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기해가 자기의 원수를 천거했다는 말로, 인재 등용에 공평무사한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도공(悼公)의 신하 기해(祁奚)가 중군위(中軍尉)의 직에 있었는데, 그의 나이 70에 이르자 고령을 이유로 사직을 청했다. 그러자 도공이 적합한 후임자를 천거해 달라고 하여, 기해는 그의 원수인 해호(解狐)를 추천했다. 이를 들은 도공이 깜짝 놀라면서, “해호는 그대의 원수인데 어찌 그를 천거하느냐?”라며 물었다. 이에 기해는 “전하께서는 저에게 적임자를 물은 것이지 저의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후 공교롭게도 해호가 죽었으므로 또 기해에게 적임자를 천거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도공은 또 다시 놀라면서 “기오는 경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이에 기해는 “전하께서는 적임자를 물으셨지 저의 아들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였다. 기해의 공정함을 안 도공은 곧 기오를 임명했다. 인사의 중요성을 거론할 때마다 회자되는 고전의 한토막이다. 흔히 인사(人事)를 만사(萬事)라고 말한다. 인사야말로 고도의 정무활동이며 잘만 이루어지면 만사형통의 출발이요, 자칫 잘못하면 망사(亡事)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사진제공:뉴시스

23일 새정치연합 사무총장에 범주류 성향으로 분류되는 3선의 최재성 의원이 임명됐다. 전임 사무총장 등 정무직 당직자 7명이 4.29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꼭 한 달만의 일이다. 그동안 이종걸 원내대표 등 비주류 측에서 완강하게 그의 임명을 반대해왔지만 문재인 대표는 끝내 이를 밀어붙였다. 사실 사무총장은 지난 2.8 전당대회 직후 당내 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당시 비주류로 분류되는 양승조 의원에게 안배되었던 주요 당직이다. 더구나 전당대회에서 ‘이기는 정당’이라는 구호를 들고 당대표에 선출된 문재인 대표였다면 4.29 재보선 전패에 대하여 더욱 더 반성하면서 당내 통합에 앞장서야 할 입장이 아닌가? 그러나 최근 당내 혼란을 틈타 본인이 져야 할 책임을 대신 진 양승조 전 총장을 물러나게 하면서까지 사무총장 자리마저 아예 범주류 인사로 채워버린 것이다. 이는 명백하게 후안무치한 인사요 무엇으로 포장하든 오로지 자신의 목적 달성만을 위함으로 비쳐질 뿐이다. 알다시피 총선을 앞둔 사무총장직은 공천실무를 관장하는 막강한 조직관리 책임자이다. 실질적인 재정권과 인사권을 갖고 있으며 한창 가동 중인 혁신위원회 업무지원 책임자이기도 하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당대표 1인이 독주하는 단일지도체제가 아니다.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당헌을 개정하여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전략홍보본부장, 디지털소통본부장 등 주요 당직에 대하여 최고위원회 의결을 명문화하는 등 최고위원들의 권한을 강화한 집단지도체제가 가미되어 있다. 게다가 문재인 대표는 전당대회 개표 결과 당원과 국민들로부터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경쟁자인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겨우 3.5% 차이로 신승한 당대표이다. 이것은 비주류들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해달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기 인사는 반드시 실패한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중앙당 권한을 축소했고 사무총장도 사무처장으로 강등시켰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당의장은 조직전문가 박양수 전 의원을 중앙당 사무처장으로 임명하여 선대위 조직위원장을 겸직시켰다. 그러나 그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과정에서 상위순번은커녕 공천에서조차 탈락했다. 그나마 여당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는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보상을 받았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사무총장직에 임명된 이는 신계륜 전 의원이다. 그런데 그 역시 ‘공천 특검’으로 불린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도덕성 검증에 걸려 공천에서 탈락했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대 총선 때는 한명숙 대표가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그의 보좌관이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3년 동안 1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인정되어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부산에서 한창 선거운동을 펼치던 문재인 후보까지 올라와 당대표를 설득한 끝에 사무총장 교체로 가닥을 잡았고, 후임은 불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 박선숙 의원이 맡았다. 한편 임 전 의원은 지루한 재판 끝에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현재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처럼 무리한 인사는 무리한 결과를 낳는 법이다. 이는 야당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530만표 차이로 대승을 거둔 이명박 정권 초기에 실시한 18대 총선, 전문가들은 다들 한나라당의 개헌 선까지도 전망했다. 그러나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이른바 친박 공천 학살 속에 한나라당은 간신히 과반수에서 3석 턱걸이에 그쳤다. 당시 친박 학살을 주도한 사무총장은 바로 이방호 전 의원이다. 그는 한나라당 텃밭인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오기 인사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야당이 늘 비판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친박계로 집권당 원내대표를 거쳐 총리직에 오르면서 단숨에 대권을 바라보는 반열까지 올랐다. 청와대와 거리두기에 나선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야심찬 ‘부패척결’의 전도사로 나섰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되며 박근혜 정부를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빠뜨렸다. 그는 지난 2월 16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과반수를 겨우 7표 넘겨 총리에 인준됐다. 차남의 병역면제 등 숱한 의혹을 딛고 역대 국무총리 중 두 번째 낮은 찬성률(52.7%)로 취임했지만 결국 70일 만에 낙마하는 오명까지 남겼다. 오기 인사가 빚은 참극이다.

한편 최재성 사무총장은 불과 한 달 여 전인 지난 5월 7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종걸 의원에게 패배했다. 그런 이종걸 의원과 최재성 의원이 나란히 앉아서 당무를 보아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당의 투톱인 원내대표를 일부러 골 지를 셈이 아니었다면 이런 인사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최재성 사무총장이 혁신 업무의 적임자임을 설명하면서 그가 3년 전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최재성 의원 자신의 입으로는 직접 불출마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가 제대로 된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불출마에 대한 확인부터 했어야 옳았다. 만사라고 하는 인사야말로 고도의 정치적 활동이다. 결코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쟁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을 맡아 수년간 인사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문재인 대표가 기해천수(祁奚薦讐)를 모른다면 그의 리더십은 심히 의심스럽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데이터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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