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 하루에 한 번 알을 낳는다니? 가둬논 암탉 얘기다. 시골에서 울바자 안에 닭을 놓아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놓아먹이는 닭은 이삼일에 하나씩 알을 낳는다. 영양 상태가 좋고 먹을것이 충분했을 때 그렇고, 여건이 부실하면 알 낳는 간격이 길어진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알을 낳지 않는다.

사람은 대부분 가둔 닭의 알을 먹는다. 아이들은 달걀을 먹으며 키가 자라고, 공사판 인부들은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척 얹어서 밥심을 돋군다. 계란찜, 계란국, 계란말이, 장조림, 계란라면, 볶음밥에 이르기까지 달걀 요리가 빠진 식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달걀은 각종 과자와 케익, 빵에 필수적인 재료이고 심지어는 군인들이 먹는 건빵에도 달걀이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암탉은 인간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동물이다.

인간의 관심은 오로지 알과 고기에 있지만 닭의 입장에서 보면 알이 전부는 아니다. 닭도 사람처럼 연애하고 놀고 휴식을 취한다. 서로 경쟁할 뿐만 아니라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도 한다. 솔개나 족제비로부터 병아리를 지키고 새끼들에게 교육도 시킨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모든 활동을 금지시키고 오로지 알만 낳도록 환경을 조작한다.

닭을 가두어 기르는 시설을 케이지라고 한다. 닭 한 마리에게 허용된 면적은 428cm², 즉 가로와 세로가 각각 21cm 미만이다. 폭 15m 길이 70m의 축사에 6단짜리 직립식 케이지 5열을 세운다고 가정하면 34,500마리의 산란계를 집어넣을 수 있다. 워낙 밀도가 높다보니 한번 들어가면 병으로 급사하거나 노계가 되어 퇴출될 때까지 옴짝달싹 못한다.

닭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닭의 행동뿐만 아니라 판단력까지 박탈한다. 계사에는 창이 없다. 불을 끄면 칠흑처럼 깜깜해진다. 한 번 축사 안에 들어간 닭은 산란계로서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계절의 변화를 보지 못한다. 계사는 365일 내내 일정한 밝기와 조명 시간을 유지한다.

전기가 나갈 때를 대비해서 자가발전 시설까지 갖추어 놓았다. 닭들은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온종일 알 낳을 궁리만 한다. 암탉이 알을 낳았을 때 '꼬꼬댁 꼬꼬'하며 소란을 떠는 것은, 어미로서의 기쁨과 알(자식)을 건사하려는 걱정이 두루 반영된 몸짓이다. 건강한 암탉일지라도 산란율이 80%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말해 열흘 중에 이틀만 알을 못 낳아도 바로 도살되어 소세지 공장이나 변두리 닭곰탕 집으로 팔려간다. 노계를 지난 폐계들은 냉면집의 육수를 우리는 데 쓰인다.

모든 시설은 자동화되어 있다. 닭의 모이를 주는 급이기, 알을 거두는 집란기, 똥을 끌어내는 컨베이어 벨트까지 모두 모터의 힘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공장이다. 달걀까지 기계로 만들 수는 없으니 생닭을 집어넣었을 뿐이다. 슈퍼나 마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달걀은 거의 다 이런 시설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30개들이 한 판에 4,500원쯤 하던가? 만약 전통적인 방법으로 닭을 치면 알 값이 열 배로 뛸 것이다.

이 우울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그는 북한 어린이에게 달걀 보내기운동을 했던 친구다. 그는 아프리카 난민촌과 북한 인민의 참상을 거론하며, 닭 따위의 기본권 운운하는 나의 나약한 감상을 단박에 일축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꼭 그르다고는 못하겠으나, 맛있는 계란말이에 생맥주 한잔할 때에는 닭들의 희생적 일생에 대하여 조금은 경의를 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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