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책임 있는 대응책 나올 리 없어

| 미국 리스크에 ‘알아서 기자’식 대응은 안 돼
| 핵심 원인인 사드 빼고는 한중 갈등관리 어림없어
| 갈길 잃은 한국경제, 내우외환으로 몰락할 수 있어


“대미 수출 규모가 크고 중국의 경기 둔화에 많이 노출된 한국과 대만이 트럼프의 경제정책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과 무역 부문에서 연일 강공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세계 4대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미국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올해 경제적으로 가장 고전할 국가로 한국과 대만을 지목하며 한 발언이다.

▲ 단기부양책에만 급급했던 박근혜 대통령 ⓒthisismoney.co.uk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6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해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을 확정지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G2, 즉 미국과 중국의 위험관리를 전면에 내세운 2017년 경제정책방향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자.


미국 리스크와 대응 방향

올해 세계경제 지형을 바꿀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반이민정책’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Theresa May는 미국 우선주의에 영국 우선주의로 대응하는 한편, 반이민정책에 대해서도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메이 총리의 이 같은 입장으로 인해 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우리로서는 당장 미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과 한미FTA 재협상이 미국 우선주의의 첫 타깃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미 재무부는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 ▲GDP 대비 3%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 ▲GDP 대비 순매수 비중 2%를 초과해 외환시장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국가 등에 대해 환율조작 여부를 판단한다.

미 재무부는 이미 지난 10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중국과 한국, 일본, 스위스, 독일, 대만 등 6개국을 1개 이상의 기준을 충족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이중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조항을 의식, 대미 무역흑자 폭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는 4월 미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하기 이전에 대미 무역흑자 폭을 줄여 보겠다는 의도다.

▲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 중인 유일호 경제부총리(2017.01.26) ⓒ사진:NEWSIS 제공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은 미국산 셰일가스와 국내 조달이 어려운 고가의 자본재 수입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이미 2017년부터 2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연간 280만 톤 규모의 셰일가스를 수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향후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감행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에 대비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수출금융과 정책자금 지원도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두려운 나머지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부터 줄이고 보려는 것은 장기적인 대책이 아닌 ‘사대주의적 임기응변’일 뿐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미 재무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여건 중 ‘200억 달러’ 조항을 ‘100억 달러’로 수정한다면, 또 그대로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 폭부터 줄이고 볼 건가? 이 사안은 갈길 잃은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두 번째 위협은 한미FTA 재협상 건이다. 출범 직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후속조치로 멕시코의 엔리케 페나 니에토Enrique Pena Nieto 대통령과 한 시간가량 국경장벽 설치비용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렬되었고, 이어 정상회담까지 취소된 바 있다.

▲ 미 트럼프 대통령과 멕시코 엔리케 페나 니에토 대통령 ⓒantrapos.com

이러한 기조는 다자간 무역협정Mega FTA보다 양자간 무역협정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한미FTA 재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는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하드 브렉시트를 확정한 영국, 북미자유무역협정 탈퇴 가능성이 높은 멕시코, 일본 등과의 FTA 체결에 속도를 내고,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참여 중인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의 FTA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자칫 미국 고립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FTA 다변화 노력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로 충돌 중인 현실, 한중 간의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형형이라는 현실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리스크와 대응 방향

현재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장 큰 사안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국 배치 문제다. 그럼에도 지난 26일 개최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는 단 한 번도 사드라는 용어 자체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사드 배치안이 확정된 이후, 중국은 한한령과 비자 발급 제한조치 등을 비롯, 적지 않은 비관세장벽을 동원한 보복조치를 실행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올해가 한중수교 25주년이라는 점을 활용해 보다 강력한 갈등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리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는 중국의 10개 성과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올 상반기에 개최되는 한중경제장관회의와 한중FTA 이행위원회 등 기존의 소통 창구를 적극 활용하며, 기존의 한중통상점검TF를 민관합동회의로 확대 개편한다는 구상이다.

▲ 한중 갈등의 핵심 원인, 사드THAAD 한국 배치 ⓒglobalsecurity.org

그러나 우리 정부가 내놓은 방침은 한국과 중국이 갈등을 겪고 있는 핵심 사안, 즉 사드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라 변죽만 울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중국의 10개 성과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건, 기존의 소통 창구를 활용하건, 회의체를 확대 개편하건, 그것들이 사드 문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런 방안들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구차한 해결을 구걸하는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더군다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한중 간 채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드 배치가 미중 간 패권다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중 갈등의 주 원인이 사드 배치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중국과의 갈등 관리는 실패할 공산이 크다.


한국 리스크와 길 잃은 한국경제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터널로 접어들었다. 2010년에 6.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던 2013년 초 2.3%로 곤두박질친 이후 2014년에만 반짝 3.3%를 기록했을 뿐, 내내 2%대를 기록했다. 올해 정부가 예측한 경제성장률도 2.5%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2%대 초반을 예측한 스탠더드앤푸어스, 무디스 등의 예측보다 그나마 높은 편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성장률 방어를 위해 돈을 풀어 일시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단기부양책을 써왔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 여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는 이미 1,300조 원을 넘어서면서 소비여력을 고갈시켰고, 건설․부동산 경기 부양은 임계치에 다다랐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장기적인 플랜을 진작부터 가동했어야 하지만, ‘빚 내서 집 사라’는 단기부양책에만 매달리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국면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특히 건설에 매달린 결과는 참혹하다. 한국은행의 ‘201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한 분야는 제조업도 서비스업도 아닌 건설투자였다. 그것도 지난해 건설투자의 증가율이 2015년의 3.9%를 훨씬 능가하는 11%를 기록, 1993년 이후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 기간, 기업의 투자심리는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다. 2015년에 그나마 5.3%를 기록했던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2016년에는 -2.4%를 기록해 리먼브라더스 사태 여파로 몸살을 앓았던 2009년의 -7.7% 이후 7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질 정도로 말이다.

이제 건설투자가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시대는 갔다. 이는 주택경기가 침체기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또한 소비심리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의하면 2017년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 역시 2009년 이후 거의 8년 만에 최저치인 93.3을 기록했다. 거기에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은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국내 리스크에 대응할 정책도, G2 리스크에 대응할 정책도 없다.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그저 다급한 현실에 임기응변식으로 끌려 다니고만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책임 있는 대응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을 고립으로 몰아가기 전에, 우리 내부 문제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내려앉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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