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유승민, 공천 싸고 공개 충돌 낯 뜨거워
공천 윈칙 실종, 바르지도 미래 희망도 보이지 않아
선거 참패는 자칫 다당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결국 물과 기름이었던가? 올해 1월 18일, 국민의당 창업주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창업주 유승민 대표가 “바르게 미래에 희망을 주겠다”며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 공동선언을 할 때만 해도, 양당의 지지자들은 우려 속에서도 영호남을 아우르는 제3정당의 출현을 반겼다.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만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018.02.01)(자료:한겨레)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 참가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018.02.01)(자료:한겨레)

당시 두 사람이 내건 기치는 ‘집권 여당의 무능함’과 ‘부패한 보수 야당’, ‘영호남을 아우르는 제3의 세력’이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리얼미터, 알앤써치 등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정당지지율에서 정의당에 밀려 4위를 기록하고(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출범 3개월도 되지 않아 계파 갈등을 비롯한 내홍에 휩싸이는 등 다당제 위기의 진앙으로 떠올랐다.

고양시장 후보: '썩은 정치' 비난 쏟아진 추가 공모

안철수계와 유승민계가 갈등을 일으킨 원인은 공천 절차 무시이고, 그 직접적인 배경은 6・13지방선거 인물난이다.

경기 고양시장 선거의 경우, 바른미래당의 지역위원장들은 현직 2선인 민주당 최성 시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시민단체인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김형오 대표는 1차, 2차 공모에 단독으로 응해 면접까지 끝낸 다음 공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최성 시장이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고, 그러자 공모에 응하지 않았던 김필례 시의원, 진종설 전 도의원 등 2인의 지역위원장들은 즉시 바른미래당 중앙당에 추가 공모를 요청했다. 이런 경우 중앙당은 고양시에 추가 공모를 요청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공모 공고’는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는 중대한 절차적 행위이다. 이미 1, 2차 공모를 종료해 면접까지 끝난 마당에 상황 변화에 따라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섰다고 해서 다시 공모를 한다면, 그보다 더 나은 후보가 나서면 또 공모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법률적 효력은 유명무실해 질 수밖에 없다.

탈락한 김형오 전 예비후보와 공천 확정된 김필례 시의원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탈락한 김형오 전 예비후보와 공천 확정된 김필례 시의원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럼에도 바른미래당 중앙당은 ‘늦깎이’ 두 사람을 위해 ‘하루 기한’의 원 포인트 추가 공모를 요청해 면접까지 실시했다. 그 결과 김필례 시의원이 바른미래당의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당내 유승민계 의원들은 물론, 원외 인사들까지 나서서 “당선 가능성만 염두에 둔 원칙 실종 사건”, “바르지 않은 새 정치, 미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썩은 정치”라는 비난을 쏟아내는 이유다.

노원병 재보궐 후보: 계파 갈등 고스란히 드러낸 소동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의 지역구인 노원병에서도 재보궐 선거에 나설 후보 문제가 불거졌다. 유승민 공동대표는 이준석 후보를 추천했지만, 안철수 후보 측에서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내세우면서 갈등이 불거졌던 것.

김 예비후보가 자진 사퇴하면서 안철수, 유승민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끝나는 듯했지만, 이준석 위원장의 공천이 확정되려는 순간 국민의당 출신 일부 공관위원들이 “단수 공천안이 공관위에서 한 차례 부결된 바 있기 때문에 이준석 위원장의 후보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강력 반발하면서 공천 확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청주시장 예비후보 공천 과정도 이와 유사했다. 고양시장과 청주시장 공천 과정에 ‘원칙을 무시한 편법・부당 공천’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중앙당의 결정은 소속 의원들 간의 신경전을 가중시키며 양 계파 사이의 간격을 크게 넓혀 놓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원병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양 계파의 힘겨루기 불똥이 송파을로 옮겨 붙었던 것이다.

송파을 재보궐 후보: 통합에 대한 뼈저린 후회

“우리 당내의 가장 훌륭한 인적자원을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만약 가장 최적인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두 대표께서 적극적으로 부탁을 드리고 여건을 만들고 그게 안 되었을 때는 그 다음으로 옮겨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부분이다.”

지난 17일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송파을 공천에 대해 한 발언이다. 그 자리에서 안 후보는 다시 한 번 손학규 중앙선대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이와 관련, 유승민 공동대표는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 후보의) 논리라면 우리가 후보를 낼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전략 공천은 합의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당 공관위가 경선을 통해 송파을 공천을 결정했기 때문에 당 최고위원회가 이를 중단시킬 권한이 없다. 손 위원장은 출마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손 위원장이 선거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차단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당에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는 것이 송파을 지역 유권자들을 위한 도리다”라며 원칙으로부터 한 발 더 멀어져갔다.

급기야 바른정당 출신 박종진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안 후보가 계속해서 공천을 미루고 공정하지 못한 공천을 모략한다면 탈당도 불사할 것이다. 낡은 정치를 바꾸고 미래정치의 주춧돌을 놓겠다던 주역들이 오만과 독선으로 공당을 사당화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개인의 사당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당 이태우 예비후보 역시 “새 정치는 죽었다. 현 상황은 선거연대 수준보다 못하다. 원칙도, 명분도 없는 공천 과정을 보면서 자괴감을 넘어 분노마저 생긴다. 통합을 추진했던 국민의당 전 최고위원으로서, 안 후보가 추진하던 통합에 찬성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비판하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해 버렸다.

바른정당 출신인 진수희 전 의원마저도 “더 이상 안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어야 할 책임감도 동기도 다 사라졌다. 통합에 후회한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시당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손학규 전략 공천, 이랬다 저랬다 엎친 데 덮친 격

사태가 확산되자 손학규 중앙선대위장은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경쟁을 하다 보면 싸울 수도 있다. 그 뒤에 보면 다시 합쳐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민주정당”이라며 봉합에 나섰다.

그러나 24일 당내 공천 갈등과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발언이 터져 나왔다. 손학규 중앙선대위장마저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박종진 예비후보와 손학규 중앙선대위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박종진 예비후보와 손학규 중앙선대위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송파에서 분위기를 좀 띄워서 서울시장 선거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내가 한번 나를 버리자 이런 생각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손학규 중앙선대위장이 박종진 예비후보가 근무했던 채널A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이에 대해 유승민 공동대표는 “경선 1위로 올라온 후보의 참정권을 빼앗을 권리도, 손 위원장이 박 예비후보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며 원칙을 저버린 손 위원장을 향한 반발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손 중앙선대위장이 출마 선언을 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출마 철회를 선언한 것. 손 중앙선대위장의 연이은 변심에 대해 유승민 측 인사들뿐 아니라 시민들마저 “앞날이 캄캄한 당에 엎친 데 덮친 격”, “이랬다 저랬다, 바른미래당은 도대체 뭐하는 것인가”라는 반응이다.

선거 후 다당제 위기의 진앙 되나?

손학규 중앙선대위장의 연이은 변심은 유승민계와 안철수계의 내홍을 임시로 봉합하기는 했지만, 가뜩이나 내려앉은 당 지지율의 하락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라는 평가다. 당내외 인사는 물론, 지지자들까지 나서서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바르지도, 미래 희망도 없는 썩은 정치의 재판”이라며 비난하고 있어서다.

바른미래당은 인력난에 시달리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상대 후보가 컷 아웃되자 원칙에 따라 공모에 임한 예비후보 대신 원 포인트 ‘추가 공모’를 통해 공천에 나서지 않았던 인물을 후보로 선정한 정당이다.

바른미래당은 노원병에서 힘겨루기에 패배한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유승민계 박 예비후보 대신 손학규 중앙선대위원장을 전략 공천하려 했던 정당이며, 당의 지방선거 전체를 진두지휘해야 할 중앙선대위장이 직접 전선에 뛰어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물러선 정당이기도 하다.

바른미래당이 이처럼 원칙을 무시하는 데 사용된 유일한 명분은 ‘당선 가능성’이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명분은 설득력을 잃었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지 못한 안 후보는 “송파을 지역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고양시와 송파을, 두 경우 모두 바르지 않았다.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 당시 내걸었던 세 가지 기치를 하나로 뭉뚱그려 ‘영호남을 개의치 않는 무능과 부패, 원칙 없는 편법’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유구무언일 지경이다.

물론 지금의 정치지형이라면 어느 정당이건 경선과 전략공천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원칙이다. 경선을 위한 공모를 진행했다면, 그리고 그 공모 절차에 따라 시간이 경과했고 경선 1위가 확정되었다면, 전략공천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에 의해 원칙이 희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을 두고 ‘거창하지만 편법적인’ 명분을 내세우며 이언령비언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득을 좇는 사람이나 조직이라면, 얼마 가지 않아 편법적인 명분의 역공에 휘둘리고 말 것이다.

동상이몽에 빠진 제3정당 창업주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동상이몽에 빠진 제3정당 창업주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불행하게도 바른미래당은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패배의 올무에 걸린 형국이다. 선거 정국이 형성된 이후 연일 좋지 않은 소식으로 포털의 메인을 장식한 것도 그렇고, 손학규 중앙선대위장이 전략 공천이라는 원칙 없고 무리한 카드를 내밀었다가 금세 철회하는 소동까지 벌이며 세간의 비난을 자초한 것도 그렇다.

바른미래당의 위기는 바른미래당만의 위기가 아니다. 국정농단사태 이후 우리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담합과 전횡을 일삼아 온 양당제다. 국민의당은 그래서 제3당으로 선택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제3당이 공천 갈등, 계파 갈등 탓에 분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른미래당이 6・13지방선거에서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 민주평화당과 함께 거대 양당에 각각 흡수되는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는 양당제로의 회귀를 의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다당제 위기의 진앙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해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고, 김성태 원내대표 등 유승민 공동대표와 관계가 나쁘지 않은 인물이 신임 대표로 선출될 경우,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친정 복귀가 현실화할 수 있다. 민주평화당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런 상황의 종착지는 양당제 복귀일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다당제를 깨는 행위는 국민 배신이나 다를 바 없다. 여야 대치 상황에서 제3당이 두드러지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처지에 당내 극한 대립까지 해결하지 못한다면, 선거 승리는커녕 국민들과 지지자들의 피로도만 가중될 뿐이다.

‘국민과 함께 바른 길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거창하게 출범한 제3당, 바른미래당의 ‘바르지 않은 미래’에 소멸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 빨리 ‘당선 가능성’이라는 근시안을 벗어나 원칙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치지형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 국민들은 그 멍에를 온통 안철수, 유승민이라는 두 개인에게 덮어씌울 것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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