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에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초등학교 땐 초등학생을, 중고등학생 땐 같은 중고등학생을 좋아하게 된다. 10대가 같은 10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미성년자 좋아한다’며 비난하는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로 중년 남녀는 역시 비슷한 또래의 이성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최근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비슷한 나이 또래 이혼남녀의 ‘어른 로맨스’로 호평을 받고 있다.

반면 남녀 간의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는 로맨스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게 최근의 분위기다. 오는 7월부터 방영 예정인 김은숙 작가의 신작 ‘미스터 선샤인’은 남녀 주연배우로 각각 이병헌과 김태리를 섭외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일각에선 ‘불편하다’는 문제제기도 많이 나왔는데, 둘의 나이 차이가 무려 20살이나 나기 때문이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남자 주인공 이선균과 여자 주인공 이지은도 무려 18살이나 차이가 난다. 다행히(?) 이 드라마는 둘의 로맨스를 다루는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많은 오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

JTBC 금토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JTBC 금토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스무 살 나이 차이가 난들 뭐 어떠냐, 성인남녀가 각자의 의지에 따라 연애하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라고 얘기한들 시청자들은 잘 납득해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통상 남자가 스무 살 많고 여자는 스무 살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딘지 모르게 사랑이 전부가 아닐 것 같은(?) 미묘한 분위기가 흘러 드라마에 감정이입이 힘들어 진다는 감상평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시청자들이 방송사에 직접 항의를 할 수 있다. ‘미스터 선샤인’이나 ‘나의 아저씨’ 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수많은 불만이 접수된바 있다. 

이러한 의견 표출을 ‘유난스러운 행동’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만들어주는 대로 그냥 보면 되지 뭘 말이 많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불편해 하는’ 행동은 이미 구시대적인 것이 돼버렸다. 지금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다음 주 드라마의 내용마저 바꿔버리는 시대인 것이다. 오히려 방송사가 만들어주는 그대로 지켜보는 수동적인 시청자야말로 시대의 뒤안길로 도태되고 있다.

불편할 것 없는 드라마,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

이렇듯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무난한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인 드라마 한 편이 있다. 지난 3월부터 JTBC에서 방영 중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다. 제목은 이른바 ‘송송커플’로 유명한 송중기가 부인인 송혜교에 대해 ‘원래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였는데 결혼하게 됐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친구처럼 남매처럼 ‘여보세요’ 하며 지내다 ‘여보’가 된 케이스다.

이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 손예진이 연기하는 윤진아와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 역시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남매 같은 사이였다. 그러다 어느 날 달라진 기류 속에 둘은 연인이 된다. 집안끼리도 워낙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 둘의 관계는 비밀이 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주변 사람들이 이 두 사람에게 주는 압박감을 아주 현실적으로 잡아낸다.

또 한 가지 더 현실적인 것은 손예진이 연기하는 윤진아 캐릭터다. 그녀는 커피 전문기업 가맹운영팀 소속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다. 문제 많은 전 남자친구에게 치이고 일에 시달리는 고단한 인생을 살다가 정해인을 만나 새로운 느낌의 로맨스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정해인 같은 귀여운(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판타지’긴 해도 그렇게까지 비약이 심한 판타지는 아니다. 설정상 나이 차이도 4살 밖에 나지 않는다. 작년 초에 끝난 어떤 드라마에서 수천년 살았던 남자 도깨비가 대한민국 여고생과 사랑에 빠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게 정말 한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주변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둘의 알콩달콩한 사랑 얘기에만 반응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자 주인공인 윤진아 캐릭터에 상당히 깊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을 이 인물은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납치까지 서슴지 않는 폭력적인 전 남친,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사회생활, 직장 내 성희롱, 딸의 자존감을 위협하며 결혼을 종용하는 부모님 등등이다. 30대 중반의 대한민국 여성들 중 이런 요소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연애문제는 뒤로 하고서라도 윤진아를 바라보며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를 느끼며 위안을 받는 게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동시대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나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포지셔닝은 훌륭하다. 

온갖 감언이설과 ‘힐링’으로 포장된 말들의 홍수 속에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비현실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는 정해인 같은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없으니까 드라마라도 보는 게 아니겠나. 세련된 연출과 포근한 배경음악, 두 배우의 사랑스러운 연기에 취해있다 보면 고단한 일상의 시간이 아주 조금은 흘러가 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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