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대책' 내놨지만 여성들 여전히 불안
"여성폭력 중단하고 성평등 세상 만들어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대로 된 처벌이 진행되지 않는 등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는 사회 현실에 목소리를 내고자 지난 17일 성차별·성폭력 철폐를 촉구하는 여성단체가 길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폭력과 성차별 반드시 끝장내자.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교보타워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주도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 집회 참가자들은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여성폭력 중단하라" "성평등 세상 만들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6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2주기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제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6번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2주기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제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참가자 대부분이 검은 옷차림에 투명한 우비를 걸쳤으며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 참가자 일부는 'I'm a FEMINIST'라는 문구가 적힌 윗옷을 착용했다.

이들은 행사 초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진 발언에 호응을 하거나 동조하는 함성을 질렀다.

집회에 참가한 한 여성은 "강남역 사건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홍대 몰카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일한 범죄에 대해 동일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라며 "이런 현실이 얼른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가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오늘 나오면서 더욱 우울했다. 2주기인데 비가 와서 하늘이 같이 운다고 느껴졌다. 2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라며 "젠더 폭력을 바꾸고 싶어 오늘 나왔다. 우리가 연대해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앞자리에 나선 한 참가자도 "최근 여성에 대한 범죄를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껴서 집회에 나왔다. 여성 인권은 성과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내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남성도 남자다움이나 힘을 강요받고 있다. 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번 집회의 발언자로 나선 행동하는간호사회 소속 한 회원은 "간호사는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으며, 폐쇄적인 구조에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어려운 의학 용어를 공부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해 장관 면허를 받았지만 대다수가 여성이라 성적 대상화가 되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차별연대 금지법제정연대 소속 활동가는 "중요한 미투 공간이 학교다. 특히 초중고 성폭력 증언이 쏟아진다. 이전에도 학생들 증언했으나 응답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모든 여성이 성폭력을 겪는다. 성폭력은 성별 권력의 문제다. 이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노인, 장애등 차별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현장 발언과 미투 선언문 낭독도 진행됐다. 선언문에는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지만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 미투운동은 사회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라며 "미투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용기 있는 증언자들과 함께 할 것이며, 성평등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미투운동을 이어갈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성단체 집회는 서울 이외에 대구 대구백화점 앞, 전북 전주 전북대 구정문 앞, 부산 서면 하트조형물 앞, 경남 창원 상남분수광장 등에서도 열렸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약 2000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 이후 시민단체와 여성계 등의 요구에 여러 지자체에서 '화장실 대책'을 내놨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공중화장실 사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인 17일 서울 강남역 사건현장 일대에서 여성안심 화장실 점검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철성 경찰청장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인 17일 서울 강남역 사건현장 일대에서 여성안심 화장실 점검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부터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5개 지하철역 주변은 '안심존(Safety Zone)'이 구축됐다. 남녀 화장실 분리·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 조도 등을 기준으로 화장실 180곳을 '여성안심화장실'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여성안심화장실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한 여성은 "화장실이 밝거나 밖에 CCTV가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라며 "오히려 칸막이 내부에서 누군가가 의심될 때 티 안나게 신고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강남역 인근 여성안심화장실 9곳 중 7곳에는 화장실 내부에서 위협을 느낄 때 이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살인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른 강남역 일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고, 비상벨은 화장실 입구에 부착돼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 건물이나 상가에 있는 화장실은 더욱 열악하다. 여전히 남녀가 모두 이용하는 공용화장실로 운영되는 곳이 있고, 민간화장실이라는 이유로 지자체 관리가 강제되지 않는 곳도 있다. CCTV나 비상벨 설치 등의 기본적 안전조치가 업주들 재량인 곳도 여전히 많다.

홍익대 주변 노래연습장 직원은 "비상벨을 설치하려면 새로 선을 따고 몰딩도 새로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화장실 시설 관리 기준 마련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여성혐오 인식을 타파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련분야 한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기본적으로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며 "심지어 최근에는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만 봐도 화장실 관리 대책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화장실 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성혐오 인식 개선이 먼저"라며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 의식, 여성혐오 인식을 타파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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