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개서한'으로 정상회담 취소 통보
"북한이 분노와 적개심 보여...만남 부적절"
북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펜스 부통령 비난에 분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취소했다. 강대강 국면에서 압박하는 스탠스로 다시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북한이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등을 골자로 한 미국의 비핵화 방식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미국의 대북정책 핵심 참모들을 겨냥한 날 선 비난을 쏟아내며 배수진을 치자 오히려 한발 더 나가는 초강수를 둔 결정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공개서한에서 "최근 성명에서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개심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오랫동안 계획된 이번 만남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은) 자신들의 핵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것(핵무기)은 신에게 이 무기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며 경고 메시지도 전했다.

북미 간 기류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달 중순께부터다. 지난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당시만 하더라고 양측은 '새로운 대안'에 관한 '만족한 결과'를 이룩했다고 발표하며 긍정적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미국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도 석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방북 결과를 보고받은 후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6일이다. 북한은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이어 같은 날 오전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미국에서 망발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다"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이 담화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선 핵포기 후 보상' 발언 등을 문제삼으며 "대국들에 나라를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볼턴 보좌관에 관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으며 "미국은 우리의 아량과 대범한 (비핵화 관련) 조치들을 나약성의 표현으로 오판하며 저들의 제재압박공세의 결과로 포장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적 결속을 선포하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결정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참모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제재와 압박의 성과라는 식의 주장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북한 입장에서는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2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은 리비아처럼 끝날 거라고 주장했다.

북한도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 북한은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명의의 담화에서 "비극적 말로를 걸은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을 보면 미국 고위정객들이 우리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의 말을 되받아넘긴다면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담화는 나아가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 않을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최 부상의 담화가 발표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지금으로선 오랫동안 계획된 이번 만남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음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해왔지만, 북한이 주도권을 잡고 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비핵화'에 합의하더라고 향후 이행 과정에서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미국의 압박 정책에 반응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지만, 미국 측에서 제시하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은 앞서 선전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적 결속'을 뒷받침하지 못해, 현재로선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관련 "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0시부터 한시간동안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 회의에서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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