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주의자 강준만은 2008년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해온 강준만은 이 책을 통해 지방언론 등 다양한 지방 이슈를 제기하며 그 해법을 내놓는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분산, 지방언론사의 공공성 강화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 정치·행정의 사유화 중단 및 제대로 된 지방자치 실시 등이 그것이다.

 

2014년 말 현재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국내 주민등록인구의 49.4%가 서울, 인천, 경기도 등 3개 시도에 밀집해서 거주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이 인구 비중은 1기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된 1995년 이미 45.3% 수준이었다. 강준만이 ‘지방 식민지 체제’를 언급한 2008년에는 48.8%로 꾸준히 증가했고 이제 50%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예술 등 모든 것이 중앙으로만 향하는 현상은 ‘서울공화국’을 넘어서서 가히 ‘수도권공화국’으로 치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 부활 20년이 넘어섰지만 특히 정치의 중앙 권력화는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1948년 제헌국회 때는 어땠을까? 정원 200석의 국회의원 중 단 39석이 서울과 경기도에 배정되어 18.5%에 불과했다. 영남이 훨씬 많은 64석이었고 호남도 51석에 달했다. 이듬해인 1949년 정부가 실시한 인구센서스에서 수도권 인구비중은 국회의석 비중과 비슷한 20.7%에 그쳤다. 강준만이 그의 책에서 인용한 1966년 수도권 인구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본격적인 이농이 시작되기 전이라 아직은 23.6%에 그치고 있었다. 곡창지대 호남권은 비슷한 수준인 22.5%였고, 영남권이 31.1%로 가장 많았다. 따라서 다음해 6대 총선에서 국회의석은 영남권이 42석, 호남권 30석, 수도권은 27석으로 제헌국회 때와 비율 변화는 크게 없었다. 그러나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킨 1985년 2.12 총선 당시 수도권 인구비중은 39.1%로 대폭 증가했다. 영남권은 29.8%로 현상 유지됐지만, 호남권은 14.7%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국회 의석도 수도권 52석, 영남권 58석, 호남권 36석으로 수도권과 호남권의 역전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신민당 강세는 바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에 기반 한 것이었다.

 

2014년 말 현재 영남권(25.8%), 충청권(10.4%), 호남권(10.2%)의 인구비중은 다 합해도(46.4%) 수도권에 3%나 못 미친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 3개의 남부권역이 122석으로 수도권 112석에 비해 10석이나 더 많지만,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인구 상하한선이 줄어들면 이 차이도 덩달아 줄어들 것이다. 결국은 농촌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을 대변해줄 정치인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뜻이다. 양원제를 실시하는 미국은 상원을 통해 각각 인구수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상이한 주별 갈등을 잘 조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의원정수 18%에 이르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계층, 부문, 소수자의 이해도 잘 대변해야 하지만 지역구 의원을 통해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 최근 야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한 것은 그래서 일단은 환영할 일이다.

 

한편 17대 총선 때부터 실시된 1인 2표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들을 잘 살펴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이 수도권 인물 중심이었다. 지역구에서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새누리당은 17~19대 비례의원을 모두 68명 당선시켰는데 충청권 이남에서 거주하며 활동해온 인물을 단 8명만 배치시켰다. 비율로는 11.8%이다. 새정치계열 정당은 63명 중 11명으로 17.5%이다. 그런데 여야를 통틀어 이 19명 비례의원조차 영남권이 12명으로 절대 다수이고 충청권 4명, 호남권 2명, 제주도 1명 등으로 영호남 격차는 엄청 심하다. 특히 호남은 19대 때 처음으로 주영순(새누리당) 의원과 김광진(민주통합당) 의원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는데, 그나마 청년 대표 김광진 의원은 지도부 낙점이 아닌 1주일 동안의 심층 면접과 선거인단 투표에 의한 자력 진출이었다.

 

최근 새정치 혁신위원회가 5차 혁신안을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확대를 제안했다. 당대표까지 나서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택하지 않으면 망국적 지역주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하고 있는 비례대표제조차 비록 300석 중 54석에 불과하지만 수도권 집중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방분권에 역행하고 있다. 같은 지방 안에서도 인구수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당내 권력이 집중되는 영남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다 더해 철저하게 인구비례로만 국회의원을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자고? 수도권 집중은 더 더욱 심화되고 인구 약세지역 호남은 진짜 정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진보학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독일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직수입하는 것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영호남 간 격차 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다함께 지혜를 짜내야 한다. 당장 법제화가 어렵다면 현행대로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되, 권역별 명부작성은 각 정당 자율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해보자.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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