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분명 풍요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덩달아 커지고 복잡해졌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어느새 모두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방에 ‘당신에겐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넘쳐난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행복해진다’고 외쳐댄다. 우리는 지금 ‘만들어진 혼란’ 속에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는 단순히 미니멀리즘을 말하고 있지 않다. 다 버리고 숲속에 들어가 도를 닦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심플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분명히 있다.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 ‘능력’이고, 그런 능력이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욕망에 대한, 미세 먼지 가득한 우리의 ‘풍요로운’ 현주소에 대한 신랄한 반성이 담겨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자신의 ‘생활’을 통해, 정체 모를 불안감을 없애고 살아갈 수 있는 슬기로운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내게 던졌다. 이때가지 줄곧, 변함없이, 집에 오면 무조건 보고싶은 프로그램이 있든 없든 텔레비전 전원을 켰다. 들어오자마자 버튼 꾹, 완전 자동으로. 왜 그랬을까? 어쩌면 텔레비전은 무언가를 ‘채워주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버튼만 누르면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마법의 상자. 이 상자는 인생에 늘 따라오기 마련인 고독을 잊게 해주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잊게 해주는, 반려동물 혹은 가족 같은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텔레비전은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며 가족은 더더욱 아니다. ‘전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환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떼어내는 일이기도 했다.'(42~43쪽) 

이 책의 원제는 ‘쓸쓸한 생활’이다. 왠지 쓸쓸한 이유는 “있어야 할 게 없는 듯한” 기분 때문이다. 있어야 할 것 같은 회사도 없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냉장고도, 넓은 집도 없는 삶을 저자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먹을거리를 살 수 있게 됐다. 머릿속으로 미래의 식탁을 상상하며 ‘언젠가’ 먹을 것들을 열심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오늘 다 먹지 않아도 되니까. 사람들은 이제,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사게 됐다. 언젠가 먹을 테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냉장고의 용량이 커져가는 모습은 사람들의 욕망이 확대돼가는 모습 그 자체다. 

남은 것이라곤 ‘소소한 나’뿐이다. 쓸쓸함은, 숨기려고 하는 순간 애잔함이 된다. 저자는 쓸쓸한 것을 숨기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랬더니 쓸쓸함은 ‘자유’와 ‘성취’의 감정을 안겨줬다. 

저자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생활’을 시작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있었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지켜보면서,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전기 제품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것들은 정말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을까?. 우리의 삶은 전기 제품의 사용으로 정말 풍요로워졌을까. 지금 우리가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편리해져야 하기 때문일까. 더 편리해지기 위해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이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더 많이 소유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나아가 저자는 이제껏 ‘필요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에 의문을 품게 됐다.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한 회사는 물론이고, 산더미 같은 옷과 신발, 이사 때가 돼야 빛을 보는 냉장고 속의 음식들, 꺼내 읽지 않는 무거운 책들과 먼지 쌓인 음반들. 몇 년 농성이라도 벌일 것처럼 ‘언젠가 쓸 것들’이 집 안에 넘쳐나고 있었다. 

저자는 퇴사를 하고 ‘회사’처럼,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물건들을 차례로 처분하고, 낡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했다. 편리한 것들에 기대 묻어놓았던 자신의 잠재력을 ‘채굴하고’, 겨울의 맛과 여름의 맛을 마음껏 음미하며 자유롭게 충만하게 살아간다. 

이나가키 에미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필요한 것들이 점점 줄어가자, 팽팽하게 부풀었던 풍선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바람이 빠져나간 풍선이 쭈글쭈글해졌다. 한때는 그런 건 안쓰러운 일, 쓸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쓸쓸함을 감추기 위해, 안쓰러운 자신을 안쓰럽지 않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온갖 물건으로 주변을 채워 부풀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놀랐다고 할까, 바람이 빠졌다고나 할까, 원래의 소소한 나로 돌아보니, 그게 참 생각보다 편하다. 불안하지 않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마치 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이미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236~238쪽)

이 책에는 어쩌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격렬했던 그 모든 ‘그만두기’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말한다. “정신없이 사 모았던 가전제품을 모두 처분한 내가 이렇게 편안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가전제품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가전제품과 함께 부풀려온 ‘욕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다. 폭주하는,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막연한’ 욕망.” 

이 책은 단숨에 읽어낼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크게 뒤흔든다. “냉장고 안에는 사고 싶은 욕구와 먹고 싶은 욕구가 터질 듯이 가득 차 있다”는 저자의 말이 일침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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