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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비율로 본 한국경제의 조로증
피케티 비율로 본 한국경제의 조로증
  • 유종일 (straightnews.co.kr@gmail.com)
  • 승인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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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억만장자 중 상속부자의 비율은 74.1%로 세계 최고 수준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성장률이 하락하는 두 번째 큰 이유는 자본의 축적 자체가 가져오는 성장 동력 감소다. 자본이 노동력에 비해 많이 축적될수록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투자를 해도 성장률이 별로 오르지 않는 현상이다.

적은 양의 자본에 많은 노동이 달라붙어 일할 때에 비해 많은 양의 자본에 적은 노동이 달라붙어 일하는 경우에 자본 한 단위의 생산량, 즉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투자의 성장에 대한 기여가 감소한다는 관점에서 본 것이 바로 수확체감의 법칙이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본이 축적되는데, 그럴수록 더 이상 자본축적에 의한 경제성장은 이루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소득 비율을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과 분배를 분석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표로 제시했다. 그 결과 이를 ‘피케티 비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케티는 이 비율이 높으면 노동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의 비중이 커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지적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이미 축적된 자본에서 나오는 재산소득에 비해 비중이 계속 감소된다면, 심지어 상속부자들이 부와 특권을 독점하는 ‘세습자본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자본/소득 비율은 소득/자본 비율, 즉 자본생산성의 역일 따름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은 생산과정에 투입하는 생산 자본만이 아니라 자본소득을 발생시키는 모든 형태의 국부를 통칭하는 개념으로서 이를 자본생산성의 역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부는 직간접적으로 생산에 활용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는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피케티가 제기하는 과도하게 높은 자본/소득 비율의 문제는 사실 인구에 비해 자본이 과잉 축적됨으로써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개도국에 비해 자본축적을 많이 한 선진국들이 피케티 비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은 완전한 선진국이 되지도 못했는데 이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선진국을 대상으로 국부/소득 비율을 평가한 결과 미국 4.45, 영국 4.92, 캐나다 5.03, 독일 5.67로서 국부가 국민소득의 4.5~6배 수준이고, 이 비율이 가장 높은 경우에는 호주 7.07, 프랑스 7.34, 일본 7.95로서 약 7~8배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2012년에 이 비율이 무려 9.45였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이렇게까지 높은 데에는 높은 토지 가격의 영향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프랑스, 일본, 호주 등에 비해 약 1.5배 정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고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여전히 가장 높은 편이다.

이는 토지를 제외한 생산 자본만을 놓고 볼 때에도 한국의 자본/소득 비율이 매우 높고, 거꾸로 자본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배의 측면에서 보아도, 한국의 자본소득 비중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고 노동소득 비중은 매우 낮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경제의 높은 피케티 비율은 또 하나의 중요한 조로증 증상이다. 이는 인구과잉과는 정반대인 자본과잉이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인구과잉 시대의 친자본·반노동 기조를 유지해왔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지수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는데, 국제노동조합연맹의 ‘노동자의 권리’ 평가에서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법인세나 종부세, 상속세 등 자본에 대한 과세는 줄이고 근로소득세와 간접세 등 노동에 대한 과세는 늘리고 있다. 그 결과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런 현실을 ‘수저계급론’으로 풍자하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말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피케티의 우려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한국은 자수성가한 부자는 적고 상속부자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세습자본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억만장자 중 상속부자의 비율은 74.1%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비율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2%와 18.5%에 불과했으며, 미국은 28.9%, 유럽은 35.8%였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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