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홍성범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1조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그룹 지분을 확보하고 이를 무기로 현대차의 출자구조 개편에 따른 지배구조 개선 추가조치와 이익 주주환원 등을 요구했다. 

엘리엇 계열 투자자문사인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엘리엇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보통주 10억달러(1조60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인들을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경영진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별 기업경영구조 개선, 자본관리 최적화, 그리고 주주환원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미국의 폴 엘리엇 싱어가 운영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1977년 설립되어 세계 각국의 퇴직연금, 국부펀드, 공공기금, 투자재단, 투자운용사 펀드 등에서 투자받은 350억달러(37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기업가치보다 주주가치만 생각하는 공격 성향의 ‘벌처 펀드’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곳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소송전까지 벌이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경영진을 압박한 곳이기도 하다.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일정 의결권을 확보한 후 그 기업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여 단기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배당을 더 하라고 압박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산매각, 지배구조 개선, 자기편 이사 선임 등도 추구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가치와 주가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단기 주주 이익 확대에 치우쳐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가 상승에 유리한 이익률 높이기에 몰두하다가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에 필요한 핵심자산 매각, 연구개발 축소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 뉴시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 뉴시스

2004년 영국의 헤르메스 자산운용은 삼성물산 지분 약 5%를 사들인 뒤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처럼 언론에 흘리고는 주가가 오르자 팔아치우고 떠났다. 2005년 미국 헤지펀드 칼 아이칸은 케이티앤지(KT&G)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함으로써 1년 만에 1천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이번 엘리엇의 요구는 로이터 통신의 분석처럼 최근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차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생긴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엘리엇의 이번 발표는 현대차그룹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로 들린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할 말이 있을 때 '다시 공개하겠다'는 뉴욕 현지 엘리엇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추가 요구도 있을 것 같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요구 내용이 보도된 후 "기업가치와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의 투자액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3사 시가총액의 1.4% 정도다. 3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보유한 엘리엇이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지분으로는 현대차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까지 걸었던 전력도 있는 만큼 엘리엇의 움직임을 꼼꼼히 살피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현대차그룹과 재계는 이번을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에 노출된 기업의 약점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상장회사들이 법을 잘 지키고 항상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행동주의 펀드가 도전해 와도 호들갑을 떠는 일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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