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이율배반사회 부추기는 정치인들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정치인들 고발 요청
김경수 경남도지사 무죄가 최선?
이율배반사회, 피해 당사자인 국민이 바꿔내야


순 엉터리다. 이율배반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진실 가리기와 잇속 챙기기에 여야가 따로 없다. 드루킹 특검으로 잘 알려진 ‘댓글 및 여론조작’ 사건과 ‘피감기관 해외출장’ 사안 얘기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인들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국민들은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억누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 고발까지 불사할 태세다.

(자료:marcianosmx)
(자료:marcianosmx)

이율배반(antinomy)이라는 말은 “똑같이 정당하게 보이는 두 개의 원리나 결론 사이에 실제로든 겉으로든 존재하는 모순”을 의미한다. 역설(paradox)과 거의 동일하게 쓰인다. 비판철학을 창시한 이마누엘 칸트가 처음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 두 가지 사안에서 모두 이율배반적 행태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 탓에 국회와 국민 사이가 자꾸만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똑같이 정당하게 보이는 두 개의 원리나 결론”이라는 전제다. 둘 중 하나는 분명 정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하게 만들려는 게 문제다. 팩트 너머에 있는 메타팩트로 들어가 보자.

피감기관 해외출장 의원들 모두 검찰에 고발해야

자유한국당 원유철, 김순례, 문진국, 조훈현 의원 : 쿠바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심재권 의원 : 베트남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설훈, 김경협 의원 : 우즈베키스탄
자유한국당 원유철, 홍문종, 윤상현, 유기준 의원 :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자유한국당 김무성, 이주영, 정양석 의원 : 태국 등 3개국

쿠바를 다녀온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현지에서 관련 업무를 본 것은 나흘 동안 단 한 시간. 다른 출장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업무출장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조직도(자료:KOICA)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조직도(자료:KOICA)

지난 4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임명된 지 18일 만에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논란으로 집중포화를 받고 물러났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을 전수조사 해 달라’는 청원에는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동참했다.

그러는 사이 국민권익위원회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교류재단 등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는 국회의원 38명, 보좌진 및 입법조사관 16명을 추려냈다. 명단은 이미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넘어가 있다. 그게 벌써 지난달 26일이다.

그런데 문 의장은 아직도 국회의원 38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명단 공개는커녕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적 절차인 ‘소명/해명작업’조차 없다. 왜 그럴까? 국회사무처 이계성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자.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통보한 38명이 위반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해당 피감기관이 1차로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국회는 일단 그 결과를 기다려 본 뒤에 필요하다면 윤리특위 심사 등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국회정론관에서 의원 해외활동 관련 브리핑 중인 이계성 국회대변인(2018.08.05)(자료:뉴시스)
국회정론관에서 의원 해외활동 관련 브리핑 중인 이계성 국회대변인(2018.08.05)(자료:뉴시스)

국민권익위원회가 1차 판단을 피감기관에 맡긴 이유는 국회의원을 조사할 권한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검찰에 고발하면 된다. 그런데 피감기관이 감독기관인 국회의원의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 다음 의원 제재 경력이 전무한 윤리특위가 심사에 나선다? 어불성설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고 중이 제 머리 깎는 격이다.

논란이 일자 국회는 ‘국회의원 국회활동심사자문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원내 교섭단체들로부터 6인을 추천받아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이 적절한지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제 식구 감싸기’로 흘러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국회는 문제가 된 38명의 국회의원을 검찰에 고발할 생각도 없다. 사실상 손을 놓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처럼 국회가 미적대자, 참여연대,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들고 나섰다. 이 단체들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직자 261명의 명단 전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내용을 들여다본 후 검찰 고발에 나설 예정이다.

국회의원들이 이 사안에 여야 구분 없이 무성의로 일관하는 이유는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하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관행이었는데 그냥 없었던 일로 하면 안 되겠니?” 하는 특권의식에 기댄 측면도 엿보인다. 그래서 이율배반이다.

임명 18일 만에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DB
임명 18일 만에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DB

웬만하면 ‘관행적 행태 폐지’ 차원에서 제도를 정비하는 정도로 눈 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게 돼버렸다. ‘김기식 금감원장 사퇴’라는 물이 이미 엎질러졌기 때문이다.

사실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은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관행적 폐해였다. 그런데 그 관행을 한 정당이 다른 정당 공격용으로 활용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김기식이라는 ‘시범 케이스’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전수조사를 통해 시범 케이스와 동일한 상태인 의원들 역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이게 당시 국민적 공감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되돌릴 수도, 중간에 덮어버릴 수도 없다. 이 사안에 엄중 대처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이해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관행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선 자유한국당은 물론, 문희상 의장의 국회 역시 국민적 저항과 맞닥뜨릴 것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무죄가 최선이다?

또 하나의 이율배반적 행태가 있다. 댓글 및 여론조작 사건이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회복에 고심하던 자유한국당, 특히 김성태 원내대표는 단식까지 해가며 드루킹 특검에 목을 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한겨레의 6월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이 한나라당 시절이던 2004년부터 대표 경선,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드루킹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일반인이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 이 일을 한 것이 사실이면 선거 캠프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보도가 나가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자유한국당은) 유체이탈 정당! 노답! 매크로가 공당 내에서 이루어진 거면 드루킹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민주주의 유린 여론조작 아닌가?(진선미 의원)”, “한나라당, 2006년 선거부터 매크로 여론조작, 워낙 많이 복사해 봍이다 보니 오타까지 그대로(표창원 의원)”라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 김모씨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 김모씨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이 사안을 파고드는 정치인은 없다. 일반인의 여론조작에 특검까지 차려 대응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왜 이럴까?

유일한 합리적 의심은 “너도 했고, 나도 했다. 그러니 대충 덮고 가자”는 데 여야가 공감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이처럼 이상한 이율배반적 행태를 도저히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역시 ‘김경수 경남도지사’라는 물이 이미 엎질러진 상황이다. 만약 김경수 도지사의 신병처리를 두고 드루킹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당선 취소에 해당하는 선고를 내린다면, 한나라당의 여론조작 사건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특검이 민주당을 제외한 야3당으로부터 정치특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일 수 있다.

허익범 특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6.08)(자료:청와대사진기자단)
허익범 특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6.08)(자료:청와대사진기자단)

특검도 마치 이런 판세를 읽기라도 한 듯, 수사 초기부터 관련 사항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오늘은 드루킹 김모씨가 대질신문에 당황한 나머지 일부 진술을 번복했다는 구체적 사안까지 언론에 노출됐다.

특검의 이른바 ‘언플(언론플레이)’이 향하는 곳이 ‘김경수 경남도지사 혐의 없음’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다면 한나라당 여론조작 사건도 수면 아래로 잠길 테고, 그렇게 되면 이율배반적 행태가 여론의 장으로부터 사라지리라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율배반을 수정하는 가장 빠른 길은 국민적 비판 여론

이 사회에 이율배반이 횡행하고 있다. 사실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은 사회는 없다. 그러나 누가 이율배반을 실행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질서는 현저히 달라진다.

학교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선 상태에서 맨 뒤쪽 학생이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질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맨 앞에 선 학생이 움직인다면 줄 전체가 출렁인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일반인의 이율배반과 국회의원의 이율배반은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역설은 정설과 공존할 수 없다.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아무리 포장하고 이리저리 비켜가며 정당화하려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이율배반만 남을 뿐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넌 재수 없이 시범 케이스로 걸렸지만, 이거 다 까발려서 다 죽을 거야? 그만 덮어.” 하는 ‘동아리식 사고’도 마찬가지다.

그 이율배반을 바꾸는 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탄국회가 여전히 작동한 현실이고 보면 국회 내부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우리 국민은 이율배반을 실력행사로 바꾸어 낸 적이 있다. 1,700만 명이 나섰던 촛불혁명이 그것이다. 역시 국민적 비판이 가장 빠른 길이다. 오늘 오전, 문희상 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국회 특활비 폐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정치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파악한 상태에서 현실정치를 조목조목 감시하는 일이다.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세금을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버티는 한, 국민은 어리숙하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거짓으로 고개를 숙이는 한, 이율배반사회를 고쳐낼 주체는 직접 피해 당사자인 국민뿐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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