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주고받은 사실 없다"경찰 설명 허위로 판명
새 정부 5개월 지나서도 보내...특검 불가피할 듯

'댓글 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19일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무책임한 정치 공방과 정쟁"으로 일축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지만, 하루도 안 돼 핵심 피의자인 김모(필명 드루킹)씨에게 김 의원이 텔레그램으로 인터넷 기사링크(URL)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예정됐던 출마선언을 돌연 취소해 불출마가 예상됐지만 8시간 뒤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 촉구가 필요하다. 특검을 포함한 어떤 조사에도 당당하게 응하겠다"고 정면 돌파를 강행하며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출마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출마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그는 "한 시가 급한 국정과 위기에 처한 경남을 더 이상 저와 연관된 무책임한 정치공방과 정쟁의 늪에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오전 출마선언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20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현재까지의 압수물 분석 결과 김 의원이 지난 2016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김씨에게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14개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내부적으로 파악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의원이 김씨에게 보낸 14건의 메시지 중 10건은 기사링크(URL)다. 기간은 대선을 앞둔 2016년 11월25일부터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5개월이 지난 2017년 10월2일까지다.

주요 기사내용으로는 한 방송사 프로그램('썰전')의 문재인 전 대표 인터뷰 내용을 다룬 기사를 비롯해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봉하마을 방문 관련 친노 진영측 비판, 19대 대선후보 합동토론회,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비교한 기사 등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김 의원은 김씨로부터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115개(기사 URL 3190개)를 모두 읽지 않았으며,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한 경찰의 설명과는 배치된다.

이를 두고 경찰이 수사의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고도 뒤늦게 공개해 수사 축소 혹은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2년 18대 대선 며칠 전 국정원 요원의 댓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섣불리 발표해 홍역을 치른 경찰이 잡음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론하고 있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댓글공작 사건 관련 경찰의 수사 의지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 불거져온 게 사실이다.

올해 1월 네이버와 민주당의 수사의뢰나 고발을 통해 수사를 개시하고도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에 돌입한 건 두 달이 지난 3월21일이었다.

김씨를 비롯해 양모씨, 우모씨가 붙잡힌 것도 압수수색 현장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하자 영장 없이 긴급체포로 이뤄진 것이다. 경찰은 중한 사안에서 신병확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휴대전화 170여대를 압수하고도 133대를 분석하지 않고 검찰로 송치한 것도 의문이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김씨 등 3명을 송치하면서 검찰의 보강수사를 고려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분석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가 논란이 일자 휴대전화를 되돌려받아 '뒷북 수사'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통신수사를 수사 초반에 안 한 것은 아니라고 경찰은 해명했지만 휴대전화가 결정적 증거물이 될 수 있는데도 분석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통신 압수수색 영장은 4월 중순께 신청, 집행했다.

경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의 공감(추천) 수를 조작한 김씨 등 피의자들이 민주당원이란 사실을 알고도 공개하지 않으려다 언론의 거듭된 요청 끝에 인정했다.

김씨 등은 614개의 아이디(ID)를 동원해 각 댓글마다 한 아이디당 한 번씩 총 600여차례 '공감'을 클릭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을 공모했지만, 경찰의 판단은 당원 개인의 일탈이라는 여권과 청와대쪽에 더 기울었다.

서울경찰청 고위관계자는 지난 13일 언론브리핑에서 댓글공작 관련 조직적 흔적을 묻는 질문에 "지금 말씀드릴 게 아니다"라고 답변을 회피했지만, 세 명이 가담했는데 조직적 범죄가 아니냐는 거듭된 질문에 "자발적인 것이라고 했다"며 피의자를 대변했다. 한 개인의 일탈과 배후가 의심되는 조직적인 범죄는 차원이 다르다.

또 경찰이 분석중인 금융계좌 여기 지난 17일 "15개 계좌"에서 18일에는 "15개 금융기관의 30여개 계좌"로 하루 만에 두배나 차이 나는 수치를 번복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혼란을 줬다.

경찰 안팎에서는 정권 초반 여권의 유력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중요 사건에서 경찰의 매끄럽지 못한 수사로 수사의 신뢰도와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적인 관심이 큰 대형 사건임에도 소극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여러차례 보냈는데도 이를 제때 확인해주지 않은 것은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의원들이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민주당원 댓글 공작 사건 규탄과 특검 도입 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의원들이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민주당원 댓글 공작 사건 규탄과 특검 도입 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각에선 경찰의 수사에 치명타를 입은 만큼 검찰이 신속한 수사로 의혹을 규명하거나,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 때문에 정권의 눈치를 보는 만큼 특검을 도입해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댓글조작 사태가 청와대 코앞까지 이르고 있는 가운데, 불출마 하려야 할 수도 없는 가련한 시간을 보냈을 친문 핵심 김 의원의 결정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며 "투표장은 멀고, 특검 포토라인은 가깝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심지어 경남지사 출마에 이용하는 행태를 보여준 것은 평소 김 의원답지 않은 태도다. 의혹에 대한 성실한 해명과 사과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도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김 의원의 입장과 달리 특검에 부정적이다. 김태년 정책위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특검은 안 받는다. 우리 입장은 빨리 지방선거 전에 검경 수사를 받겠다는 것"이라며 "지금 검경은 지난 정권 검경이 아니다. 정권의 말을 전혀 안 듣는다. 특검 보다 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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