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경 부실수사에 국민적 의혹 증폭된 장자연 사건
| 검찰은 스폰서 의심되는 수표 입금 수사기록조차 무시
| 전면적 재수사로 사회적 타살 반성해야


“김성훈 사장(전 소속사 대표, 본명 김종승)은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방 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나를 노리개 취급하고 사기 치고 몸을 빼앗았다.”

“사장이 자꾸 술에 약을 타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밤새 그들을 접대했다.”

“나를 방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

故 장자연씨가 자필로 작성한 유서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故 장자연(자료:sketchpan)
故 장자연(자료:sketchpan)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지난 2일 ‘배우 故 장자연씨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해 본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수사 과정에 사건이 축소 또는 은폐된 의혹과 검찰권이 남용된 의혹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집행유예’와 ‘혐의없음’만 남은 검・경의 수사 경과

2009년 3월 7일, 신인 배우 장자연씨가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전 소속사 김종승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유력인사들의 술자리에 참석하고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남겼다.

문건에는 조선일보 사주와 기자, 금융인, 기업인, 연예기획사 대표, 감독, 방송국 피디 등 유력인사 20여 명의 명단과 함께 100여 차례가 넘는 술 접대와 성상납 강요, 전 소속사 대표의 폭행과 협박 등 범죄 관련 내용이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이튿날인 8일, 경찰은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이라 범죄가 관련된 것이 아니면 조사할 계획이 없다”며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3월 10일 장자연씨 지인 유장호씨가 “벌 받을 사람이 있다”며 친필 문건 일부를 공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경찰은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흘 후 유장호씨는 경찰에 자진 출석했고, 언론들은 ‘술 접대’, ‘성상납’, ‘실명 문서’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장자연씨의 소속사 전 대표 김종승씨는 “친필 문건은 유장호씨의 자작극”이라며 부인하고 나섰다.

경찰은 문건을 검토하고 주변인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3월 16일 “문서의 진위 여부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데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가 나온 17일에는 “필적이 고인의 것과 거의 동일한 필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도 “미세한 특징을 분석할 수 없는 사본이어서 명확히 논단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유서에 남긴 ‘술 접대 강요’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고도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수사 결과였다.

이때 이미 세간에서는 문건에 적혀 있는 유력인사들의 실명이 떠돌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는 그들의 줄소환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고인의 유족들도 문건에 등장한 인사들을 고발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범죄 혐의가 입증돼야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3월 15일 경찰의 입장과 17일 경찰의 입장은 상반된 것이었다. 이를 두고, “그 사이에 누군가가 개입했고, 그것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라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이 사건은 경찰 수사 단계부터 명쾌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마무리한 경찰은 술 접대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해 총 7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 전체를 지배하는 관건은 전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강요 혐의’ 인정 여부였다. 그러나 검찰은 강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문건에 술 접대와 성상납 등으로 기재된 유력인사들에 대한 ‘강요방조죄’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수사 결과를 발표 중인 한풍현 분당경찰서장(2009.07.10)(자료:뉴시스)
수사 결과를 발표 중인 한풍현 분당경찰서장(2009.07.10)(자료:뉴시스)

그 결과 검찰이 최종 기소한 피의자는 전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단 2명뿐이었다. 전 소속사 대표 김종승은 폭행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매니저는 명예훼손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문건에 올랐거나 성상납 관련 혐의를 받은 13명의 유력인사들은 모두 불기소 의견, 내사 종결 등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봐주기 수사 의혹

“2009년 당시 경찰 수사기록이 공개됐다. 경찰은 지목된 인물을 소환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검찰은 장씨 문건에 적시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억울한 죽음을 외면했다. 공권력이 제 기능을 못하고 거대 언론과 자본의 힘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김효은 부대변인의 논평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논평은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힘입은 바 크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재수사를 권고했고, 검찰은 사건 발생 9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홍종희)는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부터 사건기록을 넘겨받았다.

첫 번째 수사 대상은 2008년 8월 장자연씨의 소속사 전 대표 김종승씨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장자연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던 전 조선일보 기자 출신 정치인 조모씨(49)였다. 지난달 26일,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조모씨가 장자연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판단,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경찰이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음에도, 검찰은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로 조모씨를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모씨(31)가 성추행 내용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조모씨가 조사 도중 진술을 번복하기까지 했음에도(KBS 뉴스9, jtbc 뉴스룸 인터뷰), 검찰은 “정치 지망생으로 변명에 수긍이 간다”며 가해자의 주장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동료 배우 윤모씨의 증언이 한결같다는 점, 조모씨에 대한 수사 결과가 9년 만에 정반대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당시 검찰 수사가 ‘피라미만 잡은 봐주기 수사’였다는 의혹이 강력 제기되고 있다.

속속 드러나는 전면 재수사 단서

이 사건이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는 검・경이 고의 또는 외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장자연 문건에 거명된 ‘조선일보 방 사장’이 등장한다.

‘조선일보 방 사장’은 누구일까? 검・경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이다. 2007년 10월경 서울 강남 청담동의 한 중식당에서 장자연씨와 함께 식사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2008년 10월 청담동 한 호텔 지하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함께한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다.

코리아나호텔과 조선일보 사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코리아나호텔과 조선일보 사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지난달 2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제출된 대검 진상조사단의 사전조사 보고서는 핵심 내용으로 다음 문장들을 담고 있다.

“당시 검・경이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차남)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당시 조선일보 미디어전략팀장)가 장자연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왜 혐의점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는지, 조선일보 관련자 수사에서 권력의 부당한 개입 등 외압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

사건 당시 장자연씨의 소속사 로드매니저였던 김모씨는 모 언론과의 통화에서 “방정오씨가 그날(2008년 10월 28일) 분명히 왔던 게 맞다. 방정오씨가 먼저 가고 다른 일행분들이 나와서 배웅해줬다.”고 했다.

그는 또 2011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명예훼손으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을 고발한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룸에 방정오를 포함해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몇 명 있었고 술집 아가씨들도 있었다. 김종승이 차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조선일보 사장을 만나는 자리가 있으니 와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당연히 참고인 조사가 이뤄져야 했지만, 장자연씨와 술자리를 함께했던 방정오 전무는 경찰 내사 도중 수사가 중단됐고,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아예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경찰로부터 ‘장자연 입금 수표 발행자 상대 수사기록’까지 건네받았다. ‘연예계 스폰서’ 소문이 세간에 떠돈 지 오래라서, ‘스폰서의 실체’가 강하게 의심되는 기록이었다. 수표 발행자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기업 2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들과 기소 의견으로 넘어온 이들을 대거 무혐의 처리했던 성남지청 검사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더 놀라운 사실은, 수사 당국이 장자연 문건에 거명된 ‘조선일보 방사장’으로 방씨 일가가 아닌 ‘스포츠조선’ 사장 ㅎ씨를 지목하며 ㅎ씨와 김종승, 장자연이 만난 것으로 사건을 단순화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일보도 ㅎ씨를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지목한 기사를 냈다. 이와 관련, ㅎ씨는 “조선일보에서 기사를 내기 전에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조선일보 방 사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관계도 없는 나를 넣은 것이다”라고 말했다(KBS 인터뷰).

또 한 사람의 숨겨졌던 인물도 드러났다.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고위 간부 출신 변모(64)씨다.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였던 윤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변모씨는 최소 10여 차례 장자연씨 등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 수사 기록에 6차례나 등장하고, 강제추행이 있었던 2008년 8월 5일에도 장자연씨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의혹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재수사 대상이 전 조선일보 기자의 혐의에 한정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사건의 전면적인 재수사가 요구되는 이유다.

아픈 죽음, 사회적 타살

전 로드매니저 김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 장자연씨는 어머니 제삿날에도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가야 했다. 전 매니저 유장호씨는 “소속사 (김종승) 대표가 전화한 후 30분 이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시간이 추가되는 만큼 맞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수사 기록에 의하면, 고 장자연씨는 일주일에 최소 두 차례 이상 술 접대 자리에 불려나갔고, 다른 배우에 비해 유독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러나 김종승 대표는 조사에서 “본인이 거절 의사를 밝히면 오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참석했다면 본인이 필요해 참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손찌검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김 대표는 폭력・상해 혐의로 7번이나 벌금형에 처해진 바 있다.

고 장자연씨의 바람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누군가에게 약점이었고, 힘 좀 쓴다는 이들에게는 노리개에 불과했다. 정신과 신체가 피폐해진 끝에, 고 장자연씨는 신경정신과에 다녀야 했고, 8일치 우울증 약을 한 번에 먹기도 했다. 그 끝에 죽음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호소했다. 빈소에는 김 대표도 소속사 식구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회적 타살에 희생된 여배우(자료:장자연트위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사회적 타살에 희생된 여배우(자료:장자연트위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녀가 보냈을 참담한 시간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한 여성 배우의 바람을 성공의 발판으로, 또 성적 노리개로 삼으려 했던 사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무의미한 죽음으로 묻어 버리려 했던 사회, 이 사회가 살인범이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 엄연한 사회적 타살이다.

정치검찰 이미지 벗고 범사회적 반성에 나설 때

장자연 사건은 매니지먼트 업계에 엄존하는 갑을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자 여성 연예인의 인권 침해와 권력을 향한 추악한 로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 보이지 않는 권력과 수사기관의 유착이 강하게 의심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고 장자연씨의 억울함이 제대로 밝혀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이 본조사를 시작했지만, 본조사가 재수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 목적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있다. 조사 대상은 ▲재심 등 법원 판결로 무죄 확정된 사건 중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검찰권 행사 과정에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의혹이 상당함에도 검찰이 수사 및 기소를 거부하거나 현저히 지연시킨 사건 등이다. 모두 ‘확인’ 차원이라는 말이다.

진상조사단에 정식 수사권이 없는 현실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서 참고인들이 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9년이 지난 시점에도 국민적 의혹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철저한 본조사를 통해 과거 수사 과정에 있었던 결함을 반드시 찾아내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정식수사를 권고하고, 강제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수사 결과, 성접대 피의자들이 소속사 김종승 대표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을 뿐이라는 결과가 나와 처벌이 불가능해진다 해도, 공소시효로 사법처리가 불가능해진다 해도, 사태의 재발을 막고 정치검찰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라도 이른바 ‘밤의 대통령’과 그 수하들, 그들에 기댄 ‘권력바라기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회적 타살에 억울하게 죽어간 고 장자연씨의 넋을 기리는 범사회적 반성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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