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UN총회 참석 위해 23일 오후 출국
북한의 ‘미래핵’과 미국의 ‘현재핵’ 중재 나설 듯
文 중재에 힘 실어 줄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동시행동과 제2차 북미정상회담 성사 가능성 ↑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23일 오후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으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 체제보장을 동시에 이끄는 ‘동시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지에 대해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백두산에서 귀환한 지 사흘 만에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3박 5일 일정에는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면담, 미국 오피니언 리더 대상 연설, 한・스페인 및 한・칠레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3월 타결한 한미FTA 개정협정 서명식 등의 일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방문의 핵심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북미대화의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긴밀한 협력을 제의했습니다. (중략) (김정은 위원장과) 논의한 내용 가운데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도 있습니다. 방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미국 측에 상세한 내용을 전해 줄 계획입니다.”

문 대통령이 평양 방문 직후 가진 대국민보고에서 밝힌 내용이다.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유엔(UN) 총회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09.21)(자료:youtube화면 갈무리)
유엔(UN) 총회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09.21)(자료:youtube화면 갈무리)

지금껏 남북, 한미, 북미정상회담이 모두 정상 간의 직접 대화, 즉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번 평양정상회담의 결과를 이미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MSNBC,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비교적 단시일 내 두 정상이 만나길 바란다”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 중임을 밝힌 점이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개최된 중간선거 공화당 지원유세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훌륭한(beautiful)’ 편지 한 통을 보냈다”고 한 것도 미국의 ‘동시행동’을 끌어내는 데 긍정적인 신호다.

다만, 관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갖고 있는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이 무엇인가다. 예측 가능한 답은 이미 문 대통령이 대국민보고에서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삼고 있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다시 논의하려 한다”며 스스로 제시해 놓은 상태다.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미루어, 북한이 동시행동을 위해 미국에 요구한 상응조치는 ‘연내 종전선언’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를 위해 북한은 이번 평양정상회담에서 “유관국 전문가들의 검증”과 “영변핵시설의 영구 폐기”라는 제안을 던져놓은 상태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현재 핵에 대한 신고→검증→폐기’와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두 가지를 맞교환하는 데 필요한 최소공배수는 비핵화 리스트다. 핵시설 영구 폐기를 위해서는 유관국 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하고, 검증을 하려면 핵시설과 현재 핵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명시한 리스트를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북미 양측의 관점이 엇갈릴 수 있다. ‘핵시설 영구 폐기’는 원칙적으로 ‘미래 핵’에 해당하고, 미국이 이 시점에 원하는 리스트는 ‘현재 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두 정상 간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할 일이 여전히 좀 남아 있다”라며 이 점을 명확히 했다.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에 이런 북미 양자의 관점 차이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이 한미 정상의 논의 테이블에 오르면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를 앞두고 미시건주에서 유세 중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자료:nbcnews)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를 앞두고 미시건주에서 유세 중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자료:nbcnews)

그러나 호재는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라는 시간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대통령 당선 2년이 경과한 시점에 실시되는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인데, 상원의원 1/3과 하원의원 전원이 교체된다. 임기가 만료된  주지사 선거와 비 개선 상원의원 보궐선거도 병행된다.

중간선거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속한 여당이 의석수를 불린 경우가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뿐일 정도로 현직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된 의혹들에 대해 전직 측근들이 ‘유죄’를 인정하고, 밥 우드워드가 백악관의 비화를 담은 신간을 발간하는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CNN 등 미국 내 8개 기관 여론조사)이 평균 37.8%로 내려앉은 점은 공화당에는 ‘비상시국’이라 불릴 만하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평균 45% 정도는 돼야 여당인 공화당의 수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상당한 호재’가 없는 한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효력을 발휘할 ‘상당한 호재’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유일하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워싱턴 정가와 언론으로부터 “뚜렷한 성과가 없는 회담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트위터로 ‘말의 성찬’만 쏟아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는 그 자체로 미국에 ‘가시적인 성과’를 향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오는11월 6일에 실시되지만, ‘상당한 호재’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표심에 반영되려면 적어도 10월 말 이전에는 회담이 열려야 한다. 사실상 의제를 조율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급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지만, 시간은 분명 북한 편이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도 마냥 여유를 부리기는 어렵다. 만에 하나 의제 조율 과정에 고집을 부리다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되기라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성 조치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놓친 데 대한 아쉬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미래핵과 현재핵이 일정 비율로 리스트에 담기고,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임기 종료 이전까지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의 이행에 관한 약속이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받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은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대로 흘러온 모양새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먼저 움직이라”며 종용하는 바람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평양방문이 무산되면서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긴 했지만, 평양정상회담 덕에 상황은 ‘동시행동’으로 향하고 있다.

타임(TIME)紙가 ‘냉철한 협상가’로 평가한 문 대통령이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 문 대통령의 속내에는 비핵화에 관한 김정은 위원장의 속셈과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우리 국민의 염원,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중재안이 함께 담겨 있다. 냉철한 협상가는 북미 양측이 핵 리스트와 종전선언을 11월 이전에 맞교환하게 할 수 있을까.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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