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5-07 23:33 (금)
'집단소송 확대' 기업피해 넘치고 소비자엔 상처뿐?
'집단소송 확대' 기업피해 넘치고 소비자엔 상처뿐?
  • 김세헌 기자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21.0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앞으로 소비자의 신체, 재산 등에 대한 권익 침해를 금지·중지할 수 있는 소비자 단체소송을 제기하기가 한층 쉬워진다. 소비자 권익의 현저한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소비자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5월 24일까지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단체소송이란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 관련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지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공정위에 등록된 소비자단체, 한국소비자원,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만 소를 낼 수 있다. 피해 예방 차원에서 하는 소송으로, 사후에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소송과는 다르다.

이번 개정안은 소송을 낼 수 있는 단체에 소비자단체의 협의제를 추가했다. 현재 협의체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1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정위가 소송을 낼 수 있는 단체로 지정해 고시하는 절차를 거치면 다른 협의체도 소송에 가능해진다.

아울러 현행법상 소비자 단체소송을 내려면 사전에 법원으로부터 소송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이 절차가 최소 1년, 최대 4년 정도 걸리는 등 소송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개정안은 법원의 사전허가 절차를 폐지했다.

더불어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권익이 직접적으로 침해된 때뿐 아니라 '현저한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정책위원회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시장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소비자교육, 피해구제 사업 등을 지원하는 소비자권익증진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도 법 개정안에 담겼다. 정부는 이 재단 설립과 사업 수행을 위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산업계는 집단소송제를 전면 확대하고 소비자 단체소송제까지 도입할 경우 소송이 남발되는 부작용이 있고, 이로 인해 기업 경영의 불안감이 커진다고 걱정하고 있다. 판결 결과와 무관하게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의 대외적인 평판이나 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집단소송 확대가 영국이나 미국처럼 민사 구제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에 맞는 것이지 우리 법체계와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가 5일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5G 상용화 2년, 불통 보상 및 서비스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민단체가 5일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5G 상용화 2년, 불통 보상 및 서비스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영미권은 기업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한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정부 중심으로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처분이나 형사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영미식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의 부담과 제재가 커진다는 것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 법안 도입 시 최대 10조 원의 소송비용이 우리나라 경제에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 법안은 영업비밀 제출 의무 부과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요건들도 추가됐다.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변호사는 평균 100만 달러의 이익을 누렸지만 소비자에게 돌아간 이익은 32달러에 불과했다. 합의로 소송대리인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집단소송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행위를 제어하는 데는 실효가 없었으며, 원고 측이 피해가 없는 나머지 소비자까지 대변해 소송 규모를 키웠고, 소송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소송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문제가 컸다는 분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등의 도입은 승소 판결에 따른 거액의 배상을 목적으로 한 기획소송 등의 남소 우려가 크고 소송을 주도하는 참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도에 기업에 합의금을 종용할 유인도 있어 기업들이 상시 소송 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부담이 늘어라는 제도는 코로나19 위기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운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며 "기업에 미칠 파급력이나 부작용 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일방적 추진이 아닌 기업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논의하는 절차가 선행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반면 공정위는 현실적으로 그간 소 제기가 부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단체소송을 강화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단체소송 제도를 합리화하고 소비자 권익증진재단을 만들면 다양한 소비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란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실제로 소비자 단체소송 제도는 지난 2006년 도입됐지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들이 한정돼 '티머니카드 환불 거부 사건', '한전 누진요금 부과 사건', '호텔스닷컴 청약철회 거부사건' 등 지금까지 단체소송 제기는 소수에 불과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