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백신이 있으나 빚더미 나라곳간은 백약이 무효
쓸데 쓰고 아낄 곳 아끼는 '재정 확장기 원칙 실천해야'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최근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은 국가재정법을 빈번하게 위반,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국가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후세대에 빚더미가 가득한 나라 곳간을 물려주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가재정법의 제1조에, ‘이 법은 국가의 예산ㆍ기금ㆍ결산ㆍ성과관리 및 국가채무 등 재정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성과 지향적이며 투명한 재정운용과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고 재정운용의 공공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을 관장하는 주무 부처로서, 일반 사기업이라면 기업 전체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기능(CFO, Chief Financial Officer)을 담당하는 곳간지기와도 같다.

사기업에서 CFO는 전사적으로 모든 임직원이 회계 및 재무 규정을 준수하도록 관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CFO가 스스로 관련 규정을 어기거나 주주총회에서 예산편성 규정을 위반하도록 의사결정을 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전염병 재해 극복의 한복판에서 재정위기의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당정 고위직들의 국가재정 관련 법 위반은 심각도를 넘어섰다.

당정의 세수 초과분 추경편성은 무리수다

올해 1/4분기 세수는 예상보다 19조원 정도 더 걷혔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양도소득세와 증시 활황으로 인한 증권거래세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에 대한 소득세 징수 및 정유 업계 유류세 3개월 납부 유예가 종료 등의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면, 실제 세수 초과분은 10조원 안팎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초과 세수 현상이 나타나자, 여당 지도부는 ‘옳다구나’ 싶어 대규모 추경편성을 예고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 4일, “이번 추경은 추가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추가 세수를 활용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받아 치면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검토를 공식화했다.

국가재정법 90조에는 초과 세수 사용의 우선순위가 명시돼 있다. 최우선 사용은 당해 연도 발행 국채 우선 상환이고 이어 △지방자치단체 등에 대한 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우선 출연 △잔여 세계잉여금 추경 재원 활용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이 경제의 균형추가 되어 부족한 가계와 기업의 활력을 보완하고, 계층간 양극화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며 내년에도 확장 재정의 기조를 유지할 것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이 경제의 균형추가 되어 부족한 가계와 기업의 활력을 보완하고, 계층간 양극화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며 내년에도 확장 재정의 기조를 유지할 것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다만, 해당 법문은 의무규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금이 더 걷히니 추경에 쓰겠다”는 입장은 위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나랏빚부터 우선 갚아야 한다’ 법 조항이, ‘급하니까 우선 쓰고 보자’는 식의 주장에 묻혀버린 것이다. 우선순위 4번이 1번보다 먼저 적용된 것이다.

해당 법조항은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말,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신설됐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지금, 국가재정 건전성의 확보는 당시 못지않게 풍전등화다. 기재부는 이를 어긴 이유라도 밝혔어야 옳다.

법정 조세지출한도 규정 '의미 실종'

지난 3월 30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57조원에 달하는 수준의 '2021년 조세지출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조세지출(Tax Expenditure)이란 조세감면·비과세·소득공제·세액공제·우대세율 적용 또는 과세이연 등 조세특례에 따른 재정지원을 뜻한다.

국가재정법 88조에,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세감면율이 국세 감면한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동법 시행령 제41조에, 국세감면율은 ‘직전 3개년 평균 감세감면율+0.5%’를 법정 국세감면한도로 정하고 있다. 금년도 법정 국세감면 한도는 14.5%이다. 그런데, 금년도 예상 국세감면 한도는 15.9%로 법정 한도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국세감면율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법정 한도를 넘길 전망이다. 최근 3년을 제외하면 국세감면율이 법정한도를 초과한 것은 금융위기를 겪은 2008~2009년뿐이었다.

IMF는 2021년 2월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국갗채무비율이 2015년 40.78%에서 2025년 64.96%로 10년만에 24%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IMF는 2021년 2월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국갗채무비율이 2015년 40.78%에서 2025년 64.96%로 10년만에 24%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는 올해 조세지출 신설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등 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 등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필요한 때에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문은 ‘노력하여야 한다’고 임의규정으로 기술돼 있지만, 해당 법조항을 어긴 기획재정부 장관은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당정 고위직들의 주장이나 결정에 영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홍 부총리, 과세자료 제출법 정면 위반

이달부터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됐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주거용 건물(주택)로, 아파트, 다세대 등, 고시원, 기숙사 등의 준주택, 그리고, 공장ㆍ상가내 주택, 판잣집 등의 비주택으로, 보증금 6000만원 또는 월차임 30만원을 초과하는 임대차 계약이 신고대상이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이번 달부터 시행된 임대차 신고제와 관련해 신고 내용을 세금 부과를 위한 정보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행 ‘과세자료의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세청장은 근거과세(根據課稅)와 공평과세(公平課稅)를 실현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법률에 따라 축적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현행 주택임대차 소득에 대한 과세체계가 수직적ㆍ수평적 조세형평성 확보의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해당법의 주무 부처 장관까지 나서서 현행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발언이다.

아무리 장관일지라도 현행법을 어기는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남발하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예비타당성 조사란 무분별한 토건 사업으로 인한 혈세 낭비를 막고, 효율적인 국가 예산을 운용하기 위해 실시하는 제도로, 이 제도는 DJ 집권기간 중인 1999년도에 신설됐다.

국가재정법 제38조 1항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으로 사업 추진의 시급성, 국고 재정 여건, 정책성, 경제성 등을 고려해 예비타당성을 조사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동법 제38조 2항에 의거, 지역균형발전, 공공시설, 국가안보, 남북경제협력, 재난 예방 등의 사업은 제외된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 등과 관련해 60조 3천억원의 예타면제 사업을 진행했다. 박근혜 정부도 예타면제 사업으로 23조 6천억원을 집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말까지 무려 95조 4천억원의 예타면제 사업을 추진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지출한 금액보다 많다.

지난 2월 26일, 국회는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는 가덕도 신공항을 예타 면제 대상으로 하는 특례조항이 포함돼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가덕신공항이 추진과 관련해 사업비가 28조 6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초 부산시가 추정한 7조 5천억 원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100조원이 넘는 예타면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정권마다 예타면제 단서 조항을 지나치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자영업 전면 손실보상이 답이다 

지난 7일 당정회의를 통해 코로나19 영업제한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손실보상법을 소급 적용하지 않고 맞춤형 피해지원금 등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3항에,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ㆍ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른바 ‘조정보상의 원칙’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영업금지 또는 제한 조치는 공공필요에 해당하는 까닭에 정부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대법원 판례를 보면, 손실보상은 소급 적용은 물론, 미래 손실예상액까지 포함돼야 마땅하다.

민주당 소속 송갑석 의원은 손실보상 대신 맞춤형 피해지원금 등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그동안 본 피해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자영업 손실보상 관련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분명 대한민국 헌법 위반이다. 또한, 보상이란 정부가 채무자의 지위에서 당연히 지급해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인심 쓰듯 지급하는 지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수의 FTA를 체결할 때처럼 피해 영향조사도 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며시 넘기는 사례가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 망각 '정·관계'

국회법이나 많은 행정법에는 ‘할 수 있다’ 또는 ‘노력하여야 한다’는 등의 임의적 법문이 너무 많다. 단순히 선언적 규정에 불과해, 밥 먹듯이 쉽게 법을 위반할 요량이라면, 이런 임의적 법 조항을 굳이 신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입법 노력이 아까울 뿐이다.

‘하여야 한다’ 또는 ‘할 수 없다’ 등의 강제규정을 위반했더라도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이러니 이들은 필요에 따라 편한 방향으로 법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책임은 부담하지 않으면서, 권한은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결산서를 보면, 국가재정법이나 국회법을 위반한 예산집행 사례들이 너무 많다. 쓸 데 쓰고 아낄 곳은 아끼는 재정 확장기에 준칙이 실종 상태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들은 법률에 따라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 즉,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만약 이들이 주인에 해당하는 국민의 의사에 반해 대리인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을 하거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의심되는 행위를 한다면 이것은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국민은 코로나 19의 전쟁통에서도 법을 준수해 왔다. 정관계, 재계 등 우리 사회 지도층 모두는 과연 수범을 보였는가? 

대한민국은 외환과 금융 등 양대 위기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빚더미에 재정지표가 최악이다. 성숙 경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돌발한 코로나19 사태로 지출 요구가 빗발친다. 재정의 씀씀이가 커질수밖에 없는 전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허나 선심성 재정 정책이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정치권의 착각은 국정농단이다. 재정 건전성의 목표를 간과한 막무가내 경기진작은 성장잠재력 확보의 걸림돌이자 오히려 불평등과 불공정,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코로나19는 백신 접종으로 넘어갈 수 있으나, 재정파탄은 백약이 무효다. 가계와 기업, 국가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회복에 최우선 과제는 지속가능한 재정의 건전성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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