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려 주는 아내, 세대주는 남편, 명절엔 시댁부터….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생활 중인 사람이라면, 언제든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선택이 아닌 줄 알았던 순간조차 선택의 순간인 경우도 많다. 출산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택이듯.

사랑하지만 때로 우리의 선택은 너무 쉽다. 김은덕, 백종민 부부는 “여자니까, 남자니까”에 기대지 않고, 다른 커플들이 으레 그렇게 해 왔던 것들에 의문을 품어 본 사람으로서 <사랑한다면 왜>를 썼다고 한다.

성평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다.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한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두 사람이 당사자로서 곰곰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왜 “여자니까, 남자니까” 하는 것들이 끼어드는지, 왜 사랑과 존중은 부차적인 요소여야 하는지 묻는다.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 앞에는 축복보다 더 많은 의문이 놓인다. 예식을 준비하다가, 신혼집을 보러 다니다가, 신혼여행을 계획하다가 의아한 구석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껏 성실하게 살아온 남자는 자신의 처지를 ‘집 하나 장만 못 한 무능력자’로 전락시키고, 결혼식장의 폐백실에서 여자는 이렇게 많은 절을 왜 남편 쪽 친척들에게만 올려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후로도 가사노동과 육아의 문제가 이어지고 1년에 두 번씩은 명절노동이 부부의 평온한 일상을 꾸준히 방해한다. 

「사랑한다면 왜」  김은덕·백종민 지음(어떤책·2018)
「사랑한다면 왜」 김은덕·백종민 지음(어떤책·2018)

이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리며 그럴 때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남들은 잘만 사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싶은 독자들에게 “우리 중 당신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며 선택의 순간을 얼렁뚱땅 넘기지 말자고 손 내민다. 

부부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결혼했다. 하객들 앞에서 결혼선언문 제1항으로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하게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약속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세대주는 은덕이다. 두 사람에게는 명절증후군이 없다. 자기 부모님 댁의 부엌일은 종민이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돈 문제로 싸우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두 사람은 전업작가로, 월급 없이 월세를 감당하며 빠듯하게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로서 불안을 감내하고 있다. 

책은 은덕과 종민이 각기 쓴 글을 담고 있다. “가정 내 평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년 설과 추석을 앞두고 신문과 방송에서 ‘명절증후군’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지만 남자 배우자의 동참이 없다면 명절 바로잡기를 실현하기 어렵다.

가사노동이나 육아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성평등 의제는 매일매일의 결혼생활(동거생활)을 좌우한다.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사람과의 공감대가 어떻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님의 가부장제 가치관, 가사노동의 분담, 명절증후군, 불평등한 호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고민한 부부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각자 발견한 바가 있다.

종민은 평등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한평생 사회적 기득권자로 살아온 자신이 은덕보다 훨씬 더 많이 변해야 함을 알았다. 은덕은 평등을 지키고자 다툰 일이 결국 사랑을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랑은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당신이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하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가정 내 평등은 사랑을 생활의 중심으로 끌고 오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랜 동반을 꿈꾸는 이들에게,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진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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