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세대별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택배노조는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시는 입주민 고객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A아파트는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고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제한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14일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세대별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시는 입주민 고객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A아파트는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고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제한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지난 2018년 4월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택배 배송을 두고 택배기사와 입주민 간 갈등이 벌어졌다. 아파트 측이 안전 등 이유로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 택배기사들이 단지 입구에 택배물을 쌓아두고 직접 찾아가라고 한 일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수백개 아파트 단지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으며, 지상 출입이 금지된 아파트는 전국에 최소 179곳으로 파악된다.

서울 강동구 한 대단지 아파트 측이 지상 도로에 택배 차량 출입을 막으면서 발생한 '택배 갈등' 사태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심화되고 있다.

택배 기사와 입주민 측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며 택배회사 대표를 고발하고 파업에 나설 방침을 밝히면서 사회적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택배 사태는 이달부터 아파트 단지 내 지상도로에서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면서 촉발됐다. 앞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안전 우려 등을 들어 지난달 22일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5000 세대 규모인 아파트 측은 긴급차량 등 지상 통행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반 택배차량(탑차)은 차체가 지하주차장 진입 제한높이인 2.3m보다 높아 단지 내에 들어갈 수 없는 실정이다.

아파트 측은 2019년 9월 아파트 입주 시작 이후 민원 제기로 인해 택배차량 출입 제한 방침을 충분히 예고해왔다고 설명한다. 택배 기사들은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4차례 출입 통제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파트 측은 각 세대 앞까지 이동하려면 차량을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으로 바꾸거나 손수레로 택배 물품을 옮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애초 설계 때부터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형 아파트'로 만들어졌으며, 인도용인 지상 통로의 보도블록이 파손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아파트 측의 방침에 택배 기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차량 통행제한 조치가 택배 기사들과 대화 없이 이뤄진 일방적 통보라는 것이다.

저상차량은 짐칸 높이가 127㎝에 불과해 180㎝인 일반 차량보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없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저상차량으로 배송을 하려면 대리점까지 통상적으로 3번 정도 왕복해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적으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사들은 아울러 저상차량의 경우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허리목, 어깨, 무릎 등 근골격계 질환 위험이 커진다고 우려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택배물품 상·하차 때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으로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된 저상차량은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분명한 산업안전 위험요인"이라고 했다.

산안법 제5조 '사업주 등의 의무'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근골격계 질환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대리점장은 직접적인 사용주이며, 택배사는 '등'에 따라 포괄적 사업주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손수레 역시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옮기기 어려워 배송 시간이 지연된다는 지적이다. 손수레를 쓰면 배송 시간이 3배까지 늘어나고 물품이 손상돼 기사들이 배상해야 걱정도 커진다는 주장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조치에 맞서 지난 14일부터 '문 앞 배송'을 중단한 뒤 물품을 아파트 정문 앞에 쌓아두고 입주민들이 가져가도록 했다. 그러나 입주민들이 택배기사들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택배회사 등에 민원을 넣자 이를 철회하고 손수레를 이용해 다시 개별 배송을 벌였다.

히지만 양측의 갈등은 20일 택배노조가 "아파트 측에 동조했다"며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재점화됐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측이 아파트 측과 저상차량을 이용한 지하주차장 배송에 합의했다"면서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와 해당 아파트 구역을 담당하는 대리점장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CJ대한통운 측이 아파트 측에 동조하며 택배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전가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알렸다.

22일 '택배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대형 아파트 단지 앞에서 강동연대회의와 민생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지자체의 중재와 공원형 아파트 택배 배달에 대한 근본적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2일 '택배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대형 아파트 단지 앞에서 강동연대회의와 민생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지자체의 중재와 공원형 아파트 택배 배달에 대한 근본적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CJ대한통운과 입주자대표회의 간 합의를 보여주는 증거로 지난 13일 입주자대표회의가 노조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문에서 '저상차량 도입을 위해 일정 기간 유예 후 전체 차량 지하배송 실시'를 "CJ대한통운 당 아파트 배송담당팀과의 협의 사항"이라고 부르며 "노조가 협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했다.

노조는 "아파트 측의 일방 결정으로 배송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고 소속 노동자들이 갑질을 당하고 있는데도 택배사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갑질 아파트에 동조하며 택배노동자들에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입주자들이) 자신들의 쾌적한 아파트 환경을 위해 지상출입을 제한했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게 마땅하다"며 배송 불가구역 지정과 추가 요금 부과를 사측에 요구했다.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차량 지상 출입을 허용하되 안전속도 절대 준수, 차량 안전장치 설치 등 주민 안전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안도 있다”며 “지금까지는 개별 기사가 주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부터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CJ대한통운 측은 저상차량을 이용한 지하 주차장 배송에 합의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리점 측이 택배 기사, 아파트 입주민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노조와 갈등이 시작되면서 중단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노조는 시민들의 동참을 끌어내겠다는 취지로 단지 앞에서 농성과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향후 투쟁 계획으로 파업을 논의 중으로, 오는 25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돌입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택배노조 진 위원장은 "기사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면 대의원대회에 곧바로 전 조합원 쟁의 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아파트 '택배 갈등'을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사태 해결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서울시, 강동구·강동구의회가 중재에 나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구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강동연대회의와 민생경제연구소는 "택배 갈등이 과거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사태 이후 계속 문제가 됐다가 또 발생했지만 정부 등은 민간 영역이라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다"며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향해서도 입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민과 택배기사 간 갈등을 제3자가 중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 주민의 공론장인 입주자대표회의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주민과 외부 이해집단 간 관계를 조정하는 대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노동자가 갈등의 최종 비용을 부담하게 됐는데 이런 점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는 당사자인 택배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담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보다 협의를 거쳐 향후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참고할 만한 모범 해결 사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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