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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 권력 체계와 국가 정의의 상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사회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를 들라면 단연 국가 기관들을 뽑을 것이다. 자원외교와 4대강사업에서 폭로된 정부의 총체적 부실과 비리,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대통령과 해수부의 무능과 불통, 방산비리로 얼룩진 국방부, 성완종 금품수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권, 그리고 마지막 방점을 찍고 있는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에 이어 국민 감시 해킹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의 행태 등.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즈, BBC, 교도 통신 등 외신들은 과거 국정원의 추악한 평판과 선거개입 혐의, 그리고 금번 국내에서 사용하는 SNS에 대한 해킹 기능을 탑재 한 프로그램 구입 정황 등을 보도하면서 국정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였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전·현직 국정원장 등을 『통신비밀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안철수 의원도 국정원 해킹을 통한 사찰 의혹에 대해 검찰 고발에 나섰다. 그리고 최근 시사전문<돌직구 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이상(58.1%)이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이명박 정부가 36조나 투입해서 진행한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에 대하여 80.9%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정부와 국가 기관들이 이토록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는가? 이는 무엇보다 비정상적 권력체계와 국가 정의의 상실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부르는 비정상적 권력 체계가 작동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대통령 1인의 제왕적 통치체계가 자리 잡게 됨으로써 모든 권력이 국민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의 업적, 대통령의 심기 경호 그리고 제왕적 통치를 위해 정부 기관들이 동원되는 현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5.16 군사 쿠데타를 연상케 하는 5163부대 이름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국민 감시 해킹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담당 국정원 직원의 죽음을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단순 자살로 내사종결하는 경찰, 그리고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단 한건도 보도하지 않는 공영방송 KBS와 MBC(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모니터링 보고서) 등 공공기관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오직 정권 지킴이 역할을 위해 전 방위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다음으로 국가 정의의 상실은 국가 기구가 존립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은 근거의 상실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정의’는 국가 수립의 기초 원리이다. 공리주의적 국가관이나 자유주의적 국가관에서 국가는 다수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균형 있게 보호하기 위해 정의로움을 기준 삼는 것은 자명한 원리였다.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동일하게 작동하며, 개개인이 정의로우면 국가가 정의로워 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국가를 관리하는 관리자 그리고 기관은 우선적으로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정의로운가? 검찰이 정의로운가? 국회가 정의로운가? 국민들에게 물어봤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정의롭지 못한 권력, 정의를 기준 삼지 않는 국가기관이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4대강 비리, 성완종 사건, 세월호 비극, 국정원 선거 개입과 해킹 등, 정의를 상실한 권력과 정부로 인한 사회적 혼란으로 국민들은 좌절과 패배의식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지난 3월 ‘2.1지속가능연구소’와 대학생언론협동조합이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인식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는 응답은 46%에 그쳤고 '이민가고 싶다'는 응답은 47.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의 존립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정상국가를 향한 국가 정의 실현을 위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관들은 법과 제도가 명시하고 있는 자기 정체성(Identity)과 역할에 합당한 기능을 수행해야하고 보장돼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독점과 사유화 현상은 18세기 이전 유럽의 전근대적, 전민주적 정치체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세기 정치철학자인 아담 페르그송(Adam Ferguson, 1767)은 산업화와 다양한 직업의 출현, 개인주의의 발흥, 사회적 관계의 복잡화와 관심의 다양화로 인해 ‘명령과 복종’이라는 체계에 기반한 전 근대적 국가체제가 소멸되고 민주적 국가가 탄생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의 국가 탄생의 가장 기본적 환경은 사회의 다양한 분화와 권력의 분립임이 이미 18세기에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전근대적 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신의 정치’를 선포하면서 국회를 무력화 시키고, 여당의 원내대표를 폐위시키는 대통령이 현존하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지난 7월 21일 정치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박근혜 정부 집권 3년 차 여권 권력 구도’에 관한 여론 조사에서 현 정부의 핵심 실세 1위로 꼽힌 인사는 여당 대표도, 국무총리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아니었다. 또한 부총리나 장관, 수석비서관들도 아니었다.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핵심 실세 1위로 꼽혔다. 이 결과는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정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정치부 기자들의 답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정치부 기자들의 눈을 통해 본 박근혜 정부의 국가 운영체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권력의 사적, 비이성적 행사로 인하여 국가 이성(national reason)은 성장이 멈춰 있는 상태이다. 국가 이성이 정지되고 제도적 합리성(institutional reason)이 작동하지 않는 공권력과 국가 기구는 정의로운 거버넌스를 조직할 수 없다. 이러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대의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정당성이 없는 권력은 독재이고 폭력이다. 분권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이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이성이 회복되고, 각각의 국가 기관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책무(accountability)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정치 문화 필요하다. 이래야만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essential democracy)가 작동하는 정상 국가가 될 것이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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