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오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4.27 판문점 선언 중에서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관계 역사상 처음이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을 위한 상시적 소통창구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은 앞으로 서울과 평양에 상주 대표부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우려를 극복하고 개소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공동연락사무소가 민간 교류와 협력사업도 지원한다고 하니 민간교류와 협력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남북관계는 남북 정부 간의 협력이 중심이나 민간 교류와 협력이 함께 해야 관계 발전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기본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을 비롯한 국제관계를 외면할 수 없기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민간은 ‘민족 자주’라는 원칙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부터 2018년 ‘4.27 판문점선언’까지 일관되고 공통적인 내용은 ‘민족 문제는 우리 민족 스스로 해결한다’ 는 대원칙이다. ‘민족 자주’의 원칙은 당연한 것임에도 계속 강조하고 확인하는 이유는 외국의 간섭이 있고, 민족 구성원 중에 특히, 남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외세 의존적인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 막거나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교류와 협력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개성공단 재개가 우선할 일이다. 지난 8월에 이산 가족 상봉이 있었으나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면회 장소의 상설화를 통해 언제라도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가족들 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제한이 있다. 2004년에 시작해서 2016년에 박근혜정권이 자해하여 폐쇄할 때까지 12년동안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었고 작은 통일지역이었다.

개성공단은 국민의 정부가 펼친 ‘햇볕정책’에 따라 남측의 현대그룹과 북측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의 합의서 채택으로 공식화되었고 북한 정부는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했다. 공단이 조성된 지역은 북한 기갑사단, 포병 여단 등 5만여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고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의 장사정포 부대가 배치되어 있어 북한 대남 무력의 주요 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공단 조성에 따라 북한 대남 무력은 북쪽으로 10km에서 15km 이상 물러난 효과가 있었다. 즉 군사적대지역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군사적 완충지대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2004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120여개 우리 기업이 진출, 북측의 근로자가 5만명을 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부터 가동이 멈춘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단은 2004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120여개 우리 기업이 진출, 북측의 근로자가 5만명을 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부터 가동이 멈춘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단은 6.15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였으며 획기적인 조치였다. 개성공단의 최초 계획에 의하면 공장구역 26㎦(800만평) 생활·관광·상업구역 40K㎡(1,200만평)으로 조성하기로 했으나 시범단지 93,000㎡를 조성한 후 확대되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실질적인 방치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박근혜 정권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이유로 들어 2016년 2월 10일 입주기업과의 협의나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즉시 폐쇄했다.

개성공단에 대해서 분단세력은 온갖 폄하와 왜곡을 일삼았고 여러 난관이 있었으나 개성공단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이었다. 남북이 평화 상태로 가려면 교류와 협력을 선행해야 한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선언이 계속 교류와 협력을 약속한 것도 평화와 통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필요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교류는 만남을 뜻하며 분단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만나서 서로를 알아야 오해가 풀리고 서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북측 동포 5만여명과 남측 동포(기업인 등) 1천여명 이상이 함께 생활했다.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르고 자신과 다른 생활 방식 때문에 당황하고 서로에 대한 오해가 있었으나 함께 살면서 다름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동방정책이라 부르는 독일 통일정책을 설계한 에곤 바르 서독 전 경제협력부 장관은 2005년에 자신은 개성공단 같은 곳은 상상하지도 못했으며 한반도 통일은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계속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꼭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개성공단이 통일의 상징이었고 시작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개성공단부터 재가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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