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붙어 있는 미투 대자보 게시판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뉴시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붙어 있는 미투 대자보 게시판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뉴시스

남자도 여자도 행복해지지 않은 시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강요받아 온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비교적 열린 성의식을 가진 미국에서조차 남성에 대한 성역할은 여성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보다 폭넓게 강요돼 왔다.

<맨박스>의 저자인 토니 포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남자다움’을 의심한다. 그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을 ‘맨박스(man box)’로 규정하고 이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남성이 남들보다 우월하지 않아도 괜찮고,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그냥 친구로만 지내는 이성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남자로서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은 지키되 남성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동료이자 누군가의 애인,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아들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평범한 남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남자 여자 편을 가르고 정신없이 싸우느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남자 대 여자로 싸워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든 남혐과 여혐, 그 끝나지 않는 전쟁의 해답이 어쩌면 여기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인 ‘맨박스’는 터프하고 두려움 따위 느끼지 않으며 언제나 상황을 리드하는 남성을 목표로 제시한다. 물론 터프하고 거친 남자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연약한 남자라면 어떨까. 혹은 터프하고 강하면서도 동시에 상냥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고 싶다면. 그러나 남자가 고통과 상처, 두려움에 대해 터놓고 말하려 할 때 맨박스는 이를 가로막는다. 

맨박스를 불편하게 여기는 남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안에서 결속감과 안도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남성의 삶 깊숙이 스며든 맨박스는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문제들은 남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곧장 여성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평범하고 선한 남자일수록 사회가 원하는 남성성에 가까워지려 애쓰며 산다. 하지만 남성들이 자신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여성들을 부적절하게 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고백하는 남성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대부분의 남성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놈들과 나를 엮지 마. 몇몇 나쁜 놈들이 여자를 때리기도 하는데, 내 손에 걸리면 죽을 줄 알아!” 

우리 사회에서 ‘가정 폭력은 집안일’이라는 인식이 지속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남성이 자신의 소유물(여성)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게 언제 적 얘기냐고, 사람이 어떻게 소유물이 될 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종속 관계가 성립하는 양 사고하고 행동한다.

법적인 소유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엄연히 오늘날 우리 사회와 법체계의 기반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믿음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정법원이다.

아내를 때린 남편은 가정법원으로 보내진다. 만약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때렸다면 형사법원으로 보내질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때렸다면 모르는 여성을 때렸을 때보다 그 죄의 무게가 가볍다는 뜻일까.

남성들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상식’처럼 배우고 쓰는 갖가지 고육지책에 대해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간다. 밤늦은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이용할 때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 택시를 탈 때 차량 번호와 색깔을 남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운전을 배울 때도 다르다. 지하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낮의 야외에서조차 봉고차나 큰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배운다. 큰 차가 시야를 가리는 사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박스」 토니 포터 지음·김영진 옮김(한빛비즈·2016)
「맨박스」 토니 포터 지음·김영진 옮김(한빛비즈·2016)

이뿐만 아니다. 예전에는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시간에 혼자 운동이나 등산을 하러 밖에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혼자 가서도 안 된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몰카’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나사 구멍을 빤히 들여다본다. 이 밖에도 수백 수천 가지 ‘조심해야 할’ 리스트가 있다. 남자들이 모르는 현실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도록 강요해왔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에게 습관처럼 “왜 그런 남편하고 안 헤어지죠?”라고 물을 뿐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 “왜 때립니까?”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한국의 사고방식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피해 여성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남성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은 여성 폭력 문제 해결에 남성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맨박스를 분해하고 재해석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 남자들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수준의 난제다.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이 난제 앞에 선 남성들에게 촉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류애다. 그는 성별에 따라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역할론에서 벗어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류애 넘치는 세상 속에서는 모든 이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내면서도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류애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성들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껏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에게 ‘특권’ 단체라든가 ‘소수’ 단체, ‘페미니스트 조직’이라는 이름을 붙여 왔다. 이러한 단체들은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소평가되기 일쑤였다.

사회적 위상이나 영향력, 동원 가능한 자원이 한정적인 탓이 컸다. 하지만 현실을 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그 무엇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제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돕고, 주변 여성을 존중하며 살아온 선한 남성의 입장에서는 ‘범죄자’들과 싸잡혀 비난과 수모를 당하는 요즘 같은 상황이 적잖이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남성들의 대다수가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고 여성에게 폭력을 쓰는 나쁜 남자는 극소수라면 대체 어떻게 여성 폭력이 이토록 만연할 수 있는가.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암과 심장 질환만큼이나 흔한 여성의 상해 요인이다. 

이 책은 오늘날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이 전염병만큼이나 흔해진 원인이 한 개인의 일탈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억울한’ 남성들의 말처럼 ‘나쁜 놈’이 따로 있고 ‘착한 놈’이 따로 있지 않다는 뜻이다.

저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평범한 남성들의 침묵을 경계한다. 착한 남자의 침묵은 폭력의 승인이나 마찬가지다. 이들 평범하고 착한 남성들의 묵인하에 오늘도 여성 폭력은 이어지고 있다. 

명백한 인권침해임에도 우리 사회는 여성 폭력 문제를 사회 문제도 남성들의 문제도 아닌 ‘여성 문제’로 평가절하해왔다.

하지만 가정 폭력, 성폭력 및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모든 폭력과 학대 행위가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순간, 문제의 심각성은 훼손되고 만다. 게다가 평범한 남성들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 문제에서 영영 관심을 잃게 된다. 

여성과 그들의 희생이 아니라 남성과 그들의 범죄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저자는 여성이 학대당할 때 남성이 침묵하는 것은 폭력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평범한 남성의 침묵은 곧 허락을 뜻한다. 침묵은 남성들 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공모 행위다. 평범한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을 해치는 폭력적인 행동이 마치 ‘늘 있는 일’처럼 비춰지게 한다. 

선한 의도를 가진 대다수의 남성들이 여성 폭력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중립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여성 폭력 문제는 모든 남성 개개인의 책임이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남성 모두가 연대적 책임감을 느끼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모든 남성이 여성 폭력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의무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싸워주길 부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에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여성을 약한 존재로 인식하거나 오직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교육은 결국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미래가 아니다. 

대다수 남성들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들이 지켜온 남자이자 아버지로서의 자긍심이 대물림되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남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들의 남자다움은 울거나 이성 친구와 거리낌 없이 지낸다고 훼손되지 않는다. 아들에게 알려줘야 할 삶의 지혜는 남녀의 구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을 때 세상이 얼마나 가치 있게 변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경계가 없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비단 여성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남성들이 경직된 성역할에서 벗어나야만 여성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모두의 힘을 합치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책은 모든 성인 남성과 남자아이가 상냥하고 신사적이며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소중히 여겨지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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