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헌법역사기행서 주장 "국민개헌안 곧 발표"
개헌은 국회 몫이라던 여의도, 연내 처리는커녕 불씨 꺼트려
시민사회단체, 선거제 개편의 개헌 테두리 내 해결 요청
국회의 말잔치와 조변석개, 세비 인상 아닌 소환 대상 돼야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이 무산된 이후,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 자체가 개장휴업 상태다. 국회는 선거제 개편을 예산안 처리와 연동시켰다가 그마저도 실패한 가운데, 전교조 서울지부와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서울참교육동지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꺼져가는 개헌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꺼져가는 개헌의 불씨

지난달 25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 시민단체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촛불정신과 정치개혁 토론회’ 축사에서 개헌과 선거제 개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정치의식과 사회는 성숙했고, 31년 전 옷을 그대로 입기에는 시대정신이 변했다. 이제 헌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됐다. 개헌과 더불어 표심 왜곡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선거제도 개편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국회의 소임이다.”

문 의장은 지난 14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심상정 위원장을 비롯, 박병석, 원혜영, 김학용, 김동철, 천정배 의원 등 정치개혁특위 위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도 “개헌과 제도개선, 개혁입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한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자료:ytn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문희상 국회의장(자료:ytn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이 자리에서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헌법 개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모든 분야의 개혁을 위한 정치개혁이 최우선 과제다. 그중에서도 선거제도가 제대로 민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주승용 국회부의장(바른미래당)은 당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자유한국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대통령의 공약집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에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21대 총선에 적용하려면 금년 내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요즘 청와대는 남북문제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선거구제 개편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도, 영남 표를 지키려는 자유한국당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앞 다퉈 약속을 쏟아낸 이후 올해 5월까지 우리 정치권을 달궜던 개헌 논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개헌특위조차 가동되지 않는 현실

문 의장이 말한 ‘헌 옷’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시민들이 직접 나서 6월항쟁(6ㆍ10민주화항쟁)으로 쟁취한 제6공화국 헌법(1987.10.29)을 말한다. 이 헌법에는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 국정감사 및 헌법재판소 부활, 군의 정치적 중립, 집회ㆍ결사의 자유 등이 명시됐고, 미흡하나마 복지와 인권, 경제민주화 조항도 포함됐다.

당시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이른바 ‘87년 헌법’에 큰 하자는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나라 살림이 늘어나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치개혁을 포함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 지방자치 활성화, 경제민주화 촉진 등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가 제기돼 왔다. 바로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다.

87년 6월항쟁(6・10민주화항쟁) 직후 서울시청 광장에 운집한 100만 인파(1987.07. 09)(자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87년 6월항쟁(6・10민주화항쟁) 직후 서울시청 광장에 운집한 100만 인파(1987.07. 09)(자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현재 여의도 정가에서는 개헌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발견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며 발의한 개헌안이 우여곡절 끝에 5월 2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는 했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들이 불참하면서 정족수 미달로 투표조차 해보지 못한 채 폐기된 이후, 청와대 역시 조용하다.

당시 보수 야당들은 “개헌이 6ㆍ13지방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극렬히 반대했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개헌안을 관제개헌으로 규정,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을 연내에 이루겠다”며 국민개헌 선포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장외투쟁까지 벌였다.

정치일정 상 이 정부 임기 내에 개헌이 가능할까? 일정을 역산해 보면 2020년 4월 15일 총선이 1년 5개월 정도 남아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빠듯하다.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이후에는 사실상 각 당이 총선체제로 전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총선이 끝나면 2022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어 개헌 논의 실종이 장기화될 것이 뻔하다.

결국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개헌의 골든타임이라 부를 수 있는 기간은 지금부터 내년 4월까지다. 채 다섯 달도 남지 않은 기간에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개헌특위조차 가동되지 않는 상황이라,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연내 처리는 고사하고 다음 총선 때까지도 불가능하다.

국회의 노골적인 책임 방기

“적어도 정기국회 안에 예산심사를 마치고 국회에서 통과시켜야겠다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정치개혁 명령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책무감이 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민생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예산안이 정기국회 내에 통과하고 또 선거제 역시 정기국회 내에 통과돼야 한다. (중략) 이제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정치개혁의 요체는 선거제도 개혁인데, 이를 거역하거나 비틀려고 하는 어떤 정치세력도 국민에게 분명한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 개편을 촉구하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2018.12.03)(자료:dailian by 홍금표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 개편을 촉구하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2018.12.03)(자료:dailian by 홍금표 기자)

87년 개헌을 국민이 이뤄냈듯이, 개헌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사회가 파탄지경에 이르지 않은 한, 결국 최종 책임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짊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선거제 개편부터 추진하자”며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따로 분리해놓은 상태다. 선거제 개편만 놓고 보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이 더불어민주당 및 자유한국당과 맞서는 모양새다. 현재 공론화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거대양당에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권 안팎에서 야3당이 전선을 잘못 잡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켰다가 실패한 데 따른 평가다.

야3당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벌였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 예산안 수정안만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애초부터 가능성 없는 전략을 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2019년 예산안과 선거제 개편을 연계했다가 정부 예산안 수정안만 가결된 것에 반발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2018.12.07)(자료:뉴시스)
2019년 예산안과 선거제 개편을 연계했다가 정부 예산안 수정안만 가결된 것에 반발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간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2018.12.07)(자료:뉴시스)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두고 정치권이 이처럼 당리당략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 하는 동안, 상당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선거제 개편 역시 개헌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함께 이뤄내야 하지만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국회는 국민이 소환해야 한다”며 국민개헌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와 서울참교육동지회,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등이 추진 중인 ‘헌법역사기행’을 따라가 봤다.

시민단체, 헌법역사기행 통해 국민개헌안 발표 예정

“대통령 개헌안이 무산된 후에 대중적인 관심이 떨어졌다. 국민개헌이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떨어진 국민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헌법역사기행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역사기행의 추진 배경을 묻는 질문에,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백선기 운영위원장이 한 답변이다. 지난 12월 1일, 현직 선생님들과 회원, 대전 둔원고, 평창 대원고와 평창고 학생 등 약 50여 명은 6월항쟁 진원지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서울 중구 세종대로 21길)에서 제7회 헌법역사기행을 시작했다.

87년 6월항쟁(6ㆍ10민주화항쟁)의 진원지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참가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백선기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운영위원장(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87년 6월항쟁(6ㆍ10민주화항쟁)의 진원지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참가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백선기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운영위원장(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첨가자들은 6월항쟁 진원지에 이어 4사5입개헌의 현장인 서울시의회(구 국회의사당), 아관파천의 현장인 러시아공사관, 제2공화국 당시 3차개헌의 현장인 4・19혁명기념도서관과 제헌헌법의 산실인 구 중앙청, 임시정부 건국 강령 경교장, 약현성당, 서대문형무소 등을 거쳐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혁명의 현장 광화문광장을 둘러봤다.

“지난봄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놨죠? 거기에는 국민발안이 없었어요.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도 한다고 했지만, 형식적으로 국회로 넘기고 말았어요.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이 주장했던 건 민생복지와 양극화 해소, 그리고 직접민주제 개헌이었는데, 직접민주제 개헌이 정치권에 맡겨진 셈인 거죠.”

1930년 총독부 산하 부민관으로 신축됐다가 한국전쟁 당시부터 1975년 유신쿠데타 직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됐던 현 서울시의회. 참여 학생들에게 이승만 개헌파동(4사5입개헌)과 박정희 영구집권 획책 과정을 설명하는 관계자(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1930년 총독부 산하 부민관으로 신축됐다가 한국전쟁 당시부터 1975년 유신쿠데타 직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됐던 현 서울시의회. 참여 학생들에게 이승만 개헌파동(4사5입개헌)과 박정희 영구집권 획책 과정을 설명하는 관계자(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국회의원들이 국민 대표니까 그 사람들이 하면 되잖아요.”

“그래야죠. 그런데 지금 국회가 하는 거 보세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들어봤죠? 선거제를 바꾸자는 건데, 원래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도 개헌이라는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해요. 그런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따로 분리해놓고 선거제도부터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그걸 예산안과 묶어버리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돼버렸어요. 결국 아무것도 안 한 거잖아요. 선거제 개편 가망성이 별로 안 보이죠? 그럼 누가 해야 되죠? 예, 국민이 힘을 모아서 해야 합니다.”

헌법역사기행 주최 측은 개헌 현장답사와 헌정사 교육을 통해 국민개헌의 당위성을 알리고, 현재 진행 중인 쟁점투표(moveon.kr) 결과를 취합해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내년 3월 1일 국민개헌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환경연합(KFEM) 사무실에서 제6공화국 헌법(1987.10.29)의 성립 등 헌법역사기행 마무리 과정을 진행 중인 백선기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운영위원장(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서울환경연합(KFEM) 사무실에서 제6공화국 헌법(1987.10.29)의 성립 등 헌법역사기행 마무리 과정을 진행 중인 백선기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 운영위원장(2018.12.01) ⓒ스트레이트뉴스

개헌 및 선거제 개편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은 없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른 입장은 제각각이다. 문 대통령이 공약에 따라 개헌안을 내놨고, 국회의장도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의 소임을 강조했지만,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해보지 않고 걷어차 버렸다. 명분은 ‘국회 주도 개헌’이었지만, 실제 속내는 자칫 대통령의 개헌안이 6・13지방선거 판도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방선거 이후 각 당의 입장은 확연히 갈렸다. 대통령 개헌안 지지를 표명하며 타당에 개헌 및 선거제 개편 공세를 벌였던 민주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 모드로 돌변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풍성했던 말잔치를 거둬들였다.

반면 대통령 개헌안에 뜨뜻미지근했던 야3당은 바짝 달아올랐다.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보고 판단해야 할 개헌과 선거제 개편이 각 당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변석개의 제물이 되고 있는 판이다. 이래서는 국회의원 세비를 깎아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세비는 올해도 어김없이 180여만 원가량 올랐다.

백선기 운영위원장의 말을 빌자면,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국가와 국민을 농단” 하고 있다. 국민이 의원을 불러다가 책임을 추궁하고 물러나게 하는 ‘국회의원 소환제’가 절실한 이유다. 그리고 국민발안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자, '일 안 하는' 국회의원들을 대신해 국민이 또 한 번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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