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없는 양측 논리…좁혀지지 않는 간극
끊없는 소요…”회사, 고객, 주주 모두가 피해자”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사옥(제공=교보생명)

금융출입 기자들 사이에 ‘뉴스지만 뉴스가 아닌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간 법적 공방입니다. 지난 2018년 말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실행을 시작으로 보면 약 4년 정도 된 이야기지만, 교보생명 지분을 어피니티가 취득한 2012년을 기점으로 보면 10년 묵은 이야기입니다. 너무 지난한 과정에 이제 당사자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지쳐가는 가운데, 승자는 없고 회사만 골병이 드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혹 그간의 전개상황에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 사건의 개요를 골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12년 사모펀드 어피니티를 중심으로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 중이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총 1조2054억원(1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합니다.

다만 PEF는 투자금 회수(EXIT)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수 방법으로 교보생명은 2015년 9월까지 상장(IPO)을 추진키로 약속하고 만약 상장에 실패하면 컨소시엄 지분 24%를 신창재 회장이 되사야 하는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계약 조건에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2015년 상장을 추진하다 시장 침체로 무산, 이후 2018년 재상장 추진이 있었으나 어피니티 측에서 풋옵션을 행사하며 분쟁은 시작됩니다.

분쟁의 사유는 돈 문제입니다. 어피니티가 딜로이트안진을 통해 산정한 적정 주가는 40만9912원으로 이를 적용해 주식을 되사오려면 2조원이 넘는 금액이 필요했으나 이를 신창재 회장 측에서 반발하며 협상은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후 어피니티가 교보생명의 풋옵션 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2019년 3월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 신청을 했으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황희정승’ 판결이 나오며 상황은 역전됩니다.

판결 내용은 “풋옵션은 유효하나 딜로이트안진이 제시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는 승자를 알 수 없는 결론입니다.

그 후로도 민형사상의 크고 작은 법정 공방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ICC 중재 자체가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그 결론조차 한 쪽에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매사에 양측의 해석이 다르고 그때마다 언론을 통한 난타전이 이어져 피로가 쌓이고 있습니다.

어피니티 측에 물어보면 “당초 약속대로 풋옵션을 행사할 테니 주식을 사가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교보생명 측에 문의하면 “상황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통해 정상적인 엑시트가 가능한 IPO를 어피니티가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교보생명은 올해도 세 번째 상장에 도전했습니다. 다만 지난 7월 8일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위원회는 교보생명의 상장 미승인 결정을 통보했습니다. 거래소 입장에서 주요 주주간 법적 공방이 있는 상황에서 IPO를 허락해줄 수는 없습니다. 상장 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요인 가운데 지배구조는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상장 후 갑자기 최대주주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거래 안전을 위해서라도 승인은 나지 않습니다. 작년 카카오페이 IPO 당시 2대주주인 알리페이(알리페이 싱가포르 홀딩스)와 관련해 거래소는 ‘최대주주 지분 관련 상장 후 경영안정성 위험’을 사유로 들어 정정신고서를 내도록 해 상장 일정이 미뤄진 사례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교보생명이 올해 또 다시 IPO에 실패한 이유가 주요주주간 지분을 둘러싼 법정 리스크로 추정되자 여론은 교보생명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뀝니다.

현재 금리인상 기조로 장기 채권 금리가 오르고, 신 국제회계기준(IFRS17), 신지급여력제도(K-ICS) 등이 반영되면 생명보험사 재평가가 일어나 상장에 유리하다는게 교보생명 설명입니다.

이런 호기에 어피티니가 지나친 욕심을 부려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고 회사가 상장의 기회를 놓쳐 신규 자금 확보를 통한 성장 동력을 얻지 못한다는 회사 측 주장입니다.

특히 어피니티 측에서 주장하는 풋옵션 실행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를 고집하는 것은 IPO를 원치 않는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으며 “회사를 통째로 먹으려는 속셈”을 의심합니다.

어피니티 측은 “이미 ICC 2차중재 재판을 신청했고 일부 언론의 기사화와 달리 ‘중재재판부 구성’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ICC가 단심재를 원칙으로 하는 것은 맞지만 이번 2차 재판의 쟁점은 1차와 달리 풋옵션 실행의 강제성 부여에 맞춰져 있는 만큼 일사부재리를 논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계약을 했으니 약속을 지키라는 쪽과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부당하니 따를 수 없다는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이어가는 가운데, 대한민국 빅3 생명보험사인 교보생명의 브랜드는 자꾸 훼손되고 있습니다.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도,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도, 각자의 이익을 쫓는 당사자까지 모두 원치 않는 방향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 압박 속 생명보험사는 장기보험 상품의 경쟁력을 잃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경쟁 회사들은 디지털화, 헬스케어 신사업, 제판분리 등 다양한 시도 속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생명보험사는 사익을 추구하는 회사지만 불의의 재난이 닥쳤을 때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공적 기능을 민간에서 수행합니다. 생명보험업계 우량 회사 교보생명이 짐을 벗어던지고 빠른 시일 내에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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