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구조 문제 해결과 세계경제 패권 노리는 중국
암초 만난 중국의 신실크로드 경제권 구축 전략
아프리카 끌어안기로 정면 돌파 선언한 시진핑 주석
비핵화와 국익 관점에서 일대일로 참여 고려해야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5년 동안 야심차게 추진해 온 ‘21세기 신실크로드 거대경제권 구축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초반부터 암초를 만났다.

영어로 BRI(Belt and Road Initiative) 또는 OBOR(One Belt, One Road)로 번역되는 일대일로는 2049년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육상 및 해상에 신실크로드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국가전략이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전략(자료:campaigna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전략(자료:campaigna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시진핑 주석은 2013년 9월과 10월,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방문길에 각각 ‘일대(一帶)’와 ‘일로(一路)’ 개념을 제시했다.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따라 관련국들이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하나의 지대’를 말한다. ‘하나의 길’이라는 의미의 일로(一路)는 중국에서 동・서남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도로, 철도, 항만, 댐 등 사회간접자본(infrastructure) 건설이다. 중국 정부가 국유은행을 통해 대부분의 사업 자금을 차관 형식으로 빌려주고, 그 자금이 인프라 건설에 나서는 중국 국영기업들에 지불되는 구조다. 현재 78개국이 참여 중이다.

두 마리 토끼 노리는 중국과 저지하려는 미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기가 휘청거릴 때에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지만, 2012년 이후 경기 둔화가 뚜렷해지면서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필요했고, 시진핑 주석이 들고 나선 것이 바로 일대일로 전략이다.

문제는 일대일로 전략이 중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패권까지 노린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로 육상과 해상 인프라가 연결되어 무역이 확대되고 금융 및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78개국 44억 명으로 구성된 총 21조 달러 규모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한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현재 벌어지는 미-중 간 무역전쟁의 배경에도 일대일로 전략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속내가 숨어 있다. 워싱턴 정가는 중국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한 다음 그 국가를 채권으로 옭아매려는 ‘채권제국주의’나 ‘신제국주의’ 또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부활이라며 성토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자료:diplomacybeyond)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자료:diplomacybeyond)

“일대일로가 세계무역을 방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다.”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지정학적, 군사적 패권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변국의 자유로운 무역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차이나 클럽’을 결성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시진핑 주석-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 간의 교역이 늘어나고 경제・무역협력단지가 70곳 넘게 세워지며 20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프로젝트가 구체화되자, 다급해진 미국은 대응책을 내놓았다. 지난 7월 30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돕고 기술 및 에너지를 지원하는 1억1,300만 달러(약 1260억 원) 규모의 지원기금(착수금) 조성을 발표한 것.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가 일대일로 78개 참가국의 평균 신용등급을 ‘Ba2’로 평가하는 등 미국 경제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Ba2 등급은 IMF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Ba1보다 국가부도 가능성이 더 높은 ‘채무불이행’ 수준이다.

프로젝트 중단・연기・포기 암초 만난 일대일로

실제로 프로젝트 수행 5년 만에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다. 일부 저개발 국가들이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심정으로 감당키 어려운 인프라 건설에 나선 후 재정파탄에 빠지거나 사업 운영권을 넘기고 있어서다.

일대일로(OBOR)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난통市를 출발해 보름 만에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아프가니스탄 하이란탄(Hairantan)市에 도착하는 중국의 첫 화물열차(2016.08.25~09.09)
일대일로(OBOR)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난통市를 출발해 보름 만에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아프가니스탄 하이란탄(Hairantan)市에 도착하는 중국의 첫 화물열차(2016.08.25~09.09)

파키스탄은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상황에 무리한 투자까지 감행했다가 외환위기에 휘말려 620억 달러 규모의 ‘파키스탄-중국 경제회랑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한 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계획이다.

미얀마는 73억 달러(약 8조1,000억 원) 규모의 ‘차우퓨항만개발’ 프로젝트를 13억 달러(약 1조4,500억 원)로 축소했고, 말레이시아 역시 ‘동부해안 철도건설’ 프로젝트와 ‘천연가스관 건설’ 프로젝트 등 24조8,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세 건을 중단・연기했다.

스리랑카는 남부에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지만 물동량이 모자라 적자만 쌓이는 통에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채무가 숨통을 조이는 이들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상원의원 16명이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일대일로 때문에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파키스탄, 라오스, 지부티, 몽고 등에 돈을 못주게 하라”는 편지를 썼고,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IMF 지원자금은 중국으로 흘러갈 것이다. 최대 출자국인 미국의 지위로 파키스탄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반대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끌어안기로 정면 돌파 선언한 시진핑 주석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가 중국의 투자를 거부하고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지지서명을 하지 않는 등 여기저기에서 참여국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자,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고 전략 자체를 재평가하는 등 대응책을 준비하는 한편,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정상회의에 배전의 공을 들였다.

올해 중국 최대 행사인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관련 브리핑 중인 중국 왕이 외교부장(2018.08.22)(자료:CCTV 화면 갈무리)
올해 중국 최대 행사인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관련 브리핑 중인 중국 왕이 외교부장(2018.08.22)(자료:CCTV 화면 갈무리)

FOCAC는 2000년 이후 매 3년마다 개최되는 중국・아프리카 다자협력기구다. 이달 3일과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아프리카 53개국이 참가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는 평화의 길이자 번영의 길, 개방의 길, 녹색의 길, 혁신의 길, 문명의 길”이라며 새로운 국제협력 플랫폼을 통해 아프리카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시주석은 ▲중・아프리카 민생/복지 발전, ▲정치대화 및 정책소통 확대, ▲일대일로 공동건설, ▲문화교류, ▲공동・종합・협력의 신안보관 수립, ▲지속 가능한 발전방식 채택 등 6대 비전을 제시했다.

6대 비전 실현을 위해 ▲150억 달러 무상지원, ▲200억 달러 무이자 및 우대차관 적용, ▲100억 달러 규모 중・아프리카개발기금 조성, ▲50억 달러 규모 대아프리카 수입융자기금 설립, ▲50개 농업원조 프로젝트 지원, ▲인도주의 식량 원조, ▲농업 전문가 500명 파견 등 600억 달러(약 66조7,000억 원) 규모의 추가지원 계획도 내놓았다. 또한 가난한 국가들이 중국에 진 부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참석차 베이징에 도착한 아비 아흐메드 알리(Abiy Ahmed Ali) 에티오피아 총리(자료:news.cn)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참석차 베이징에 도착한 아비 아흐메드 알리(Abiy Ahmed Ali) 에티오피아 총리(자료:news.cn)

신제국주의 또는 중화주의의 부활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각국이 나름의 발전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중국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고, 원조에 정치적 조건을 붙이지 않고, 투자와 원조로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 등 ‘5불(五不) 원칙’을 강조했다.

일대일로 전략 성공과 그에 따른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는 다음 발언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은 더 주고 덜 취하고, 먼저 주고 나중에 취하며,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 원칙을 주장한다. 중국과 아프리카 협력이 좋을지 나쁠지는 중국과 아프리카 인민들이 평가할 수 있고, 그 외의 누구도 상상력과 억측으로 협력의 성취를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차관 규모 변동 추이(자료: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중국의 대 아프리카 차관 규모 변동 추이(자료: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일대일로 전략이 극복해야 할 두 가지 과제

일대일로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성취한 결과물은 결코 적지 않다. 먼저, 78개국과 20여 국제기구를 끌어들였고, 600억 달러 이상을 현지에 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해 최소 20만 명의 고용을 창출했으며, 화물열차가 중국 38개 도시와 유럽 14개국 42개 도시를 1만 번 이상 운행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기업들은 34개국에서 42개 항만을 건설 중이거나 운영 중이고, 매년 1만 명의 학생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중국에서 공부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미국과의 관계를 재평가하자며 치고 나가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도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두고 미국의 눈치를 보는 중이다.

일대일로 전략이 넘어야 할 산은 크게 두 가지다. 대외적으로는 채권제국주의, 즉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이 대중채무확대로 인해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주로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과 일부 중국・아프리카헙력포럼(FOCAC) 회원국들이 제기한다.

마셜플랜(Marshall Plan)에 따라 항구에 도착한 원조 물품을 하역하는 프랑스 부두노동자들(1948)(자료:adst.org)
마셜플랜(Marshall Plan)에 따라 항구에 도착한 원조 물품을 하역하는 프랑스 부두노동자들(1948)(자료:adst.org)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7월, 미국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에 130억 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기술적 원조를 제공했다. 그 후 서유럽 국가들은 성장과 번영을 누렸고, 그 과정에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커져갔다. 이를 유럽부흥계획(ERP, European Recovery Program) 또는 마셜플랜(Marshall Plan)이라 부른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대일로 전략은 여러 측면에서 중국판 마셜플랜이라 불릴 만하다.

주로 학계를 중심으로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는 “선심성 대외원조다”, “원칙 없이 지원하면 중국 국민의 생활을 조이게 된다”, “중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외국에 돈을 뿌릴 필요가 있나”와 같은 부정적인 목소리도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아프리카 끌어안기’와 ‘학자 일시 구속’ 등으로 정면 돌파를 택한 듯 보인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원국 현황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원국 현황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전략 성공에 대한 의지만 강한 것이 아니라, 준비도 철저했다. 미국이 신용평가기관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을 동원해 자금줄을 틀어쥐며 견제에 나설 것에 대비, 일대일로 전략을 내놓던 2013년에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뒀던 것이다.

세계패권전쟁, 남북관계와 국익 신중히 고려해야

G2가 미래먹거리와 세계패권을 두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를 외치는 반면, 시진핑 주석은 모든 길을 로마가 아닌 베이징으로 통하게 만들 작정이다. 이 전쟁은 현재 벌어지는 미중 간 무역전쟁보다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훨씬 거대하다.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전통 우방인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해야 할까, 아니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참여해야 할까? 해답은 한국이 현재 처한 상황에 있다.

우선, 일대일로 전략에 참여한 국가들 중 상당수는 우리의 주요 수출국이다. 중국만 해도 25% 수준이던 우리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2015년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다 해도 엄청난 시장임에 분명하다. 수출 비중에서는 일대일로 참여국 전체 합산이 미국을 훨씬 능가한다.

더욱이 우리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다섯 번째 대주주이고, 저개발국 사회기반시설 시장은 놓칠 수 없는 초대형 먹거리다. 특히 중국이 북한까지 일대일로 전략의 파트너로 끌어들일 경우, 넋 놓고 있다가는 자칫 미국 상무부의 관세 부과 소식에나 목매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남북관계와 국익을 고려해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행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한다. 정계 안팎에서는 친서에 판문점 선언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방안과 9월에 있을 남북정상회담 의제, 종전선언 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혹시라도 종전선언 이후 남북한이 함께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동참하는 방안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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