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배우이자 유엔 여성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엠마 왓슨과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작가, 사회운동가인 벨 훅스. / 엠마 왔슨 트위터 캡처
영국의 배우이자 유엔 여성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엠마 왓슨과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작가, 사회운동가인 벨 훅스. / 엠마 왔슨 트위터 캡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화비평가이자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가 간결하고 명확하게 친절한 페미니즘 입문서를 꿈꾸며 직접 써내려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과거 배우 엠마 왓슨이 자신의 페미니스트 북클럽에서 강력 추천한 페미니즘 입문서로, 이후 엠마 왓슨은 벨 훅스와의 교류를 이어가며 “벨 훅스와의 페미니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벨 훅스는 페미니스트 하면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이라는 편협한 이미지를 곧장 떠올리는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와 통쾌한 논리로 여성의 몸, 여성에 대한 폭력, 연애와 결혼, 양육, 일터에서의 여성 등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 정치와 그 실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보여주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혐오운동’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임을 강조한다.

또한 페미니즘 운동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끔 돕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운동임을 보여줌으로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전한다.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성을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누구보다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벨 훅스는 여자라고 무조건 페미니즘 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가부장제 사회에 사는 그 누구라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 남성중심주의임을 거듭 강조한다. 따라서 그녀는 페미니즘적 각성을 중요하게 본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십대 소녀였던 그녀는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한편 착취나 억압 체계의 피해자가 되어 거기에 저항한다고 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대중매체나 주변 환경, 부모에 의해 성차별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이경아 옮김(문학동네, 2017)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이경아 옮김(문학동네, 2017)

주 양육자인 성인 여성이 아동에게 행사하는 물리적 폭력, 가부장제적 남성성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남자아이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훈육방식 등은 모두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 교육의 일환이다. 특히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질투심과 공포, 증오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페미니즘으로 여성은 이러한 자기혐오와 열등의식의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 뿌리깊은 젠더 차별적 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에 물들지 않게 읽기 쉬운 글이나 텔레비전 방송, 노래 등을 통해 비판의식을 키우고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을 공유해 아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줘야 한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었을 무렵 주된 의제를 정한 것도, 대중매체의 시선을 끈 것도 고학력 백인 여성이었다. 노동자 계급 여성들이나 대다수 여성들에게는 무엇보다 임신중단권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경제적 어려움 해소 문제가 절실했으나 특권 계급 백인 여성들은 전업주부로 가정에 속박되고 예속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만이나 같은 계급의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얻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에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는 인종과 성별, 계급이 사회체계로 제도화된 사회에서 명백히 계급제의 말단을 차지했던 흑인 여성의 상황을 짚으며, 페미니즘 운동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선언한, 자기네 이익을 위해 성차별주의자 남성들과 결탁한 특권 계급 백인 여성들을 비판한다. 

벨 훅스는 노동자 계급 백인 여성들과 빈곤층 백인 여성들 그리고 모든 유색인종 여성들을 자기네 추종자로 전락시킨 이들의 야합적인 행태에 분노하며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서로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성이 다른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 계급이나 인종적 특권을 이용하는 한 페미니즘의 자매애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며 ‘자매애는 강력하다’는 기치를 높이 드는 벨 훅스의 목소리는 인종 갈등이 없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충’ 혹은 ‘워마드’라며 서로 갈등하고 결국 소통하지 못해서 망하지 않을까” 두렵다는 어느 이십대 페미니스트의 말처럼 한국 사회 또한 우리 안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부 비판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벽에 부딪혀왔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주류 페미니즘의 폐부를 찌르고 페미니즘 ‘내부’의 정치를 비판하며 백인 중산층에 맞춰진 포커스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옮겨가게 한 벨 훅스의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도 ‘자기비판’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페미니스트는 이미 우리 일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과거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많은 한국 여성들이 ‘프로불편러’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당당하게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고 젠더 차별적인 상황에 대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즘 덕분에 여성은 본디 타고난 그대로 사랑받고 추앙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서로 평가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다름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여성들은 원하는 남성과 원할 때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불만족스러운 섹스에 대해 애써 좋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임신을 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뿐 아니라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중단을 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성만 억압에서 풀려난 것이 아니다. 남성 또한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남자다워야 한다’는 억압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되찾고 자신의 참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 삶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했는지 직접 나서서 널리 홍보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는다면 페미니즘이 이러한 결실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의 의미를 되살리고, 티셔츠를 입고 자동차 범퍼에 스티커를 붙이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며 곳곳에 자리한 광고판으로 페미니즘을 알리자고, 페미니즘이 어떤 결실을 거두었는지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 짧고 쉬운 페미니즘 입문서에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샅샅이 살피고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하겠다는 페미니즘의 자신에 찬 약속을 되짚으며, 페미니즘이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지켜보라고, 더 가까이 다가와 페미니즘 운동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보라고 권한다. 페미니즘이 왜 모두를 위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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