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8곳이 25년간 계열사에 몰아주던 단체급식 일감을 외부에 개방한다. 

삼성·현대자동차·LG·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그룹 등 대기업 8개사는 5일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열어 계열사나 친족기업에 그동안 몰아줬던 단체급식(구내식당) 일감을 외부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범LG 개인회사인 아워홈에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맡겨 왔던 LG그룹은 내년부터 '전면 개방' 원칙 아래 구내식당 업체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결정한다. CJ그룹은 구내식당 물량의 65%를 외부에 열어놓는다.

공정위에 따르면 기업, 학교, 공공기관 등 국내 단체급식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4조2799억원 정도다. 급식업은 식품위생법이 정한 시설만 갖추면 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다만 삼성웰스토리(점유율 28.5%), 아워홈(17.9%), 현대그린푸드(14.7%), CJ프레시웨이(10.9%), 신세계푸드(7.0%) 등 5개사가 시장의 80%를 점유해왔다. 이 5개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은 1조2000억원 정도다.

공정위는 이 5곳이 계열사 또는 친족기업과 수의계약을 통해 수십년 간 일감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규모를 키웠다고 판단했다.

삼성웰스토리는 2019년 매출액의 36.1%를 삼성전자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냈다. 삼성웰스토리는 총수일가 개인회사는 아니지만 오너일가 지분율이 높은 삼성물산의 완전 자회사다.

아워홈은 LG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고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 구자학 회장이 세운 회사로, 친족관계인 LG그룹, LS그룹과 오랜 기간 수의계약을 맺고 거래를 이어왔다.

2019년 기준으로 아워홈 매출액의 26.5%는 LG, LS와 수의계약에서 나왔다. 아워홈은 구자학 회장의 장남 구본성 부회장 일가가 2018년 기준으로 지분 98%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이번 선포에 따라 LG그룹은 내년부터 전면개방 원칙에 맞춰 단체급식 일감을 순차적으로 경쟁입찰을 진행한다. CJ그룹도 계열사가 CJ프레시웨이에 맡기던 구내식당 일감의 65%를 외부에 개방하게 된다.

삼성은 지난달 2개 식당(수원, 기흥 남자 기숙사)을 시범적으로 개방키로 하면서, 현재 외부업체 선정을 앞두고 있으며 이를 바탕응로 내년부터 일감을 전면 개방할지 여부를 검토한다.

현대차는 비조리 간편식 부문에서부터 경쟁입찰을 하고, 현대중공업은 올해 말부터 울산 교육·문화시설 식당을 중소기업에 개방한다. 42개 사업장 급식업체를 신세계푸드가 아닌 다른 곳에 맡긴 신세계는 일감 개방을 더 확대한다. LS는 계약이 끝나는 사업장부터 경쟁입찰을 도입하고 현대백화점은 김포·송도 아울렛 직원식당부터 지역업체에 개방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8대 대기업집단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에 기업대표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8대 대기업집단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에 기업대표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급식·주류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적극 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청 강연 발표문에서 올해 공정거래정책의 주요 방향 중 하나로 '대기업집단의 건전한 소유지배구조와 거래질서 정립'을 꼽았다.

경쟁 제한성이 대기업에 못지않은 중견기업 집단에 대한 감시도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국세청·금융감독원과 함께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저긍로 감시하고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공정위 사무처는 급식업체인 삼성웰스토리를 부당지원한 혐의로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검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삼성에 발송한 바 있다. 공정위는 올해 안에 전원회의를 열어 사무처의 제재 방침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의견을 들은 뒤 제재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또 부당 내부거래 근절을 위해 공익법인을 상대로 한 계열사 거래 현황도 공시하게 하는 등 우회적인 내부거래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물류와 시스템통합(SI) 업종에서는 일감 나누기 자율준수기준을 마련해 일감 나누기 실적을 공정거래협약 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에 내년에 개방되는 대기업 구내식당 일감은 총 1000만식 규모로, 4조원 규모가 넘는 시장의 80% 이상을 대기업들이 차지한 구조가 바뀔 전망이다. 이번 일감개방 결정을 통해 단체급식업에 종사하는 독립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큰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게 공정의 측의 설명이다. 

다만 중소업체들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일각에서는 대기업끼리 서로 일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공정위는 향후 일감 개방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대기업끼리 일감을 주고받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급식업체 일감개방 추진 상황을 공개할 계획이다.

일례로 경쟁입찰로 돌린 후에도 삼성전자가 오로지 삼성웰스토리와 계약하거나 삼성은 아워홈에, LG는 삼성웰스토리에 서로 일감을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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