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워킹그룹 설치의 배경에는 한미 간 이견 존재
북미관계에 비해 앞서가는 남북관계에 불편한 미국
비건 대표 방한 속내는 청와대 의중 파악 및 견제
대북제재 예외 인정과 속도 및 온도 차 조율 전망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 이후 대북문제를 풀어갈 한미워킹그룹을 이달 안에 설치하기로 한 가운데, 한미워킹그룹의 성격을 두고 ‘앞서가는 남북관계 속도조절용’이라는 분석과 ‘대북제재 완화 창구’라는 상반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워킹그룹을 설치하기로 한 배경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 프로세스 자체는 남북이 주도할 수 있지만, 비핵화라는 북미 간 문제가 벽처럼 버티고 있다. 한미 간 이견이란, 미국은 ‘제재를 통한 압박’이라는 채찍을 진정한 비핵화의 수단으로 보고, 한국은 ‘조건부 제재 완화’라는 당근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프로세스의 추동 동력으로 본다는 것이다.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뉴욕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 및 7박9일 유럽순방길에서 ‘조건부 제재 완화’ 행보를 본격화한 바 있다. 그 와중에 남북 간에는 오늘(1일)부터 이행되는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와 별개로 철도 연결, 북한 내 양묘장 현대화, 북한 산림 복원을 위한 산림협력 등 다양한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임명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기자회견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2018.08.23)(자료: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트위터/UPI) ⓒ스트레이트뉴스
임명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기자회견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2018.08.23)(자료: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트위터/UPI) ⓒ스트레이트뉴스

미국으로서는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와 달리 앞서나가는 남북관계가 불편했을 테고, 덩달아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겼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 같은 미국의 불편한 속내는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 동선에서도 읽힌다.

지난달 28일 내한한 비건 특별대표는 29일에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우리 측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30일에는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잇달아 만났다.

비건 특별대표가 차관보급에 불과함에도 외교부 인사는 물론 청와대 핵심 참모들까지 사실상 대북 정책 관련 당국자들과 모두 만난 셈이라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자신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거의 없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만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임 실장과의 만남에 대해 “미국 측의 요청에 임 실장이 임한 것이다.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이 다양한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므로 면담을 이상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는 윤 실장과의 만남에 대해 “미국 측의 요청이 있었다. 비건 대표 입장에서 보면 윤 실장은 만나야 할 청와대 실무책임자로 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차관보급에 불과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 기간 동안 만난 대북정책 당국자들(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장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스트레이트뉴스
차관보급에 불과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 기간 동안 만난 대북정책 당국자들(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장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스트레이트뉴스

한미워킹그룹을 설치하는 목적과 관련, 로버트 팔라디노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노력과 대북제재 이행, 그리고 유엔(UN)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협력사업의 한미 간 긴밀한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워킹그룹(상설 협의체)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역시 워킹그룹 설치에 대해 “한미가 조금 더 긴밀한 소통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까,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그에 대해 우리 정부도 동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비건 특별대표의 이러한 광폭 행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 중인 문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고, 북미관계에 비해 앞서가는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북미 핵협상 속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 정부가 수용하기 어렵다. 그러면 남북관계가 깨진다. 모든 것이 인질로 잡힐 수 있어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렵게 됐다”고 했다. 비건 특별대표의 행보에 이은 한미워킹그룹 설치를 미국의 ‘견제장치’ 또는 ‘제동장치’로 보는 시각이다.

한미워킹그룹 설치에 합의한 양국 정상의 속내는? ⓒ스트레이트뉴스
한미워킹그룹 설치에 합의한 양국 정상의 속내는? ⓒ스트레이트뉴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속도 차이에 대한 우려는 이미 표면화된 바 있다. 지난달 25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연세대에서 ‘글로벌 시대의 리더십과 한국외교’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남북관계 개선, 북미관계 개선 등 여러 가지가 나아가는 데 있어 모두 속도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중략)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핵심 당사자다.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고, 북핵문제와 평화정착은 우리의 일”이라며 문 대통령의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를 비롯, 남북경협 등 남북관계 개선작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유엔군사령부가 남북 철도연결을 두고 실시하기로 한 공동조사에 제동을 걸고 나선 사례, 미국이 우리 정부를 거치지 않고 우리 시중은행 관계자들과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만난 사례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속도 차이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미 간 실무협상은 지지부진하고, 10월로 예정됐던 남북 간 각종 회담과 행사는 줄줄이 연기됐다. 북미 간 실무협상에 이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관건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사찰)이행’과 북한이 원하는 ‘상응조치’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다.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 문 대통령이 들고 나선 카드가 바로 ‘대북제재 예외 인정’이고, 한미워킹그룹은 분명 이를 논의할 창구가 될 수 있다. 한미워킹그룹은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간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가동할 수 있는 스티븐 비건-이도훈-최선희 협상라인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한미워킹그룹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투트랙 전략임과 동시에 비핵화 및 남북경협과 관련된 한미 간 온도차 및 속도 차이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고, 그럼으로써 한미 공조 균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긴밀한 공조를 강화하는 실무급 상설 협의체로 기능할 전망이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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