

▲ 독사의 자식들 ⓒinsidevancouver.ca

서양 철학사를 찬란하게 수놓은 물줄기가 둘 있다. 존재론存在論과 인식론認識論이다. 존재론은 ‘우주 운행의 배후에 무엇이 또는 누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담론이고, 인식론은 ‘생각은 어디서 출발했으며,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담론이다.

이 두 물줄기의 고대 원류가 있다. ‘만물은 유전流傳한다, Panta rei’는 선언으로 이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와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다.

▲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jkwon0404.wordpress.com

한 사람은 세상이 ‘변한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은 ‘안 변한다’고 했다. 어떨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을까, 아니면 처음 그대로일까?

둘 다 정답이라고 해두자. 철학 사조를 읊어댈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으니까. 그리고 세상이 변한다 해도 내 호주머니의 빈한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안 변한다 해도 내 알량한 마음은 일촌광음수시변동一寸光陰隨時變動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존재와 생각에 대해 이처럼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철학으로부터 현재를 비판할 수 있는 독사DOXA라는 개념이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차용해 참 지식episteme과의 대립 속에서 완성시킨 독사, 하늘 저 위 허공에 걸린 철학을 총선이 임박한 이 땅으로 끌어내려보자.

옛날 옛적 독사

독사의 철학적 의미는 ‘감각을 통해 어떤 대상에 대해 가지게 되는 견해’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무슨 소린지 아리송하다. 불교의 오온五蘊, panca-skandha(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설명하면 쉬울까. 아니다. 더 아리송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론과 인식론이 절반씩 섞인 비유담allegory을 소개한다.

유와 무

‘현상’이라는 이름의 숲 속에 수컷 무와 암컷 유가 살았다. 둘은 장래를 약속한 사이. 어느 날, 나물 캐러 나갔던 유가 독사에게 물려 쓰러졌다. 소문에 깜짝 놀란 무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유의 거처로 달려갔다.

ⓒturbosquid.com/disneywikia.com

무: 유! 유! 이봐, 괜찮아?

유: 응... 나 괜찮아. 머리 지끈거리는 것만 빼면.

무: 휘유~, 다행이다. 독사한테 물렸다며?

유: 응. 에고고 머리야...

다음날, 무가 다시 유의 집으로 들어섰다.

유: 왔어?

무: 어, 잘 잤냐? 좀 어떠니?

유: 이젠 앞도 안 보이고, 아무 냄새도 안 나.

무: 큰일이네. 근데, 앞도 안 보이고 냄새도 안 난다면서 어떻게 난 줄 알았어?

유: 에이, 내가 니 발소리도 모르겠니? 귀는 잘 들린다구.

다음날, 무가 집으로 들어섰지만, 유는 그냥 누워 있었다. 무가 뺨을 어루만지자, 유는 그제야 맥없이 고개를 돌리며 반응했다.

유: 아... 왔구나. 있잖아... 나, 아무것도 안 들려. 왜 이러지?

이튿날 꼭두새벽에 집으로 찾아간 무는 한밤이 다 될 때까지 유의 몸을 닦아주고 똥 싼 바지를 갈아입혀가며 병구완에 갖은 신경을 쏟았다. 하지만 밤새 피부 감각까지 잃어버린 유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져갔다. 그리고 무가 하루 종일 병구완을 하는 동안, 유는 딱 한 가지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 무야... 왜 안 오니... 나 무섭단 말이야...

무: 나 여기 있어. 여기 있다구...

ⓒvecto.rs/disneywikia.com

무가 이미 곁에 붙어서 병구완을 하고 있음에도,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유는 무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유(YOU, 有)에게 무(無)는 존재일까 아닐까? 다시 말해서, 감각을 잃어버려 무가 옆에 있음에도 없다고 판단한 유의 견해는 옳은 것일까 틀린 것일까? 질문을 고쳐보자.

“당신은 당신의 감각, 즉 코와 귀와 입과 혀와 피부를 믿을 수 있는가?”

무가 없다고 판단한 유의 불완전한 견해,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해낸 이른바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의 견해, 이것이 바로 독사다.

독사는 참 지식episteme이 아니라 감각으로 아는 상식적 견해라서, 동일한 감각을 지닌 사람 여럿이 나타나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겨대면, 그 생각은 ‘그때에 어울리는’ 진실이 된다.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외눈박이 세상에 가면 병신 취급을 받는 것처럼, 동굴 밖에 있는 진짜 세상을 체험한 후 다시 들어간 동굴에서 살해당하고 마는 플라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래서 독사의 현대적 의미는 ‘특정 사회적 집단 또는 사람들 무리에 의해 진리로 간주된 것’으로 확장되었다.

▲ 독사 테스트: 이 뭐꼬... ⓒmoillusions.com

오늘의 독사

특정 사회적 집단 또는 사람들 무리는 독사를 통해 시대를 지배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든 다음, 권력을 행사한다. 그 과정에 사람과 사건, 언론, 국내외 정세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써먹는다. 국외적으로는 FTA와 TPP를 비롯한 세계경제시스템, 중동정세, 영토권 다툼, 이라크 난민 문제 등이 그런 것들이고, 국내적으로는 청년실업과 경제 문제, 위안부 소녀상, 인권, 북한 문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울타리로 들어오지 않는 모든 담론을 배척한다.

그런데 독사란 원래부터 감각에 의지한 견해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은 견해에는 반드시 따라붙는 게 있다. ‘다양성’과 ‘분화’다. “넌 그렇게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또는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또는 “그거 아니거든...” 하는 식이다. 이 다양성과 분화가 이권과 결합해 끝까지 가면 예외 없이 이렇게 되고 만다.

“저놈들... 죽여 버려...”

위 그림 ‘독사 테스트’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혹자는 새무리를 보았다 할 것이고, 혹자는 여성의 얼굴을 보았다 할 것이며, 혹자는 화가의 ‘심심함’을 보았다 할 것이다. 무엇을 보았건 그 견해는 당신의 독사일 뿐이다.

내가 위 그림에서 본 것은 성공을 향한 화가의 ‘지랄발광’이다. 그런데 ‘지랄발광’이라고 우기는 나에게 다른 모든 견해는 ‘틀린’ 견해다. 이처럼 독사를 부정하거나 뒤집는 모든 견해를 통틀어 파라독사paradoxa라 한다. 파라독사의 현대적 표현은 패러독스paradox다.

독사와 파라독사가 충돌할 때,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울타리 밖 사람들의 혀는 억견臆見이고,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울타리 안 사람들의 혀는 억측臆測이다. 시쳇말로, 이쪽에서 하는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고, 저쪽에서 하는 말은 ‘웃기는 짬뽕’이다.

▲ 독사 대전 ⓒtodayswhisper.com/turbosquid.com

가만...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상황이다. 딱 떠오르는 풍경도 있다. 끼리끼리 뭉쳐서 시대를 지배할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들, 그리고 생산해낸 담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면서 견해가 다른 이들을 하루아침에 ‘팽烹’시키는 곳, 바로 국회의원 집단과 정당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독사에 갇혀 있다가 팽烹당한 후에 더불어민주당에서 파라독사를 부리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평생 파라독사만 부리다가 새누리당의 독사로 스스로 찾아들어간 조경태 의원, 가는 곳마다 파라독사만 부리느라 ‘몽니’라는 이름을 가진 독사한테 오지게 물린 나머지 한국판 히키코모리가 되고 만 김한길 국민의당 전 선대위장, 이재오 의원, 유승민 의원, 진영 의원, 박지원 의원, 그리고 파라독사를 무기로 탈당했거나 탈당 직전까지 갔던 모든 의원들... 이들 모두 민주주의와 정의와 국민행복이라는 거대한 변, 즉 대변大便을 싸질렀지만, 국민들의 시선에는 하나같이 제 밥그릇을 위해 남의 밥그릇에 독액을 주입하는 독사毒蛇들일 뿐이다.

▲ 독사와 파라독사 ⓒ김태현

독사 탄핵

독사들이 반도의 아스팔트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세 치 혀로 국민기망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4월 13일, 마치 영화 ‘300’에 묘사된 전사들처럼 300의 새 독사들이 보무도 당당히 국회로 들어갈 것이다. ‘지난 4년’이라는 독사의 허물을 벗고 ‘향후 4년’이라는 ‘신상 구태’를 챙겨 입을 그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비슷한 색깔을 지닌 독사끼리 무리를 지어 다른 색깔을 지닌 파라독사들을 물어뜯는 일뿐일 것이다.

빨간 뱀은 빨간 뱀끼리, 파란 뱀은 파란 뱀끼리, 연녹 뱀은 연녹 뱀끼리, 노랑 뱀은 노랑 뱀끼리...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빨강과 파랑이 자리를 바꾸고, 연녹이 ‘비스무리’가 되고, 노랑이 ‘시커머죽죽’이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색을 합치면, 뱀한테 물려 감각 잃은 유有가 싸질러놓는 똥색이다.

이념理念은 삼념, 사념을 넘어 오염汚染이 되고, 예사로운 색깔 뒤집어 입기에 전통은 껍데기 취급을 받으며, 문화는 돈이 만들어내는 ‘한때 꽃華’으로 인식될 뿐이다. 한반도가 독사로 득시글거린다. 합의는 없고 협의만 가득한 독사 소굴이다. 그런 독사들이 하는 정치, 국민에게는 유일까 무일까...?

민주주의와 정의와 국민행복의 이름으로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독사DOXA들은, 국민들의 파라독사paradoxa, 즉 분노 게이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이는 온갖 잡언이설雜言利說을 내뱉으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와중에라도, ‘내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국민들이 뱀 잡는 땅꾼으로 돌변하고 말 거라는 경고다.

이는 민주주의와 정의와 국민행복이 독사와 파라독사의 합의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니, 국민을 바보 멍청이에 등신으로 여기며 자신들만의 ‘헤테로토피아les heterotopies’만 부리려 하다가는, 언젠가는 국민들이 휘두르는 삽자루에 모가지를 된통 찍히는 독사毒蛇가 되고 말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이자 탄핵이다. 정치, 헌법대로 똑바로들 하시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대로 하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대로 하라!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대로 하라!

* 헤테로토피아: 미셀 푸코.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모든 곳 밖에 있는 장소. 이 글에서는 정치인들만의 민주주의와 정의와 국민행복을 의미.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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