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정치참여가 유일한 청년의제가 아니다

백악관 인사실을 본 따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을 설치한 참여정부는 2003년 4월 ‘10대 인사개혁 로드맵’을 발표한다. 공직경쟁력 강화를 위한 임용제도 다양화와 지역 간, 계층 간, 성별 차별 없는 균형적 인재등용, 보수합리화와 공무원 삶의 질 향상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과학기술 인력의 공직진출 확대방안’은 바로 이 공무원 충원경로의 다원화와 균형 있는 인재등용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공계 전공자들이 별도의 고등고시를 거치지 않더라도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정보통신ㆍ화학ㆍ원자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기존의 5급 공채 대신 서류전형과 면접시험을 통해 특채하도록 한 것이다. 서류전형에서는 자격요건ㆍ논문 등을 심사하고 개별 및 집단토론식 면접을 통해서는 인성ㆍ공직관 및 정책역량 등을 종합 평가하여 합격자를 결정하였다. 시행 첫해인 2004년 11월 사무관(5급)으로 53명이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행정고시 선발 인원이 250명 정도였으니 엄청난 규모였다. 필자의 기억이 비교적 정확하다면 당시 삼성전자 소속 직원이 70%가량인 37~38명이었고 LG전자가 뒤를 이었다. 당시 필자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안 업무’를 맡은 담당 행정관이었고, 주관 부처는 중앙인사위원회였다.

한편 개별 합격자에 대한 통보까지 완료했는데 삼성전자 인사개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안모 상무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당시 그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IT분야 인사자문위원이었다. 광화문 한 찻집에 들어서는데 대뜸 그가 언성부터 높였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기껏 각 분야에서 좋은 인재들을 엄선, 7~10년씩 수억원이나 들여 박사도 만들고 해서 이제 회사에서 제대로 일 좀 시키려는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깰 겁니까? 몇 명이라도 취소해 주십시오.” 다짜고짜 원투 펀치가 날아오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숨을 돌리고 나서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됐다. 삼성의 악명 높은 노무관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아 알 터, 필자라고 그에게 질 수는 없었다. “삼성이 직원들 인사관리를 제대로 하면 왜 그들이 거액 연봉을 포기하고 겨우 3천만원 받겠다고 이제 와서 5급 사무관 생활을 새로 시작하겠습니까? 삼성의 잘못은 없다고 보십니까?”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단국대부속고등학교에서 치뤄진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마친 수험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2015.04.12.[사진제공=뉴시스]

사실이 그랬다. 당시도 삼성전자 10년 차 기술직 박사들은 웬만하면 연봉 1억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도 그들이 과감하게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3천만원으로 깎이면서도 공직 문을 두드린 이유는 바로 삼성 자신에게 있었다. 40세만 넘으면 해마다 혹독한 성과평가를 통해 해고의 위협 속에서 생활해야 하며 해고 이후의 사회안전망은 그 어디에도 보장돼 있지 않다. 그러나 비록 3천만원으로 시작하는 생소한 공직이지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며 20년 이상만 근무하면 민간기업과는 달리 적지 않은 공무원연금도 다달이 챙길 수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새로운 일자리는 사실상 더 이상 생겨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해 발표되는 청년 실업자 두 자릿수 시대에 현재 취업준비생 1백만명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른바 공시족만 약 35%이다. 재벌닷컴이 최근 공개한 지난해 30대 대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은 약 7천만원이다. 그래도 청년들은 공시(공무원 시험)로 공시로 몰리고 있지만 이를 나무랄 도리가 없다. 지난 6일 노동개혁을 주된 주제로 한 담화문을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은 실업 급여율 10% 확대와 급여 기간 30일 연장을 언명했다. '사회안전망 강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관련 주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어져나가야 한다.

9일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청년 정치참여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7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 청년후보 1-2-3 공천할당제(국회의원 10%, 광역의원 20%, 기초의원 30% 이상 청년 공천) 등 청년 정치참여 확대 △ 차세대 리더학교를 통해 실력과 도덕성, 소명의식이 높은 청년리더를 발굴ㆍ교육, 양성 △ 전국대학생위원회를 학교별위원회로 독립 운영 △ 전국청년위원회를 청년새정치연합(일명 ‘청년당’)으로 개칭해 위상과 역할 강화 △ 정당 국고보조금 3% 할당 등이 주요 내용이다. 김상곤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청년을 강화하는 혁신안은 당이 활력 있는 젊은 정당으로 가는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간 국고보금 150억원 가량을 수령하는 정당이 약 4억5천만원 정도, 즉 10명의 상근자 인건비를 투입해서 제대로 된 청년 정치학교도 운영하고, 청년당과 대학생위원회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따라서 이번 7차 혁신안의 핵심 포인트는 청년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청년후보 1-2-3 공천할당제이다. 당장 내년 총선부터 이를 시행한다고 하지만 이미 지난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은 지역구에 약 15%의 청년 후보를 공천해서 14% 남짓한 당선자를 배출했다. 작년 지방선거 때도 새정치연합은 광역의원 선거에서 약 18%의 당선자를 냈다. 그러므로 이번 혁신안은 청년할당을 명문 규정화 한다는 이상으로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현재 청년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당은 과연 어디일까? 지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20대 득표율(방송3사 출구 조사, 이하 같음)은 65.8%로 33.7%의 박근혜 대통령을 압도했다. 30대 역시 66.5%로 33.1%에 그친 박근혜 대통령을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이 가장 젊은 정당인가? 지난해 연말 기준 우리 국민의 평균연령은 40세이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책임당원(당비 내는 당원) 평균 나이가 54세이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의 권리당원(당비 내는 당원) 평균 나이는 58세로 가장 노쇠하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은 전국대의원에 청년비율을 의무 할당하는 방식으로 당의 노쇠함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일선 지역위원회 활동 현장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20~30대 청년 전국대의원이 무려 9% 수준이다.

 

이번 주는 광복 70년 주간이다. 1944년 일본 제국주의가 실시한 인구센서스에서 20~30대는 유권자의 54%를 차지했다. 낮은 평균 수명과 20세 미만 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2014년 말 현재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 현황에 따르면, 20~30대가 유권자 비중으로 채 35%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 때문이다. 유권자 비중이 작아지면 그 집단을 위한 이익투표를 하는데 매우 불리하다. 그렇지 않아도 단결이 쉽지 않은 청년 세대가 인구 축소까지 걱정한다면 더 더욱 미래는 막막하다. 지금 시기 청년세대의 주요 의제는 ‘5포 세대’라는 별칭에서 보듯 결혼, 연애,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등이다. 이에 더하여 반값 등록금과 채무ㆍ금융, 일자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해결과제들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이 지난 19대 총선 당시 야심차게 도입한 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 2명 중 한 명은 청년의제와는 무관한 의정활동으로 일관해왔고, 또 다른 한 명은 본회의 출석률이 비례대표 21명 중 유일한 낙제점인 58.6%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역의원 기준으로 약 400명 정도의 청년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할당을 명문화 하겠다고? 청년일자리 문제에 대하여 우선 곶감 빼 먹기 좋다고 공무원 또는 공기업에 대하여 청년 고용할당제로 접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청년의 정치참여도 좋지만 그것이 이 시대 핵심적인 청년의제는 아니다. 광복 70년, 앞으로 또 70년을 영속하려면 청년이 서야 이 나라가 산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