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와 계파갈등, 공천권 파동의 원인
선거의 대표성과 비례성 담보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MMP)
與野,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의 연계 여부 두고 입장 차이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우리 정치권에 대표적인 구태정치가 있습니다. 지역주의와 계파 갈등, 공천권 파동입니다. 새 정당이 탄생하거나 새 대표가 선출될 때마다 혁신의 대상으로 오르내렸던 사안들입니다. 하지만 구태정치는 그대롭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선거제도 개편입니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 여야 5당 대표들이 이구동성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외치고 있습니다.

작금의 여의도 정치가 나아가는 맥을 짚으려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선거제도 개편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주의와 계파갈등, 당내 공천권 파동 등 구태정치로 얼룩진 국회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지역주의와 계파갈등, 당내 공천권 파동 등 구태정치로 얼룩진 국회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구태정치 양산하는 현행 소선거구제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국회의원 253명을 선출한 다음, 각 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합니다. 지역구 의석의 비중이 매우 높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정당 지지율보다 지역구 승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선거를 인물 중심으로 치르게 됩니다. 지역주의가 심화되는 원인입니다.

또한 오로지 1등만 당선되는 구조라서 정치적 역량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낙선자는 여의도로 갈 수 없습니다. 대량의 사표가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의석수에 반영되지 못하는 표심의 비중을 ‘불비례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불비례성은 OECD 정치 선진국 대비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주요국 총선 결과에서 드러난 불비례성(자료:아렌트 레이파르트_민주주의의 양식, 2012) ⓒ스트레이트뉴스DB
주요국 총선 결과에서 드러난 불비례성(자료:아렌트 레이파르트_민주주의의 양식, 2012) ⓒ스트레이트뉴스DB

그뿐이 아닙니다. 각 당이 획득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에 대형정당들이 실제 표심보다 더 많은 의석을 배분받는 ‘표심 왜곡 현상’이 발생합니다. 거대정당을 중심으로 양당제가 굳어지는 겁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소수정당들은 사실상 의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습니다. 경쟁 정당이 없는 상태, 이런 상태는 방탄국회, 특활비 담합과 같은 거대양당의 부적절한 연대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각종 재・보궐선거와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한 ‘선거 기간 네거티브’ 및 ‘선거 후 발목잡기’가 일상화됩니다. 협의정치가 실종되는 겁니다.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당내 공천권 파동과 계파 갈등, 당 대표의 전횡과 같은 문제도 불거집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도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소선거구제 대신 ‘연동형 비례대표제(MMP, Mixed-Member Proportional)’를 도입하는 겁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캠페인에 나선 뉴질랜드의 공화주의자들(2012)(자료:Independent Australia)
연동형 비례대표제 캠페인에 나선 뉴질랜드의 공화주의자들(2012)(자료:Independent Australia)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혼합비례대표제’와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대표성과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정당별로 의석수를 나눈 다음, 배분된 의석수를 지역구 당선자가 먼저 채우고, 부족분은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정의당이 각 50%, 30%, 10%의 지지를 얻었고 의석수가 100석이라고 가정하면, 총 100석 중 민주당은 50석, 한국당은 30석, 정의당은 10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설사 지역구 당선자가 단 한 명도 없어도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12년, 심상정 후보가 사퇴 조건으로 내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무산됐지만,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후 치러진 대선 기간 내내 문 대통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다 지난달 16일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독일식 정당명부제)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습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비례대표를 배분하기 위한 정당 득표율의 적용 기준이 다릅니다.

지역구 선거 이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당이 얻은 전국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전국적으로 일괄 배분합니다. 반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각 당이 권역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6개 권역별 국회의원 의석수 ⓒ스트레이트뉴스DB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6개 권역별 국회의원 의석수 ⓒ스트레이트뉴스DB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습니다. 국회의원 정수는 현행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원을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을 100명으로 늘리자는 방안입니다.

위 그래픽에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다음, 300개 의석을 인구 비례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한 수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의석수(300석)에서 지역구 당선 200석을 제외한 100석이 각 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으로 할당됩니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할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이 제도 역시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엄청난 수의 사표를 방지하지는 못합니다. 보완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지역구 후보도 비례대표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석패율제(일본 시행 중)’입니다.

또한 이 제도 하에서는 과격한 종교단체나 자질이 부족한 소수정당도 비교적 쉽게 원내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일정 정도의 정당 득표율이나 최소 지역구 당선 의석수를 정해두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봉쇄조항’이라고 합니다. 모두 선거제도 개편 시 고려되어야 할 사안들입니다.

정치적 쟁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헌 연계 여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편 방식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그런데 5당의 입장은 “선거제도부터 개헌하자”는 쪽과 “선거제도 개편을 개헌과 연계하자”는 쪽, 이렇게 둘로 뚜렷이 갈라져 있습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은 ‘말’이고, 개헌은 ‘마차’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말이 먼저 가면 마차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똑같이 가져다 놓으면(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동시에 하면)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선거제도 개편부터 하자는 진영(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정의당 이정미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선거제도 개편부터 하자는 진영(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정의당 이정미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이는 선거제도 개편부터 하자는 주장입니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개헌과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두 거대 정당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거대정당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7.23%의 정당 득표율을 얻은 정의당은 비례대표 47석 중 4석을 배분받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300석 기준) 21석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거대 양당의 의석수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소수정당에 매우 유리한 구조인 거죠.

이 문제와 관련, 학자들은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에는 지금이 적기”라며 연계보다는 선거제도 개편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있어, 연계 문제로 시간을 끌다가는 자칫 선거제도 개편마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 연계 여부를 두고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거대양당은 소선거구제를, 야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호하는 형국에, 개헌은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입니다.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자당의 이해득실부터 따지는 정치권으로 인해 두 현안 모두 표류하는 상황, 성사 여부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물밑거래, 두 당과 야3당 간의 논리 대결, 그리고 야3당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 등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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