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ESG 경영을 선언한 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제조, 에너지, 금융, 식품, 미디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기업들은 앞다투어 ESG 경영을 선포했다.

다른 기업에 뒤처질세라 그 어느 때보다 빨리 ESG 경영을 추진했고, 이러한 활동들은 연일 언론에 홍보되어 하루도 빠질 날 없이 ESG 관련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업들이 ESG에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좋은 일이고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 기업들이 발표한 ESG 활동들을 살펴보면 그 내용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기업들이 ESG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실천한 활동은 위원회 설립과 채권 발행, 그리고 환경 캠페인이다. 올해 1~5월까지 ESG 관련 위원회를 설립, 개편한 기업은 상장사 기준 총 61개이다. 단순 계산하면 2.5일마다 1개씩 ESG 위원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중 주요 경영진 직속 위원회 형태로 만든 곳은 8개 기업이다. ESG가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CEO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3월 이후부터 ESG 조직 개편을 한 기업이 급증하였는데, 이는 주주총회 시즌을 기점으로 ESG 경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음을 의미한다. 

올해 상반기 민간 기업이 발행한 ESG 채권 발행액은 9조30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발행 규모였던 4조 240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4대 시중은행이 ESG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만 4조원에 달한다.

제조 및 에너지 업체들은 그린본드를 발행해 친환경 사업용 자금을 확보하였고, 해외 ESG 채권 발행도 크게 늘어났다.

기업들이 앞다퉈 ESG 채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투자 기관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정책적으로 ESG 채권 투자를 확대하고 자산운용사들도 ESG 펀드를 설정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면서 ‘친환경 기업’이라는 인식도 제고할 수 있어 ESG 채권 발행은 매우 효과적인 ESG 경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한 환경 캠페인 역시 활발하다. 도시숲 조성을 위한 기부를 통해 시민들에게 생활권녹지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기후변화 대응 및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숲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도 있다.

RE100에 가입하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RE100 (Renewable Electricity 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으로, 구글, 애플, GM 등 298개의 기업들이 가입돼 있다.

이러한 ESG 활동들은 ESG 경영의 첫 걸음이자 자본주의 패러다임 전환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너나할 것 없이 비슷한 행태의 ESG 경영을 계속 추진한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야 할 재무실적과 기업가치 증대로까지 이어지지 못할 우려도 있다.

재계가 새해 초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을 앞다퉈 발행하고 있다.

실제로 런던 비즈니스스쿨 연구팀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 4000여개 기업의 ESG 활동을 조사 분석했는데 친환경 활동, 노동관행, 이사회 구성 등 CSR 및 거버넌스 분야에서 거의 모든 기업들이 유사한 활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경영의 대표적 학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전략 (strategy)’과 ‘효율적인 오퍼레이션 (operational effectiveness)’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폐기물 관리 시스템 도입이 경영 활동을 잘 돌아가기 위한 ‘효율적인 오퍼레이션’이라 할 수 있지만 이 활동으로 실적이 늘어나거나 기업가치가 크게 증가할 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ESG 경영에 있어서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지속적 성장은 유지하기 어렵다. 

ESG 경영에 임하는 기업들의 진정성 여부도 중요하다. 유행처럼 만들어지는 EGS 위원회의 진정성을 두고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ESG 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어 구성원 선정기준이나 조직 형태도 제각각이다.

ESG 채권 역시 마찬가지다. 채권 발행으로 ESG 경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은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더 큰 문제는 ESG에 불을 지폈던 투자자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ESG에서 발을 뺐을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최대 식품 기업 다논(Danone)이다. 다논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친환경 방침을 세우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익 추구를 강조하는 등 ‘ESG 경영의 교본’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러나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2020년 이후 1년 반 사이 주가는 20% 넘게 하락하고, 매출은 7%나 줄어드는 등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결국 2021년 3월 다논의 주요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들이 7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에마뉘엘 파베르 CEO에게 퇴출 압박을 가했고, 파베르 CEO는 사임하게 된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 역시 ESG 관련 지수 투자 수익률이 일본 토픽스(TOPIX) 지수보다 저조해지면서 “환경이나 ESG라는 명칭때문에 수익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ESG에 대해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ESG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투자자라도 자신들이 정한 일정 수준의 수익률이 지켜지지 못하면 언제든지 ESG에서 발을 뺄 수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기업들도 ESG 경영에 소홀해질수 밖에 없고, ESG는 한 때의 트렌드로 끝나버릴 것이다. 

하지만 ESG는 한 순간의 트렌드로 사라질 정도의 가벼운 개념이 아니다. 오염된 지구를 살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망가진 세계 경제를 회복시킬, 그리고 배금주의(拜金主義)로 로 비뚤어진 자본주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마지막 기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가치에 중점을 둔 ESG에 관심을 갖고 진정성 있는 ESG 경영을 해 나가야 한다.

특히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기준하여 구매를 하는 MZ 세대는 진정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구매와 홍보로 응원하지만, ‘쇼잉’에 불과한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 운동으로 저항한다. 대중들의 가치소비가 이루어지면 기업의 실적과 주가도 올라간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초기 단계의 ESG 경영 활동들이 마무리되면 기업들은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내재화된 ESG 역량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 중심의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ESG 전략이다.

현재 기업 내 잠재되어 있는 ESG 리스크 요인이 무엇인 지를 파악해 취약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강점이 있는 부분에 자사의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 이때 부터가 ESG 경영의 진검 승부이다.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 곧 닥칠 ESG 세컨드 라운드에서 준비된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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