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스위처가 지난해 4월 17일(현지시간)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50년 전과 똑같은 배번을 달고 완주한 뒤 기념 메달을 잡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스위처가 지난해 4월 17일(현지시간)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50년 전과 똑같은 배번을 달고 완주한 뒤 기념 메달을 잡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캐서린 스위처는 등번호 261번을 달고 42.19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50년 전인 196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달았던 그 번호다.

캐서린 스위처는 당시 남성의 영역이던 마라톤에 참가해 주최 측의 격렬한 제지에도 불구하고 풀코스를 달렸다. 그녀는 ‘달리는 여성’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마라톤에 있어서 견고했던 ‘금녀의 벽’을 사라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달리기를 하는 여성들이 온전하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2000 명의 여성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분의 1가량이 혼자 달리기를 하며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고 3분의 2는 혼자 달릴 때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은 여성도 당당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던 여성 개척자들뿐 아니라 상실감에 젖어 있던 여자에서 자신감 넘치는 마라토너로 변신한 한 페미니스트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인 저자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자신의 삶과 마라톤의 역사를 매끄럽고 훌륭하게 엮으면서 마라톤과 마라톤에 도전했던 여성 선구자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해냈다. 

1988년 평범한 스무 살을 보내던 저자에게 지인들과 여행을 떠난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온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치기로 청춘을 만끽하던 그녀는 어린 동생들과 자신의 미래를 짊어진 채 갑작스럽게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캐서린 스위처(배번 261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레이스 감독관 조크 샘플에게 저지당했다. 그의 남자친구가 감독관을 밀어냈고, 이 틈을 이용해 스위처가 달리고 있는 모습 ⓒ보스턴헤럴드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캐서린 스위처(배번 261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레이스 감독관 조크 샘플에게 저지당했다. 그의 남자친구가 감독관을 밀어냈고, 이 틈을 이용해 스위처가 달리고 있는 모습. ⓒ보스턴헤럴드

긴 여행을 다녀보기도 하고 미친 듯이 공부에 집중해보기도 했지만 기나긴 우울의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0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허름한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라는 것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두 번 가벼운 마라톤에 참가하던 그녀는 1960년대까지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장거리 달리기에서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겪으며 수 세기 동안 억압돼 왔던 여자의 위치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다.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여자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이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 그리스 여성에 대한 세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떠돌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달리는 여성’을 거부하는 남성들의 모습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놓았던 여성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짜깁기식으로 기록돼 있고, 당시 여성 참가자들은 심한 야유를 받거나 돌 세례를 받기도 했다.

달리는 여성에 대해서는 여자답지 못하다, 보기에 경박하다, 임신과 출산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경멸했고, 그런 여자들을 혐오하는 ‘숙녀’들도 많았다. 당연히 그녀들이 왜 달리는지,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격투’ 끝에 마라톤을 완주한 캐서린 스위처에 대해 당시 코스 관리자는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미국 소녀들은 자격도 되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무리해서 가고 있다. 소녀들이 2.4킬로미터 이상 달리는 것을 전 세계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다. 스위처가 내 딸이었으면 때렸을 것이다.”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정미화 옮김(북라이프·2017)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정미화 옮김(북라이프·2017)

하지만 한 개인이 보여준 의지와 용기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균열을 낳으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책에서는 캐서린 스위처뿐만 아니라 역사가 기억해주지 않는 ‘달리는 여성’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된 한 줄 기사로 소개된 여성 마라토너들. 자유 의지를 갖고, 그저 세상과 함께 달리고 싶었던 그녀들의 욕망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책, 그림,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드러나 있는, 여성의 달리기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달리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내왔던 협박과 경고의 메시지를 유쾌하면서도 단호하게 부인하며 여자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즐겁게 달리는지, 직접 온몸으로,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페미니즘 이론과 문학 이론, 문화 비평을 감동적인 개인사와 함께 엮어 달리기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흥미롭고 재치 있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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