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호 전 공사와 맥스선더 훈련은 회담 조율의 이상 신호
| 트럼프 대통령의 매파 존 볼턴은 임무 수행 중
| 문재인 대통령의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부상 가능성 有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도중 대화를 나누는 미 트럼프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자료:백악관)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도중 대화를 나누는 미 트럼프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자료:백악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말 그대로 북한과 회담 준비에 대해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읽는 기사와 실제는 많이 다르다.”

북한의 강경 모드를 예상했느냐는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일방 연기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으름장과 관련,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합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평창올림픽 이전부터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던 회담의 계절에 암초가 불거졌다. 북한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한미공군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과 자유한국당+태영호 전 영국공사, 존 볼튼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등 세 가지다.

북미회담 조율 과정에 이상이 생겼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북한의 전략과 노림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 드러난 팩트를 중심으로 메타팩트를 짚어보자.

태영호 전 공사, 틀린 말 한 것 없다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던 16일, 북한은 새벽 0시 30분을 기해 일방적인 무기 연기를 통보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내세운 명분은 한미공군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과 자유한국당 및 태영호 전 영국공사다.

이어 17일에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조선중앙통신과 한 인터뷰 내용이 공개됐다.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략) 차후 북남관계의 방향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주최한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전망 전문가 초청강연’에서 발언하는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2018.05.14)(자료:머니투데이)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주최한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전망 전문가 초청강연’에서 발언하는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2018.05.14)(자료:머니투데이)

리선권 위원장의 발언이 공개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 간에 태영호 전 공사의 국회 강연을 두고 ‘남남갈등’식 공방이 벌어졌다.

“태영호 전 공사가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 초청으로 국회에서 강연하면서 북한에 대해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 북한이 이를 빌미로 회담 연기를 통보했다. 서열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한참 밖에 있던 사람이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를 쇼라고 하고,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는 용어를 쓰면서 최고지도자의 의중과 전략을 다 꿰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

“태 전 공사는 한국 국민으로, 김정은 체제와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하고 저술 활동을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되는 헌법상의 자유다. 국민에게 재갈을 물리려고 하느냐? 반 헌법적인 발언을 취소하라.” -한국당 윤영석 의원-

태영호 전 공사의 주장은 “최근의 한반도 평화 무드는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는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의 경제시스템이 오랫동안 제재에 시달려온 터라 대북제재의 효과는 덜하겠지만, 지난해 내내 이어진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과 평양 직접 타격 엄포는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작년 10월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KMC) 앤드루 김 센터장을 만났다는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군사옵션이 협박용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되고 있어 깜짝 놀랐다. 무려 20여 가지의 시나리오를 두고 구체적인 것까지 준비되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앤드루 김 센터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에 동행했고, 북미회담 조율에 핵심 역할을 수행 중인 인물이다.

미군에 의해 사망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미군에 의해 사망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충분하다. 북한으로서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선 핵 폐기, 후 보상’ 요구를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이라는 ‘섬뜩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문에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하는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이유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리비아모델은 완전 초토화였다. 카다피를 지키자는 합의가 없었다. 우리는 가서 그를 학살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북한과는) 매우 다르다”며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선 핵 폐기, 후 보상’과 그에 따른 체재 위협이 북미 물밑접촉의 쟁점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태영호 전 공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설득력을 따지기에 앞서 그는 언제 어디서든 북한을 비판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분명하다. “하필 이런 때”라는 질타는 심정적으로 가능하고 국민적 지지도 받을 수 있겠으나 구속력은 없다. 더군다나 북한의 태영호 명분이 북미회담 조율의 핑계거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김경협 의원의 ‘감정적’ 주장은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뒤통수를 때린 천둥, 맥스선더(Max Thunder)

B-52 전략폭격기 편대와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 등 한미 공군기 100여 대가 참여하는 맥스선더 훈련에 관해, 북한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고 여길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화해 제스처를 취해왔고, 북미회담을 먼저 제안했으며, 핵실험장 폐기 결정과 함께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까지 내주었음에도 무시당한 모양새라서 그렇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전향적 조치가 없는 한국과 지속적인 미국의 요구에 화가 날 법도 하다.

세계는 미국의 압박이 김정은 위원장의 화해 제스처를 끌어낸 것으로 보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조미관계의 불미스러운 력사를 끝장내고,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이자 ‘참으로 중대하고 대범한 조치’로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분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 중인 F-22 랩터 스탤스Rapter stealth 전투기(자료:sfgate)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 중인 F-22 랩터 스탤스Rapter stealth 전투기(자료:sfgate)

그러나 북한이 맥스선더 훈련을 들고 나선 시기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지난 11일 이미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나흘이나 지난 시점에야 문제를 제기했고, 그 사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기자단의 국가와 규모까지 발표했기 때문이다.

결국 맥스선더 훈련에 대한 비난 역시 북미회담 물밑 조율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송영무 국방부장관을 향해 “미리 훈련 일정과 규모를 조율하지 않았다”는 질타가 나오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매파 존 볼턴 안보보좌관은 퇴출될까?

“우리는 생화학무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에서 손을 뗀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다면...”

“북한 핵무기를 해체해서 테네시주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가져와야 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들이다. 이에 대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핵, 미싸일,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며 비난했다. 때마침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 결정을 트위터로 알게 된 처지”라는 영국 인디펜던트紙 보도도 나왔다.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발언 또한 북핵 전문가들이 회담 조율 도중 틀어진 쟁점 중 하나로 지목하는 사안이다. 각국의 언론과 백악관 주변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책임론 및 해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리비아모델은 북한과 매우 다른 모델”이라는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인용, “샌더스가 볼턴을 버스에서 던져버렸다”고 평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북미정상회담에서 볼턴은 잠재적인 레킹볼(철거용 쇳덩이)이다”고 했으며, 영국의 인디펜던트紙는 “볼턴은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 꼴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실제로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낙마를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를 상대로 한 보호무역주의 천명,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 개선 요구 등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초기에 ‘파국’ 또는 ‘배수의 진’을 쳐놓은 다음 매파(급진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를 번갈아 동원해가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협상 패턴을 보여 왔다.

그런 패턴은 북미회담 조율 국면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비둘기파 역할을,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매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적다. 다만, 그가 유사한 사례로 또 다시 부각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과 관계없이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가능할까?

남북 및 북미관계의 미래는 현재 북한과 미국이 조율 중인 북미회담 현안에 달려 있으며, 김계관 제1부상이 담화에서 밝혔듯, ▲ ‘선 핵포기, 후 보상’ 여부 ▲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의 가능성 ▲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여부로 압축된다.

이중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리비아뿐 아니라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정권과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달래기에 들어간 것이다.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여부에 대해서는 백악관과 언론 모두 어떤 진단이나 전망도 내놓고 있지 않아 이번 북미회담의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2017.06.30)(자료:Reuters)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2017.06.30)(자료:Reuters)

북한 체제 안정에 대한 언급은 이미 나온 상황이다. 회담 조율의 마지막 관건은 미국의 ‘선 핵포기, 후 보상’과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두 방안이 절충점을 찾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 다수의 북핵 전문가들은 미국이 결국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북미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 북한이 핵 억제력을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 일방적 양보만 요구하다가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 일단 외교적 수단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상 대북 군사옵션으로 돌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절충점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안이 그것이다. 미국이 이 방안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는 현실도 이 방안에 무게가 실리는 요인 중 하나다. 이것이 북한이 태영호 전 공사와 맥스선더 훈련을 우리 측에 들이민 직접적 이유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설정해 둔 목적지는 오는 가을이다. 그동안 어떻든 회담의 계절은 이어져야 하고, 그 길의 첫 기항지에 한미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대북 압박으로 정박된 북핵호(北核號)의 닻줄을 푼 것이 미국의 대북 압박이라면, 북한은 핵 완성 선언에 이어 몇 가지 선제적 조치를 이행함으로써 북핵호의 키를 쥐고자 한다.

북한은 이미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안을 거부한 상황이다. 조율 과정에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면 미국도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수용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물밑 접촉을 ‘거래’로 표현했다. 거래로 포장된 무력이 아닌 다음에야, 일방적인 거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 오는 북미회담에서 양측의 윈윈을 이끌어내며 우리 측에 북핵호의 키를 넘겨줄 수 있을까. 북핵호의 다음 기항지는 5월 22일 결정될 전망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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