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 한미정상회담서 투자 약속
정부, 세제·인프라 투자에 따른 인센티브 요청
미국 시장 장악 가능성 높지만 중국 부담될 듯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4대그룹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총 44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재계는 이번 투자를 통해 양국 정부의 경제 동맹을 강화하고 반도체와 배터리 등 산업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는 막대한 투자에 따른 세제, 투자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1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구축에 총 17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약 140억달러 규모의 현지 합작 또는 단독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미국내 전기차 생산과 충전 인프라 확충에 총 7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10억 달러를 들여 실리콘벨리에 인공지능(AI), 낸드 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

이들 기업이 미국 현지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규모는 394억달러로 한화로 44조원에 달한다.

재계는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나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핵심산업에 있어 북미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첨단 기술·수요기업과 협력으로 시장을 넓히고 신기술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재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자국 중심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동참 요구에 화답하면서 미국의 '그린뉴딜' 정책에 대응해 미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이번 재계의 대미 투자 핵심은 반도체와 배터리다.

미국은 최근 심화하는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국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라인 추가 증설을 준비 중이며 현재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이 가장 유력하다.

이번 파운드리 공장 증설은 경쟁사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대만의 TSMC가 애리조나에 6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 역시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강화하기로 하는 등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5나노미터(nm) 중심의 첨단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해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부문 1위 달성을 위한 목표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인텔 낸드사업부문 인수로 메모리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이번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과 낸드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10억달러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해 기술력 강화에 나선다.

배터리와 전기차에 대한 투자도 가속화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의 GM(제너럴모터스)과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원 규모(LG 투자금 1조원)의 전기차 배터리 제2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고 2025년까지 미국에 5조원 이상을 투자해 2곳의 독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후보지 검토를 마친다는 계획이어서 건설 계획이 조만간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1, 2공장을 건설·가동중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일에 미국 포드사와 총 6조원 규모의 합작사 설립 계획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의 투자금액은 절반인 3조원 가량으로 앞서 1, 2공장 투자금액 3조원을 합해 총 6조원을 미국 공장 건설에 투입한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현재 약 3조원 규모의 3, 4공장 추가 건설도 검토중이어서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시장 투자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수소,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에 총 74억달러(한화 8조1417억원)를 투입해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 확보와 신기술 전쟁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직후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직후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우리 정부와 재계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만큼 돌아오는 인센티브도 거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우리 기업을 위해 세제, 인프라 등 투자 인센티브를 지원해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직후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과 가진 별도 면담에서 이런 내용을 논의했다고 산업부가 지난 22일 밝혔다.

문승욱 장관은 기업 투자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정부가 분담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세제, 인프라 등 투자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정부에서 재검토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에 대해선 한미 철강산업 간 밸류체인(가치사슬) 강화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 회복이 이뤄지도록 새로운 접근을 요청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근거로 동원한 규정으로, 현 정부 내에서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미국 기업도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듀폰이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 센터를 우리나라에 설립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1월 듀폰의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와 CMP패드 제조시설 관련 국내 투자 발표에 이은 추가 투자다.

퀄컴은 현재까지 한국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8500만달러를 투자했다고 소개하면서, 앞으로도 한국 협력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GM, 노바백스 등 다른 미국 기업들도 앞으로 배터리 및 백신 등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뜻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일제히 회담 결과가 성공적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는 공식 논평을 통해 "반도체·배터리·의약품 등의 공급망 회복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며 실질적 사업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산업이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중요한 산업인만큼 우리 재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계 설정이 어려워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 현지에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현지 스마트폰 업체들은 핵심 고객사다. 미국 정부의 투자에 대응해 중국 정부가 우리 기업에 현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에 탑재되는 2차 전지(배터리) 업계도 곤란해졌다.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 1000만 대 중 450만대가 판매될 정도로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다.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업체가 공략해야할 대상이긴 하나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한 만큼 중국 진출시 현지의 곱지 않은 시선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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