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직장, 방만경영, 도덕불감증, 세금이나 축내는 파렴치한들…”. 공공기관(또는 공기업)을 두고 세간에 오르내리는 표현은 이처럼 부정적이기 일쑤다. 매 정권마다 공공기관 대한 혁신을 핵심과제로 삼는다. 공공기관의 부채 누적과 방만경영으로 인한 도덕성 해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에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각 공공기관은 부채 누적과 도덕성 해이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를 지켜본 국민은 심정은 어땠을까.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공기관의 부채는 가슴 답답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잠재적인 국가 신용등급 하락요인이 될 수 있으며, 한국 경제의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총량이 1000조원에 가깝고 국가채무가 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크게 늘고 있으니 온 나라가 빚더미에 눌려 숨쉬기조차 불편한 느낌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과거 아르헨티나와 같은 꼴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고. 채무를 상환할 뚜렷한 대책도 없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걱정들로 가득하다.
국민들은 요즘 뉴스와 기사를 보면 슬프고, 안타깝고, 화나고, 부실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금융권에서는 매년 국정감사에서 부채 문제와 도덕성 해이 문제로 국민의 눈총을 사는 곳이 있다. 바로 농협과 수협이다. 농협과 수협은 각각 농민의, 어민의 ‘동반자’를 자처하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자랑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번 국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뼈를 깎는 경영혁신은 물론 건전성 회복과 수익 확대를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의 동반자인 농민과 어민의 ‘등골’을 파먹고, 나아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기만행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협을 대표하는 농협중앙회는 최근 10년 간 직원들에게 0%대 금리로 대출을 해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겨줬다. 농협이 소속 지원들의 주택구입자금 대출에 대해 2.87%의 이자를 보전해 추후 현금으로 지급해왔다는 것이다.
농협은 직원들에게 당초 대출을 해줄 때는 정상적으로 금리를 적용했지만 다음해에는 대출금액의 2.87%만큼을 현금으로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자 보전을 해줬다. 직원을 대상으로 이자를 현금보전 해 준 뒤에 결과적으로 0%대 ‘신의 이자’가 됐다.
농협은 지난 2008년부터 이 제도를 운용해왔으며, 지금껏 4300명이 넘는 직원이 관련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대출이자 보전금액은 2008년부터 10년간 동안 총 393억원에 달한다. 농협이 정작 농민을 위한 대출이자 지원은 외면하고 직원들에게만 과도한 금리지원 혜택을 지원한 것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수협을 대표하는 수협중앙회의 상황도 매우 닮았다. 공적자금을 갚지 못해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한 수협이 소위 ‘연봉잔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수협중앙회는 정부로부터 1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으나 작년까지 상환한 돈은 고작 127억원에 불과했다. 제1금융권의 금융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 공적자금을 갚지 못한 상황에서 억대 연봉자가 크게 늘어났다. 작년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의 억대 연봉자는 379명에 달했다. 이는 2013년 93명에서 4배 늘어난 수준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는 게 그 심각성을 알려준다.
수협중앙회가 지난해까지 정부에 상환한 돈은 고작 127억원. 수협이 오는 2028년까지 공적자금을 모두 갚겠다고 약속은 했으나 매년 수백억, 수천억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현실화 될 가능성이 묘연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데도 수협은 공적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임직원 스스로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만경영의 극치를 보여줬다.
물론 공공기관은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동시에 효율성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경영능력이 요구된다. 공공기관의 혁신이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혁신의 대상이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혁신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 혁신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문제는 자원을 낭비하는 데 그치지만, 정의의 문제는 자원의 낭비뿐만 아니라 사회질서를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때문에 공공기관의 혁신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처럼 돼 버린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와 방만 경영으로 인한 도덕성 해이 문제는 이제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얘기도 나온다. 더 이상 거론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해묵은 집착일까. [스트레이트뉴스 김세헌기자/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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