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인 로지스틱스(logistics). 사실 병사와 물자를 전선으로 보내는 군사술로 출발한 로지스틱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즈니스계로 편입됐다.

엄청난 양의 인력과 물자를 전 세계에 배치해야 했던 2차 세계대전 동안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실험됐는데, 기업은 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역 지구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으로 꼽히는 컨테이너는 2차 대전 중 미군에 의해 처음 실험됐고, 베트남 전쟁을 거쳐 표준화된 지구적 형태로 확립됐다. 

또한 2차 대전 중 레이더망 배치, 잠수함 수색 활동 등 군사적 의사결정을 위한 작전 연구(OR)의 일환으로 개발된 총비용 분석을 통해 로지스틱스에 시스템 접근이 도입됐는데, 이를 통해 로지스틱스는 완전히 다르게 개념화됐다. 

로지스틱스는 전쟁술로서의 역사를 버리고 민간화된 것이 아니라 전쟁술과 비즈니스술이 분리불가능할 정도로 뒤얽힌 다른 무엇이 됐는데, 공급 사슬 보안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공급 사슬은 로지스틱스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인프라, 정보, 재화, 사람들로 구성되며 빠른 흐름에 집중한다. 

즉 공급 사슬의 최대 과제는 사물을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순환시키는 것으로, 이를 위해 공급 사슬 보안의 논리를 동원해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공급 사슬 보안이란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과 그로 인한 시민과 조직된 사회의 경제적·사회적·물리적 안녕에 대한 위협을 다루기 위해 적용되는 프로그램, 시스템, 절차, 기술, 해결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은 곧 시민과 사회의 안녕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특 공급 사슬의 보안은 시민과 사회의 안녕을 보장하는 길이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선(善)이 됐다. 

이에 따라 공급 사슬 보안은 무역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 근본적인 문제로 부상하며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은 삶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세계를 멈출 수도 있다"

이른바 '난폭한 무역(rough trade)'이란 말은 군사술과 비즈니스술의 양 측면을 동시에 지닌 폭력적인 로지스틱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적 은어로 널리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trade는 게이 남성의 파트너 혹은 남창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rough trade는 난폭하고 폭력적인 파트너를 말하며, 특히 대형 트럭 운전사, 건설 노동자, 부두 노동자 같은 육체 노동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문제로만 여겨지는 로지스틱스를 이처럼 정치적인 무대 위로 끌어올리면, 교란 역시 정치적 전술이다. 

교란은 더 높은 생산성의 요구와 그에 따른 압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전술이며,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는 유럽인과 싸우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전술이다. 

로지스틱스ㅣ데보라 코웬ㅣ권범철ㅣ갈무리

특히 '난폭한 무역'은 로지스틱스의 폭력적인(rough) 군사적 측면과 비즈니스적 측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여기서 군사와 민간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그 두 가지가 뒤얽힌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상품의 흐름을 최우선하는 이 네트워크 공장에서 그것을 교란하는 혹은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은 로지스틱스의 '삶'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악마화돼 폭력적으로 관리된다.

로지스틱스는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으로, 전지구적인 사회적 공장의 폭력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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