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한국경제가 조로증을 극복하고 회춘하기 위한 유일한 처방

조로증은 어린 나이에 노화현상이 나타나 겉모습도 노인처럼 되어버리는 희귀한 유전성 질환이다. 한국경제는 마치 조로증에 걸린 아이처럼 완전한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노화현상을 겪으면서 성장 동력이 쇠잔해지고 서서히 장기침체의 나락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조로증에 걸리면 잘해야 십대 후반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가 회춘하는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정확한 진단을 하고, 이에 입각해서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명견만리 프로그램 캡쳐>

1960년대에 도약의 단계에 접어든 이래 한국경제는 1980년대 말 ‘3저호황’에 이르기까지 두 자릿수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했지만, 그 이후 성장률은 속절없이 하락을 거듭하였다. 1990년대 7%대에서 2000년대 5% 그리고 2010년대에는 3%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수년간은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KDI나 국제기구인 OECD가 추정한 잠재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더 낮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들 기관이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대의 잠재성장률을 전망했던 시점에 비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이러한 성장 둔화는 상당부분 경제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너무 일찍 너무 심하게 성장동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선진국이라고 하기는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노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조로현상을 나태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인당 국민소득이 10년째 2만 불대에 머무르고 있다.

개도국 경제가 선진국 경제에 점차 근접한다는 ‘수렴가설’에 입각해서 한국경제의 성장을 평가해보면 이러한 조로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과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1961년에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92달러로 미국의 2,935달러에 비해 3.1%에 불과했는데, 1996년에는 한국의 일인당 소득이 미국의 43.7%까지 따라갔다.

이때까지는 수렴가설과 부합하여 한국의 일인당 소득이 빠르고도 지속적으로 미국 수준에 접근해갔다. 그러나 그 후 20년이 지난 2015년에는 한국의 일인당 소득이 미국의 48.5%로서 거의 미국을 추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7~80% 수준도 아니고 40% 수준에서부터 성장동력이 감퇴하고 노화현상이 심화하여 미국과의 상대적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경제가 조로증에 걸렸는가? 한마디로 답하자면 성장체제의 전환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도약단계에서 한국은 추격형 성장체제를 구조화시켰다. 이는 개도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성장체제다.

한국의 경우에는 물론 박정희 모형이라고 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특징적인 형태로 이러한 성장체제가 성립되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하듯이 경제가 도약 단계를 지나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성장체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어 소위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곧 조로증이다.

한국은 엄연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득 수준만 놓고 보면 선진국의 말단 정도로 분류하는 것이 옳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인들이 워낙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며, OECD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생산성이나 사회문화적인 면에서는 선진국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특히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은 지극히 낮다.

한국경제가 추격형 성장체제에서 선도형 혹은 혁신형 성장체제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 근본 원인은 ‘성공의 함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말하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모형의 유산 때문에 성장체제 전환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됨으로써 박정희 패러다임의 완전한 폐기와 성장체제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경제민주화는 한국경제가 조로증을 극복하고 회춘하기 위한 유일한 처방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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