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FATF(국제자금세탁방지지구) 권고사항, 신속하게 입법 조치해야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우리 정부는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로부터 2회에 걸쳐 ‘상호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두 번째 ‘상호평가’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호들갑을 떨었지만, ‘상호평가’ 권고 사항 이행에는 굼벵이처럼 굼뜨게 행동을 하고 있다.

FATF 설립 및 FIU 제도 도입 배경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향해 항공기가 돌진해 충돌하는 끔찍한 자살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CIA나 FBI 등의 정보기관을 보유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러한 대규모 테러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가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은 장기간에 걸친 심층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돈세탁 등의 과정을 거쳐 불법 테러 자금이 국경을 넘나드는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1989년 G7 합의에 근거한 UN 협약 및 UN 안보리 결의에 따라 금융조치(financialaction)의 이행을 위한 행동기구로 OECD 산하에 FATF가 설립됐다. FATF는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방지(AML/CFT, Anti-Money Laundering/Combat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 분야 국제규범을 제정하고, 각국의 규범 이행 현황 평가·감독 (상호평가)하고 있다. FATF는 미국 주도하에 설립되었기에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9년 10월 FATF의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우리 국회는 FATF 권고사항과 관련, 2001년 9월 3일 국회에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 같은 달 27일 공포했다. 2008년 12월 22일에는 '공중 등 협박목적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이른바 ‘자금세탁방지(Anti-money Laundering) 3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11월 28일 특정금융거래보고법 제3조에 근거해 금융위원회 산하에 금융정보분석원(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 KoFIU)을 출범시켰다.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FATF는 주기적으로 회원국을 방문해 제도와 시스템을 평가하고 있다. 제도평가 과정에서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해당 국가에 이행을 권고하고, 권고한 사안에 대해 회원국의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FATF가 상호평가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항목은 예방조치, 사법제도, 자금세탁방지, 테러자금 조달금지 제도, 국제협력, 투명 성장치, 금융기관과 특정비금융사업자의 제도이행과 감독, 고객확인(KYC, Know Your Customer), 기록보관, 의심거래보고, 고액 현금거래 보고 등이다.

FATF는 매년 자금세탁의 진행추세와 대응조치를 검토하는 유형 분석을 하고 있고, AML/CFT 국제규범 미이행 국가를 선별해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다. 북한을 포함해 이란, 파키스탄, 그리고, 시리아 등이 금융제재를 받고 있다.

FATF 상호평가 결과는 해당 국가의 금융·사법 시스템의 투명성 척도로 활용되고, 신용평가기관들이 개별 국가별 신인도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 위험(Country Risk) 결과는 특정 국가가 국채나 국가 보증채 등의 채권발행 시 가산금리를 결정에 활용되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신용장 개설 또는 무역대금결제 등과 관련된 수수료 등 금융비용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 국익과 직결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재임시기인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이란을 방문, 한국 시중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금 70억 달러(약 7조 8740억원)의 현안을 논의했다. 이란은 지난 2010년부터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갔지만, 지난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핵 합의를 탈퇴한 이란에 대한 규제에 따라 해당 계좌가 동결된 바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5월 25일 기업은행은 미국 뉴욕 남부지검 간 합의서에 따라, 기업은행 뉴욕지점이 한 무역업체의 이란 제재 위반 사건과 관련해 위장 거래를 적시에 적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8600만 달러(약 1049억원)의 벌금에 내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허술한 관리로 거액의 국부유출이 일어났지만, 금융감독원은 별도의 제재나 관련자 처벌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AML/CTF 부실이행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금융 투명성 제고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 여겨진다.

2차 FATF 상호평가에 대비한 우리 정부의 준비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1차 상호평가를 받았고, 10년 만인 2020년에 2차 상호평가를 받았다.

우리 정부는 2015년 10월부터 12개 정부 부처가 참가한 FATF 상호평가 합동대응반을 구성해 착실하게 사전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2018년 11월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우리나라의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조달 위험을 확인․분석하는 ‘국가 위험평가’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FATF 상호평가 대응방향’을 만들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우리 정부는 제1차 FATF 상호평가 보고서를 통해 권고받은 사안과 FIU의 추가적인 요구사항 등과 관련된 제도 등과 강화하기 위해 입법 조치도 취했다.

2018년부터 특정금융거래보고법 개정(2019.1월)과 시행령 개정(2019.2월 등 3차례)을 개정했고, 범죄수익은닉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을 개정(2019.4월)했다.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금지 업무규정을 개정(2019.6월), 특정금융거래보고 등에 관한 검사․제재규정을 신설(2018.7월)했고, 그리고, AML/CFT 정책협의회 설치․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2019.1월)했다.

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강력한 요청으로, 은행 및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자금세탁 방지 전산 프로그램 고도화 작업을 진행했고, 상당수의 인력을 투입해 자금세탁 방지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아쉬운 점은, 우리 정부가 2009년 제1차 상호평가보고서를 통해 FIU 제도를 강화하라는 권고를 받은 사안과 관련해, 법령 개정 작업을 최대한 미루다가 2차 상호평가를 목전에 두고 몰아치기식으로 법령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하기 싫었지만 마지못해 개정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통상적으로 5년 주기로 시행되는 상호평가를 이런저런 핑계로 10년 만에 받은 것이나, 입법 작업을 최대한 늦춘 것도 투명한 금융거래를 싫어하는 기득권층의 압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 주는 반증일 것이다.

2차 상호평가 보고서 지적한 긴급 권고안의 입법 시급

FATF는 2020년 4월 20일 제2차 상호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속에는 정부가 먼저 취해야 할 8가지 권고사항(Priority Actions)이 포함돼 있다. 8가지 긴급권고(Priority Actions)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비금융사업자(DNFBPs) 전 부문에도 AML/CFT 의무를 적용하도록 AML/CFT 체계를 확대하고, 이들 부문의 감독 당국을 지정해야 한다.

둘째, 국내 및 국제기구 정치적 주요인물(PEPs, Politically Exposed Persons)을 포함하도록 AML/CTF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조세범죄 기반 자금세탁범죄를 기소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 자금세탁 전제범죄에 포함되는 조세범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전제범죄의 범위를 의심거래 보고의무가 있는 범죄들에 맞추어 조정하는 방안이 여기에 포함된다.

넷째, 몰수대상 자산 중 실제 환수액을 늘릴 수 있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몰수 및 환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제와 조치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FATF가 지난 4월 발표한 한국의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에 대한 상호 평가 결과보고서’ 모두 226쪽의 보고서 첫 장. @FATF
FATF가 지난 4월 발표한 한국의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에 대한 상호 평가 결과보고서’ 모두 226쪽의 보고서 첫 장. @FATF

다섯째, 차명계좌 사용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적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차명계좌를 이용한 자금의 흐름을 수사추적할 수 있도록 법집행기관의 능력을 활성화 및 확대할 수 있는 도구들을 탐색하는 등의 긍정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여섯째, 동결 의무를 DNFBPs와 모든 자연인법인까지 확대하고, 확인된 제도적 미비점을 해결해야 한다.

일곱째, 동결의무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밀금융제재(TFS) 이행 관련 지침을 발행해야 하며, PF(Prolification Financing, 핵/대량살상무기 확산 관련 금융거래(“확산금융”) 관련 조정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여덟째, KoFIU의 IT 자원을 업그레이드하고, KoFIU 기관 내 지식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장기근무 인력의 수를 확대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금융 투명성 제고 위한 개혁 고삐 늦추지 말아야

FATF가 2차 상호평가서를 통해 우리 정부에 권고한 8가지의 긴급 사안만이라도 미루지 말고 조속히 법령이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20년 1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법무부의 검찰 직제개편 구상이 반영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의결하면서, 2013년도에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해체됐다. 첨단 금융사기 또는 탈세사건 수사와 관련해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수사 노하우가 사장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불투명한 금융거래는 탈세와 직결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복지 예산이 투입돼 재정 건정성과 관련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세입확충을 위해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를 늦추는 것은 금물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금융사기 사건 때문에 선량한 다수 국민이 피눈물 흘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조속한 입법 조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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